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by 흑선백지

어렸을 적 위인전의 인물들은 완벽한 존재처럼 보였다. 그들은 강인한 정신과 올곧은 성품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인류의 발전과 변화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내가 자라면서 이들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하트마 간디는 평화와 비폭력을 설파했지만 인종차별적 발언을 남겼고, 아인슈타인은 천재적인 물리학자였으나 냉담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에디슨의 여러 발명품은 다른 발명가들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이었다. 테레사 수녀는 말기 환자들에게 적절하지 않은 치료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물론 모든 위인이 이렇게 양면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인전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존재’라는 자명한 사실을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그 결과 나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완벽한 인간이라는 환상을 진실처럼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 백 명의 사람은 백 가지 방식으로 불완전하고 모순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양면성은 때때로 한 사람의 매력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평소 인색하기로 소문난 CEO가 익명으로 거액의 장학금을 기부하거나, 실수가 잦은 회사원이 밤에는 실력 있는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한다. 이런 의외성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된다. 그래서 영화나 소설 속 캐릭터들의 매력을 구성하는데 이런 불완전함과 모순은 필수다.


하지만 도덕의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공정과 정의를 외치면서 자녀의 입시를 위해 허위 서류를 제출하는 정치인이나, 환경 보호를 주장하면서 기부금을 횡령하는 운동가는 ‘위선자’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겉으로 보이는 선한 얼굴 뒤에 숨겨진 악의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배신당했다고 생각한다.


비난의 활시위가 외부를 향하는 것만은 아니다. 도덕적 결벽주의자들은 자신 안의 모순을 보며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들이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여 자신과 화해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타인은 나의 불완전함을 나와 같은 눈으로 보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베이컨을 씹으면서 공장식 축산을 반대하고, 플라스틱 빨대를 쓰면서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사람을 보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손가락질한다. 이들의 말은 타당하다. 위선자는 입 다물고 있어야 하는 존재처럼 여겨진다.


그럼에도 의문이 든다.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부의 불평등은 날로 심화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세상의 문제들 앞에서, 전 세계의 수많은 ‘위선자’들은 과연 정말로 침묵해야만 하는가?


위선은 개인만의 속성이 아니다. 0에서 1로 가는 길에 무한한 수가 존재하듯, 사회 역시 선과 악의 양 극단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과정을 거쳐 변화해 간다. 현대 사회는 노예제를 전면 부정하기에 앞서,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어정쩡한 단계를 지나왔다. 그리고 그 변화는 결국, 그 사회의 구성원인 수많은 위선자들의 움직임에 의해 이루어졌다.


어쩌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위선자가 될 용기가 아닐까?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의 위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변화를 향해 움직이는 것 말이다.


티베트의 한 승려는 이렇게 말했다.


“간혹 자신이 훌륭한 수행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깨달음을 향한 여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실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것입니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를 ‘이도저도 아닌 위선자’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나를 제대로 본 것이다. 이 글의 내용은 위선적인 나의 모습 중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만약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지만 자신의 불완전함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이 글에 담긴 나의 모순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때로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가끔은 착하고 싶어 하는 악마처럼 우리 대부분은 평생 위선자로 살아가게 될 테니까.





'흑선백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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