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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내 인생을 바꾼 경험치고는 급작스럽게 찾아왔다. 상황은 이랬다. 1995년에 아버지가 새로운 직장을 얻으면서 우리 가족은 얼마 전까지 소련이라 불리던 나라로 떠나야 했다. 문제는 출발까지 주어진 시간이 고작 3개월이라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비자를 발급받고 현지에 살 집을 구하느라 연신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부랴부랴 추운 나라에서 입을 옷을 사고 한국 집을 처분하느라 수시로 집 밖을 나갔다. 그 모습을 보던 누나와 6살의 나는 그때까지 러시아가 어디에 있는지,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삶을 사는지 알지 못했다. 유튜브는커녕 가정에 컴퓨터조차 드물던 시기에 한국인의 시야는 그리 좁았다.
가장 큰 문제는 언어였다. 내가 그때 할 수 있는 영어는 ‘헬로’ 정도였다. 밖에서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던 철부지가 3개월 만에 러시아어나 영어를 익힐 수는 없었다. 한국과 수교한 지 5년밖에 안 된 미지의 나라에 몇 년간 머무르기에 3개월의 준비기간은 턱없이 짧았으며 무엇보다 정보가 부족했다. 출국일은 시퍼런 눈사태처럼 순식간에 우리 뒤에 달라붙었다. 한밤 중에 우리 가족은 김포 공항에서 출발하여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누나와 나는 그 당시 모스크바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수업이 가능한 학교에 입학했는데 학교의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선생들은 영어로 된 교과서를 펼친 후 수업을 진행했다. 역시나 나는 그들의 언어를 하나도 이해 못 했다. 그들도 나의 언어를 이해 못 했다. 내가 이해 못 하는 티를 내면 그들은 친절하게 ‘내가 이해 못 하는 언어’로 다시 설명했다. 나는 그들과 소통하지 못했다. 나는 말없이 교과서에 있는 그림만 멀뚱하니 보며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겠구나 하고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목이 꽉 막히는 수업이 끝나고 학교 밖을 나오면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이곳의 언어를 배우고 내조를 하느라 집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아버지는 모스크바의 어두운 하늘이 더 어두워져서야 퇴근했다. 지루한 마음에 리모컨을 들어 TV를 틀었다. 얼마 없는 채널을 돌려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된 방송이 나왔다. 밖에는 시시로 한파가 불어닥쳐 나갈 수가 없었다. 물론 만나러 갈 사람은 없었다.
그때 나는 언어적으로, 공간적으로 세상과 단절되었다고 느꼈다. 당시의 나는 그 단절의 생활을 반복하면서 우울감이나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았는데 아마 내가 너무 어려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나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건 2년의 러시아 생활이 끝났을 때 확인 할 수 있었다.
러시아 생활의 마무리는 그 시작만큼이나 급작스러웠고 준비기간이 짧았다. 아버지의 직장이 갑자기 바뀌면서 우리는 이곳에 올 때처럼 다시 정신없이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 후 출국 비행기를 탔다. 부모님은 한동안 친척과 이웃들을 만나며 과거 공산주의의 수장이었던 나라의 생활상을 들려주기 바빴다. 나 또한 인사차 얼굴을 비췄다. 나를 2년여 만에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같은 말을 했다.
“얘가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네.”
그도 그럴 것이 러시아에 가기 전까지의 나는 아파트 단지에서 유명한 골목대장이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틈만 나면 밖에서 아이들하고 땀 흘리며 놀던 소란스러운 아이가 무슨 조화인지 불과 2년 만에 수줍음 많은 얌전한 아이가 된 것이다. 어른들은 러시아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부모님에게 물었으나 부모님은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변화는 성격에서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집 옆의 초등학교에 3학년으로 입학했다. 입학 첫날 국어 시간에 선생이 나에게 일어나서 교과서를 읽어보라고 했을 때 두 번째 변화를 알 수 있었다. 교과서를 펼치고 글자를 보자 눈앞과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식은땀이 나며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책을 더듬더듬 읽었다. 나를 지켜보던 보던 선생은 그만하고 앉으라고 했다. 나는 이후로도 마치 언어를 잃어버린 것처럼 행동했다. 일상적인 대화는 문제가 없었지만 책만 보면 긴장하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마음속에서 내가 뭘 좋아하고 뭐가 되고 싶은지 마음속에서 스스로와 대화하지 못했다.
30살에 한 심리상담 센터를 방문한 적이 있다. 나의 과거사를 듣던 심리상담사는 언어가 안 통하는 타지에서 세상과 단절되어 있던 시간이 언어 능력하고 성격에 변화를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아도 나는 러시아에서의 단절이 여태까지의 나를 지웠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마치 빨래를 해서 색이 빠진 빨랫감처럼 나의 성격, 취향, 언어 등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워졌다. 어쨌든 9살의 나는 내가 지워진 자리에 나를 다시 그려야 했다. 언어를 회복하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기 위해 성인이 될 때까지 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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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의 경험을 통해 단절의 기능을 알게 된 나는 여전히 세상과의 단절을 택한다. 왜 나는 다시 그려낸 나를 다시 지우려고 하나? 현재 나의 어떤 부분을 지우고 싶은 것일까? 이따금 번아웃이 올 때 나는 나에게 묻은 세상의 얼룩들을 본다. 그것들은 내가 살아가면서 얻은 것으로 저마다 목소리를 낸다. 인생의 가치는 무엇이다, 몇 살까지 얼마는 모아야 한다, 성공한 사람은 이렇게 행동한다고, 인간관계는 이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것들이 내 몸에 억지로 삽입된 이물질처럼 느껴질 때 나는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한다.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도 만나지 않고 방에서 세상과 나를 차단한다. 핸드폰도 안 보며 내 마음에 집중한다. 그러면 얼룩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얼룩이 사라진 자리엔 다시 나를 그린다.
인간관계로부터 상처받았을 때, 일에 지쳤을 때 사람들은 러시아에 가본 적이 없어도 세상과의 단절을 선택하곤 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아는 것 아닐까?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서는 때때로 현재의 나를 지워야 한다는 것을. 세상과의 단절은 현재의 묵은 나를 지운다는 것을. 이를 본다면 사람을 만나지 않고 방에 있는 이들을 ‘그냥 쉬었음’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례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진정한 자신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