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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오랜 시간 호환(虎患)에 시달렸다. 태종 2년에는 겨울에서 봄 동안 경상도에서 호랑이한테 죽은 자가 수백에 이르렀다. 백성들이 길을 다닐 수 없었고 농사짓기가 어려웠다. 산에 살던 호랑이는 민가뿐 아니라 성 안에까지 들어왔다. 세조 12년에는 경복궁의 취로정 연못가에 나타난 호랑이를 추격하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선조 40년에는 창덕궁 안에서 어미 호랑이가 새끼를 쳤다. 임금은 "그 새끼가 한두 마리가 아니니 이를 꼭 잡으라”는 명을 내렸다. 급기야 조선은 호랑이를 사냥하기 위한 특수부대인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관직을 만들었다. 그만큼 호랑이라는 생명체는 조선인들의 목숨을 위협했다.
한국에서 호랑이가 멸종한 지금 인간에게 위협이 되는 생명체는 인간뿐이다. 인간은 물질만능주의, 기후 위기, 전쟁, 빈부격차 등을 만들어내어 스스로에게 겨누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앞날을 논할 때 필요한 질문은 하나이다. ‘인간은 변할 수 있는가?’ 인간은 탄소를 배출하는 생활 습관에서 변화할 수 있는가? 도덕보다 물질을 우선하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정치인은 변할 수 있는가? 옆 나라를 침략하는 독재자는 변할 수 있는가?
결정적으로 나는 변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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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변화에 대한 단서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탐욕스러운 인간 오스카 쉰들러는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후 유대인을 구하는 인물이 된다. 영화는 인간이 변하는 계기가 타자의 고통을 여과 없이 목격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변화시키는 첫 번째 경험은 아버지가 주었다. 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곰처럼 육중한 덩치의 아버지는 옛날 장터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곳의 값싼 먹거리들은 아버지의 추억을 자극했다. 아버지는 그것들을 커다란 손으로 천천히 집어 봉투에 담았다. 봉투가 찢어질 만큼 물건으로 가득하면 집으로 돌아가 그것들을 냉장고에 욱여넣었는데 어머니는 그것을 매우 싫어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집에서 몇 정거장 떨어진 성남의 모란 시장에 자주 갔다.
나는 초등학생일 때 아버지를 따라 다른 장터를 몇 번 간 적 있지만 그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옛 장터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백화점이나 마트에 익숙하던 소년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옛날 장터에 같이 가겠냐고 물었을 때 싫다 했다. 아버지는 다시 묻지 않았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별 다른 추억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내가 중학생일 때쯤 이리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던 걸까. 아직 땅이 끓지 않던 초여름, 빼빼 마른 사내아이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시장에 같이 가자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낯선 행동에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뒤를 따라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버스에서 별 대화 없이 30분을 이동하자 모란 시장이 나왔다. 끝없이 늘어선 접이식 천막이 몽골 군의 막사들처럼 둥글게 밀집해 있었다. 시장의 가장자리는 여느 전통시장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붉은색과 푸른색 천막 아래에는 까무잡잡한 피부의 상인들이 참외, 생선, 옷 등을 팔고 있었다. 천막 사이사이에는 얼굴에 주름 가득한 노인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구석에서는 동남아 사람들이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맞은편의 어른들을 피하면서 시장의 중심부로 들어갔다.
시장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맡아본 적 없는 악취가 진동했다. 좁은 길에서 사람들의 밀도는 더 높아졌고 공기는 더 후덥지근해졌다. 나의 시야는 지나가는 어른들로 번번이 가로막혔다. 아버지와의 거리는 더 멀어졌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 틈 사이로 아버지를 불렀지만 목소리가 닿지 않았다. 저 앞에 희미하게 붉은 상자가 보였다. 그것에 가까이 가려는 순간 저 멀리 등 뒤에서 귀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깨개개개갱…!”
영문 모를 소리에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뒷목이 뻣뻣해졌다. 뒤를 돌아봤지만 어른들로 시야가 막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앞을 보는 순간 그 붉은 상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작은 서랍장 크기의 녹슨 철창 안에는 네다섯 마리의 개들이 뒤엉켜 있었다. 한 개는 탈진한 듯 눈을 반쯤 감은 채 바닥에 누워있었다. 다른 개는 지나가는 행인들이 두려운 듯 떨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한 남성이 나무 도마에서 넓적한 칼로 무언가를 내려치고 있었다. 피 묻은 갈비뼈가 보였다.
어린 소년은 눈앞의 광경이 어떤 상황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저 도마에서 산산 조각나는 갈비뼈는 조금 전까지 저 철창 안에 있던 개의 것이었으리라. 그것을 눈앞에서 다른 개들은 자신들도 얼마 안 가 같은 운명이 될 거란 사실에 절망하거나 두려움에 떨었다. 다시 한번 등 뒤에서 비명소리가 공기를 찢었다.
“깨개갱! 깨갱!”
그 순간 남자의 칼이 철창으로 향했다. 남자의 몸이 천천히 그 철창으로 움직였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 아버지가 있는 방향으로 굳은 몸을 틀었다. 서둘러 몇 걸음을 떼자 등 뒤에서 비슷한 비명이 들렸다. 이번에는 더 가까웠다. 나는 그 소리가 분명 내가 좀 전에 있던 곳에서 터져 나왔음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갈 때마다 그 비명은 반복적으로 들렸다. 아버지의 커다란 뒷모습이 다시 보일 때쯤 그 비명은 멈췄다. 나는 아버지의 소매를 붙잡고 좀 전에 광경을 떠듬떠듬 말했다. 나는 애원했다. 어서 집으로 가자고. 여기 못 있겠다고. 하지만 그에게 그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러냐."
아버지는 한 마디를 남기고 다시 앞으로 걸었다. 그의 앞에는 좀 전에 보았던 붉은 상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나는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어 두 손으로 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채 바닥을 보며 걸었다. 철창의 개들처럼 웅크린 몸이 땀으로 젖었을 때쯤 아버지는 집에 가자고 했다. 나의 행색을 보고 놀란 어머니는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러고는 왜 그런 곳에 얘를 데려갔냐며 아버지를 나무랐다. 물론 아버지는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몇 주 동안 그 끔찍한 광경을 떠올리며 방구석에 앉아 울었고 한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다. 귓속에서 맴도는 개의 비명은 작은 파편이 되어 내 마음에 박혔다. 그것이 나를 찌를 때마다 내가 인간이라는 죄책감, 무고한 생명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이 검붉게 흘러나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눈물은 조금씩 마르고 상처에는 새살이 돋았지만 파편은 여전히 가슴 깊이 박혀있었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돼서야 그 날카로운 조각은 파편은 기억에서 흐릿해졌다.
나를 변화시킬 첫 번째 경험은 그렇게 끝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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