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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인간에 대한 혐오는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적인 힘일 것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찌어찌 굴러가는 것도, 이런 방어기제를 착용한 냉소주의자들 덕분일지 모른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내려놓을 때,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무표정한 얼굴로 수많은 진상을 상대할 수 있고, 환경미화원은 금연 구역에 매일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 즉, 인간 사회는 인간 혐오에 빚지고 있다.
하지만 인류에 대한 냉소는 내가 편하게 걸칠 수 있는 갑옷이 아니었다. 쿠알라룸푸르 이후로 나는 변했다. 모니터로 본 끔찍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신병에 걸린 듯 앓아누웠다. 손끝에서 발끝까지 통증이 퍼졌다. 세상의 부조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머릿속엔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왜 인간은 동물과 동족이 피눈물을 흘리게 만드는가? 왜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는가? 뇌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그 결과, 합리적이지만 다분히 이상적인 답이 도출되었다. 나는 무고한 생명이 고통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이런 이상적인 목표에 인간 혐오는 장애물이었다. 기후위기, 동물 학대, 빈부 격차를 비롯한 거의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인간이었지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존재 또한 인간이었다. 그 방법이 과학기술이든, 국가정책이든, 세상의 굵직한 문제들은 여러 군상들의 협력 없이는 풀 수 없었다. 그들은 기후 위기에도 화력 발전을 부추기는 국가 지도자이기도, 사자를 좁은 우리에 가두어 정형행동을 유발하는 동물원의 주인이기도 했다. 여기에 인간 혐오까지 더해진다면 그 일을 시작도 할 수 없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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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애를 회복해야만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강박적으로 인류의 추악한 면들을 탐구했다. 가축들이 얼마나 비인륜적인 과정을 거쳐 태어나고 도살되는지, 내가 입는 패딩에 들어가는 오리털은 어디서 오는지,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바다에 떠다니는지를 검색했다. 하나하나 살펴보는 일은 진이 빠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 자학적인 행위는, 그동안 세상의 부조리, 즉 인간의 파괴성에 무지했던 나 자신에 대한 속죄였다. 나는 인간이라는 종이 이 세상에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인류애가 사라진 자리에는 인간 혐오가 자리 잡았다.
나는 내가 혐오하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나 또한 인간이지만 노력하면 그들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길은 나로 인해 고통받는 생명이 없는, 금욕적인 삶이었다. 고기를 끊고 소비를 줄이며, 나의 모든 행동에 도덕의 칼날을 들이댔다. 자신의 작은 결점이라도 발견되면 날카로운 비판이 돌아왔다.
‘나 때문에 무고한 생명이 희생당했다.'
이로 인해 죄책감만 든 건 아니었다. 묘한 안정감이 함께 올라왔다. 이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속죄하던 중세의 가톨릭 성직자의 심리와 비슷했다. 나는 죄인이지만 그래도 나의 죄를 알고 있다. 자학에 가까운 반성은 아픔과 동시에 위안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 붙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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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나를 가졌을 때, 몸이 휘청거릴 만큼 어지러웠다고 한다.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시장에서 소고기 두 근을 사 와 집에서 드셨다고 했다. 나는 인간은커녕 하나의 세포일 때부터, 이미 다른 생명의 희생을 먹고 자라난 셈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나를 향한 날카로운 채찍질은 조금씩 느려졌다. 나는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오지에 살지 않는 이상, 존재 그 자체로 수많은 생명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채식을 한다며 먹는 아보카도는 남아메리카 갱단의 수입원이자 숲 파괴의 주범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지어지는 과정에서 나온 건설 폐기물은 플라스틱 빨대와는 비교도 안 될 수준이었다. 선한 의도로 한 행위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위한 기부 영상을 보는 것, 기후 위기 관련 SNS 기사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조차 막대한 탄소를 배출했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이런 사실들은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나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나 또한,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인간들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근본적으로는 같은 악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나는 해야 했다. 인간을 사랑하는 것, 그 불가능한 일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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