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알려주지 않은 세계
1
나를 변화시킬 두 번째 경험은 대학 졸업 후에 찾아왔다.
어중간함. 그때의 나는 그랬다. 멍청하진 않지만 명석하지도 않은, 나태하진 않지만 진취적이지도 않은. 어중간한 학벌에 학점은 2와 4 사이인 3.8. 보유한 자격증은 별 거 아니지만 막상 없으면 허전한 토익 900점과 컴퓨터 활용능력 2급. 진로는 마케팅이었지만 딱히 흥미는 없었으며 경력은 중소기업 마케팅 인턴 3개월. 못나지도 수려하지도 않은 얼굴.
피 튀기는 취업 시장에 이도저도 아닌 지원자의 자리는 없었다. 회사로 보낸 100개의 이력서들은 100개의 불합격 메일로 돌아왔다. 어느 영화에서 프랑스 백수들은 일자리 달라고 정부를 욕하는 데, 우리나라 백수들은 자기 탓인 줄 안다고 했던가. 그 말대로 나는 사회가 제시한 기준에 못 미치는 자신의 모습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자신에 대한 불만족은 이루지 못한 성취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졌다. 대학생 때 별 흥미를 못 느끼던 대기업과 높은 연봉에 뒤늦게 집착했다. 그건 내가 진정으로 그걸 원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사회가 정한 이상적인 틀에 맞지 않아 감당해야 하는 모욕이 싫었을 뿐이었다. 대기업 사원증을 목에 걸고 통장에 큼직한 연봉이 들어오면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듯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진심과 어긋난 목표에 매달렸다.
그러던 2016년의 어느 봄, 나는 한 메일을 받았다.
“OOO님 안녕하세요
저는 헤드헌터 OOO입니다.
해외 유명 컨설팅 회사에서 일할 한국인을 뽑고 있습니다…”
그는 내가 그 업무에 적합한 인재로 보여 연락했다고 했다. 업무는 콘텐츠와 관련된 것이었고 근무지는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였다.
해외 취업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마음이 살짝 들떴다. 어쩌면 불합격의 눈물로 얼룩진 한국을 벗어나 새로운 무대에서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겠다 생각했다. 살짝 떨리는 손끝으로 회사와 업무에 대한 세부정보를 달라고 회신했다. 몇 분 후 답신이 왔다. 헤드헌터는 구체적인 업무 내용에 대해서는 클라이언트가 공개를 원하지 않아 알려줄 수가 없지만 회사에 대한 정보는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 회사를 소개하는 Pdf 파일에는 ‘국제적인’, ‘각종 상을 수상한’, ‘각국의 인재가 모인’, ‘전문적인 컨설팅 회사’ 같은 취준생을 매혹하는 반질반질한 단어들이 모여있었다. 근무지는 도심의 고층빌딩에 위치한 사무실로 번화가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관과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한껏 집중력이 올라가서 바로 회사 이름을 구글에 검색했다. 회사는 실제로 IT 분야에서 유명한 국제적인 컨설팅 회사였다. 취업 플랫폼에서 직원들의 평점은 5점 만점에 3점대로 높지는 않지만 적당한 점수였다.
헤드헌터의 요청에 따라 준비해 둔 이력서를 보냈다. 며칠 뒤 헤드헌터는 선택 가능한 면접 날짜들을 알려주었고 나는 일주일 뒤를 선택했다. 그는 약속된 시간에 필리핀 지사의 인사 담당자가 내 스마트폰으로 연락할 것이며 영어로 면접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면접 당일 나는 떨림을 억누르며 전화를 받았다. 내가 필리핀식 영어에 익숙지 않았다는 것과 통화음질이 좋지 않았다는 점만 빼면 면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면접관이 나의 강점, 지원 동기 등을 물어보면 나는 미리 외워 둔 답변을 줄줄 읊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극적인 콘텐츠에 노출이 돼도 괜찮냐’는 질문을 했다. 나는 잠시 무슨 말인가 생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괜찮다고 답했다. 그렇게 면접은 종료되었고 며칠 뒤 나는 최종 합격 메일을 받았다. 첫 출근 날짜는 약 두 달 뒤였다.
나는 저녁 식사자리에서 들뜬 마음으로 가족들에게 나의 합격 소식을 알렸다.
“너의 노력이 이제야 빛을 보는구나!”
어머니와 누나는 나보다 더 들뜬 듯했다. 모임에서 친구들의 자식 자랑만 듣던 어머니는 처음으로 아들 자랑을 했다. 친구들은 자기도 그 컨설팅 회사를 들어본 적 있다며 어머니의 자랑에 맞장구를 쳤다.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기를 세워준 이 순간이 믿기지 않을 만큼 좋았다. 새로운 시작에 마음은 부풀어 올랐다. 얼마 뒤, 커다란 배낭을 메고 캐리어 하나를 챙긴 나는 인천공항에서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쿠알라룸푸르로 떠났다.
2
말레이어로 ‘쿠알라(Kuala)’는 ‘강의 합류점’을, ‘룸푸르(Lumpur)’는 ‘진흙’을 의미한다. “흙탕물의 합류”라는 뜻의 도시는 곰박강과 클랑강 사이에 있는 진흙탕이었다. 쿠알라룸푸르는 1857년 이곳에 주석을 캐기 위해 모여든 중국인 채굴꾼들이 광산 마을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인구가 100명이 안 되던 마을은 영국이 말레이시아를 식민 지배하는 동안 성장했다. 이후 말레이 연방주의 수도가 된 쿠알라룸푸르는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현재까지도 수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헤드헌터의 메일을 받기 전까지 쿠알라룸푸르는 물론 말레이시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한국에서 최종 합격 메일을 받은 후 부랴부랴 도시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싱가포르를 가본 적이 없었지만 구글을 통해 본 쿠알라룸푸르는 싱가포르처럼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잠재력이 있는 도시였다. Malaysia truly asia라는 말레이시아 관광청의 문구처럼 이곳은 한국 촌놈이 몰랐던 또 다른 아시아였다. 고층 빌딩과 이슬람 사원들이 뒤섞인 공간에는 말레이인, 인도인, 중국인 등 다양한 인종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 시기의 언론들은 앞으로는 동남아 국가들이 성장할 거라는 기사들을 많이 썼는데 쿠알라룸푸르도 그중 하나 같았다. 나는 창문을 통해 비행기 아래의 구름을 내려다보며 몇 시간 후에 마주할 미지의 세계를 기대했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한 후 미리 예약해 둔 회사 근처의 게스트하우스로 움직였다. 허름한 공항 입국장을 지나 에어컨 바람 나오는 고속열차를 30분가량 탔다. 도시 중심부인 KL 센트럴에 도착했다. 역에서 처음으로 야외로 나오자 강한 햇빛에 눈이 절로 찡그려졌다. 동남아 특유의 후덥고 습한 공기가 발목을 휘감았다. 서둘러 숙소로 캐리어를 끌었다. 게스트하우스는 낡은 간판들이 다닥다닥 붙은 건물 2층에 있었다. 건물의 하얀 벽에는 습한 날씨 때문에 곰팡이가 촘촘하게 피어있었고 입구에는 거뭇한 피부의 노파가 주저앉아 구걸을 하고 있었다. 이런 건 인터넷에서 알 수 없던 것들이었다.
‘조금 더 비싼 숙소를 예약할 걸 그랬나? 후기는 괜찮았는데… 아니야. 며칠만 있을 거니까…’
양손으로 캐리어를 들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자 라운지가 나왔다. 그곳의 낡은 소파들에는 각국의 배낭 여행자들이 저마다의 자세로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프런트에서 사시인 인도계 여성이 체크인을 도와주었다. 나는 동남아를 여행하는 영국 커플과 같은 도미토리룸을 배정받았다. 천장에서 덜덜 소리를 내는 선풍기가 하나 있는 창문 없는 방. 나는 짐을 풀고 지금부터 무얼 할지 생각했다. 첫 출근까지는 일주일 가량 시간이 있었다. 나는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하기 위해 도시를 돌아보기로 했다.
따가운 햇볕을 맞으며 무작정 시내를 걸었다. 쿠알라룸푸르는 나의 상상과 많이 달랐다. 찜통 속에서 온갖 인종들이 뒤엉킨 분위기는 국제적이라기보다는 흙탕물처럼 정신없었다. 고층 빌딩 사이의 콘크리트 바닥은 여기저기 파여 쓰레기와 구정물이 고여있었다. 그 옆을 달리는 낡은 오토바이와 자동차는 연신 크락션을 울리며 매연을 뿜었다. 고층 빌딩 뒤쪽으로는 창가에 빨래가 널린 허름한 빌라들이 모여있는데 주변에는 맹한 표정의 노숙자들이 한 두 명 누워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주인 없는 개들이 길가의 쓰레기 더미를 뒤졌다. 백화점 푸드코트에서는 간혹 바퀴벌레가 보였다.
도시는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나는 며칠 동안 한쪽 눈이 없는 세 명을 연달아 보았다. 히잡을 쓰고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여인도, 길에서 구걸하는 거지도, 심지어 스타벅스의 바리스타도 한쪽 눈이 없었다. 그들 모두 안대를 하지 않았기에 움푹 들어간 눈두덩이가 휑하게 드러났다. 옆에선 멀쩡해 보이던 그들이 고개를 돌려 반대편이 드러날 때면 나는 최대한 놀라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애썼다. 이곳의 수질이 문제인지 아니면 각자에게 말 못 할 사연이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었다. 그들은 나에게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이곳은 너의 상상과 다르다고.
3
나는 회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낡은 아파트를 월세로 구했다. 며칠 후 아침부터 푹푹 찌는 공기에 땀을 흘리며 회사로 첫 출근을 했다. 회사 건물은 헤드헌터가 보낸 사진과는 완전히 달랐지만 어쨌든 번화가에 위치한 고층 빌딩이었다. 1층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자 에어컨 바람에 등줄기의 땀이 조금 식었다. 12층으로 올라갔다. 회사 입구에서 초인종을 누르자 키 작은 여직원이 나왔다. 그녀는 나를 지사장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회색 카펫 타일이 깔린 넓은 공간이 나왔다. 창가로 출근하는 인파가 개미처럼 내려다보였다. 밖은 더워 쓰러질 듯한 날씨였지만 사무실은 에어컨을 어찌나 세게 틀었는지 닭살이 돋을 만큼 추웠다. 서른 명 정도 되는 직원들은 모두 긴 팔을 입고 있었는데 모두 의자에 앉아 책상 위의 검은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걸으면서 천장에 설치된 모니터 하나를 보았다. 화면에는 아프리카계 흑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3명 있었다. 한 남자는 여자 뒤에서 그녀의 양팔을 붙잡고 있었다. 발버둥 치는 그녀 앞에 다른 남자가 단검을 거꾸로 잡고 서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는 분노에 찬 듯한 씩씩 거렸다. 단검을 쥔 그의 손이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는 손은 여자의 복부를 거칠게 내려찍었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피 묻은 단검이 여자의 배에서 빠져나왔다. 남자는 같은 곳을 또 찔렀다. 그가 세 번째로 찌르려던 찰나, 나는 지사장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문 앞에 멈춰 선 다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이 도시는 분명 내가 모르던 것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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