어제 나는 살기 싫었다-1

by 흑선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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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는 살기 싫었다. 오늘도 그랬다. 한때 열망했던 나의 앞날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세상의 거대한 문제들도 모두 무의미해 보였다. 30분 정도의 대화 후 단발머리의 상담사는 내가 쿠알라룸푸르에 가기 전부터 우울증 증세가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무기력에 쩔어있다고 말했다. 그녀 말대로 나는 무기력했다. 나의 앞날과 세상의 문제들에 대해서.


좌절하거나 행동하거나.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문제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가 나라면 후자는 종군기자, 국제 구호 활동가, 환경운동가 등이다. 이들은 전쟁, 난민 행렬, 환경 파괴 등의 끝없는 문제와 싸우고 있다.


안타깝게도 나 같은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다. 이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2021년 10개국에서 10,000명의 청년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56%가 기후변화로 인해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답했고, 75%는 미래를 두려워한다고 답했다. 조사에 응한 젊은이들 중 60%는 정부가 기후 변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신들과 미래 세대가 배신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두머(Doomer, 파멸(Doom)과 사람(-er)의 합성어)는 미래에 비관적인 청년 중에서도 극단적인 부류다. 2008년경 미국의 인터넷 포럼에서 등장한 이들의 세계관은 ‘두머의 편지(Notes from a doomer)’라는 글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깨어나 버렸다. 이 세상이 병들고, 잔혹하고, 무의미한 곳이라는 것을 알아 버렸다. 우리들 같은 사람들이 역사 속 어디에서든 공감하는 자연이라는 공통분모는 지금 바로 우리의 손에 의해 허망하게 파괴되고 있다. 당장 불안을 모두 벗어던지고 성공적인 삶을 쫓을 수 있다 하여도, 피할 수 없는 파멸을 맞이하고 있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N포 세대, 탕핑족, 사토리 세대의 무력감이 고용 불안정, 경쟁, 부동산 가격 등에 있다면 두머의 무기력은 여기에 환경오염, 정치적 분쟁 같은 문제까지 더해진 것이었다. 희망을 잃은 청년들은 우울증에 시달리며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했다.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 나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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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머가 되는 것은 편하지만 한 가지 무서운 진리를 간과한다. 아무리 바닥으로 추락해도 그 아래에는 더 깊은 바닥이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은 이 진리를 몸소 체험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엘살바도르는 헝가리와 맞붙었다. 그리고 패했다. 사실 패한 건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팀도 항상 이길 수는 없지 않은가. 문제는 1:10으로 참패했다는 점이다. 2점도 3점도 아닌 9점 차이라니, 엘살바도르가 아무리 축구 강국이 아니어도 이는 납득할 수 없는 성적표였다. 엘살바도르 선수들은 귀국 후 결국 폭언, 협박, 차량 총격에 시달렸다. 이 경기는 아직도 월드컵 역사상 가장 큰 점수차로 패배한 경기로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최악의 상황'은 얼마든지 더 '최악'이 될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반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은 이러한 교훈의 정반대 사례를 보여줬다. 이 경기의 주인공은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였다. 그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 올림픽 우승, 발롱도르 최다 수상 등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축구의 신'이라 불렸지만, 유일하게 월드컵 우승 트로피만 없었다. 35세 노장이 된 그에게 이번 월드컵은 마지막 기회였다. 그가 트로피를 움켜쥐고 진정한 신이 될 수 있을지에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메시에 맞서는 프랑스에는 떠오르는 신예, 킬리언 음바페가 있었다.


전반전이 끝났을 무렵, 나는 이미 승부가 결정 났다고 생각했다. 아르헨티나가 2:0으로 앞서 있었고, 프랑스는 아르헨티나에게 질질 끌려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 35분, 킬리안 음바페가 페널티킥을 성공했다. 그리고 1분도 채 안 되어 다시 골을 넣으며 동점을 만들었다. 그는 프랑스가 주저앉을 때마다 멱살을 잡고 끌어올렸다. 승부는 연장전을 넘어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하지만 결국 아르헨티나의 승리로 끝났고 메시는 축구의 신이 되었다.


그러나 나의 기억에 박힌 건 음바페였다. 그는 수많은 프랑스인들의 박수를 받으며 귀국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같다. 바닥 아래에는 더 깊은 바닥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더 깊은 바닥으로의 추락을 막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음바페의 투지는 나를 채찍질했다. 세상의 문제들은 얼마든지 더 악화될 수 있다. 내가 현재 상황이 무기력이라는 핑계로 포기하는 순간, 세상은 그 상태로 멈추지 않고 그보다 더 최악을 향해 달려간다는 진실을 그는 말하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유제품 생산 과정에서 생기는 동물학대는 아마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여 손을 놓고 있다면 지금 수준의 학대가 그대로 유지될까? 프랑스의 한 동물단체는 현실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2019년, 이들은 어느 사료 업체가 우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자행한 엽기적인 실험을 한 폭로했다. 회사가 살아있는 소의 옆구리에 구멍을 낸 뒤 위장에다 직접 사료를 넣고 빼는 행위를 한 것이다. 만약 모두가 공장식 축산은 해결될 수 없다 손 놓고 있었다면 전 세계의 모든 젖소들은 지금 옆구리에 구멍이 뚫렸을지도 모른다. 이건 큰 차이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중국과 대만 간의 분쟁 등으로 인해 제3차 세계대전이 몇 년 내에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야기에 그치는 건 이를 멈추려는 숨은 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인간의 탐욕과 잔인함에 학을 떼고 외면하는 순간 상황은 최악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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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황이 공짜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기력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점을 뜻한다. 죽어라 노를 저어도 제자리인 상황은 솔직히 맥이 빠진다. 제자리면 그나마 다행이다. 어떤 사회 문제는 상황이 악화되는 속도를 늦추는 게 최선이기도 하다.


가령 기후위기라는 문제의 특징은 제한시간과 그것을 못 지킬 확률이 매우 선명하다는 점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지구의 평균 온도가 1.5°C를 넘으면, 이후에 탄소를 줄이더라도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각국의 정상들은 2015년 파리 협정에서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C 이하로 제한하자고 협의했다. 경각심을 느낀 개인과 집단들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의 노력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4년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폭은 결국 1.5도를 넘고 말았다. 즉 특정 문제가 해결되는 속도는 어느 정도 정해진 것 같다. 마치 내가 유럽인들이 흑인을 동물원에 전시하던 20세기로 가서 유색인종도 존엄한 인간이라고 주장해도 사회가 변화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문제는 제한된 시간 안에 해결되지 못할 운명일 수 있다. 그리고 예정된 종말은 무기력의 씨앗이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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