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는 특별한 공간에 대한 환상을 품고 살았다. 무협지의 주인공이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수련해 고수가 되는 것처럼 고된 현실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을 갈망했다.
속세와 동떨어진 절은 그런 나의 판타지에 더없이 부합했다. 내가 유독 절에 친밀도가 높았던 것은 내가 '불(佛) 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성장 환경이 불교와 접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외할아버지는 60 넘어 불교 대학을 졸업하신 법사 셔서 나는 외가에 갈 때마다 다양한 불교 경전과 용품을 접했다. 나의 어릴 적 이름은 이름 모를 스님이 지어주셨다. 그래서일까? 나는 불도가 아님에도 마음이 복잡할 때면 절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물론 커가면서 일반인보다 못한 승려나 불교계의 불미스러운 소식을 접할 때면 한동안 절을 찾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삶에 짓눌리는 한 겨울이 찾아왔다. 눈보라에 갇힌 것처럼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나는 습관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비밀스러운 공간을 찾다. 구글 검색창에 '템플스테이'를 검색했고, 조계종 웹사이트로 2박 3일의 강도 높은 수행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충남 공주의 한 절이었다.
예약 당일에 나는 세 시간 가까이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절은 생각보다 규모가 꽤 컸는데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종무소에 들어서자 직원은 달처럼 밝은 얼굴로 나를 반겨주었다. 그녀는 꽤 빡빡한 일정을 간략하게 안내한 후 내가 머물 방으로 안내했다. 방으로 가는 길에는 '용맹정진', '일취월장' 같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직원은 템플스테이 외에도 장기간 머물며 수행하는 신도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아마 지금이 승려와 신도들이 함께 특훈을 하는 기간인 듯했다. 그래서인지 절은 많은 인파로 부산스러웠고 또 고요했다.
나는 법당에서 떨어진 독채에 혼자 배정받았다. 짐을 풀고 저녁 공양을 했다. 절이 어둠 속에 완전히 파묻힐 때쯤 주지 스님의 설법을 듣기 위해 저녁 예불에 참석했다. 법당 앞에는 승려들이, 뒤에는 일반 신도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허리가 굽은 주지 스님이 들어오자 모두가 일어섰다. 그는 눈이 반쯤 감긴 채 법상에 앉았는데, 나이 때문인지 정신이 맑아 보이지 않았다. 발음은 뭉개졌고 목소리는 끊어진 활시위처럼 늘어졌다. 그는 마치 혼자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 같았고,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했다. 법당에 경청은 없었다. 오직 절을 대표하는 어른에 대한 존경만 가득했다.
저녁 예불을 시작으로 나는 2박 3일의 수행 일정에 하나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일부는 선택 사항이지만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참선과 새벽 예불, 108배를 모두 해냈다. 종무소 직원들은 나처럼 모든 일정을 소화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절 생활이 잘 맞는 체질 같다고 말했다. 사실 그랬다. 예전에 템플스테이를 몇 번 했지만 할 때마다 나는 절 생활이 잘 맞는다고 느꼈다. 참선을 하고 새벽에 불경을 외는 것이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편안했다. 그렇게 강행군을 마치니 처음에 절에 들어올 때보다는 마음이 한결 고요해져 있었다.
2박 3일의 일정은 금방 흘러갔다. 퇴실 시간이 가까워지자 나는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주지 스님이 보살들의 부축을 받으며 내 숙소까지 와 있었다. 쌀쌀한 바람을 맞고 있는 노인을 보고 놀란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보살 한 명이 조심스레 말했다.
“혹시 출가하시려고 오신 것 아닌가요? 주지 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던데요.”
나는 그런 적이 없다고, 그냥 템플스테이를 하러 왔다고 말했다. 보살은 내 말을 주지 스님의 귀에다 대고 전달했다. 주지 스님은 잠시 웅얼거리더니 다시 한번 내게 출가하러 온 게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다시 아니라고, 무언가 오해하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지 스님은 부축을 받으며 조용히 돌아갔다. 작아지는 그의 뒷모습을 나는 기이하게 쳐다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깨달음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언가 나에게 변화가 일어난 것 아닌가? 그래서 주지 스님이 착각으로라도 내 방에 찾아온 것 아닌가?' 잠시 창밖을 멍하니 보았다. 특별한 공간. 그 안에서 자신이 성장했다. 그렇게 착각했던 나는 앞으로의 앞날이 조금은 수월해질 것이라 기대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 모른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 때문에 분노했고 성공해야 한다는 주변의 말에 휘둘렸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2박 3일 템플스테이로 큰 변화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로 완전히 똑같을 거라고 예상하지도 않았다.
만약 절에서 3일이 아니라 1년, 혹은 10년을 수행했다면 나는 현실의 모든 문제에 초연할 수 있을까? 종무소 직원으로 일하는 친척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티를 안 내서 그렇지 승려들도 불안하다. 속세의 모든 것을 버리고 절에 들어왔는데 깨달음을 얻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어쩌면 현실을 견딜 힘을 기르기 위해 길을 떠나거나 비밀스러운 수련 장소를 찾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현실을 견딜 수 있는 맷집은 오직 현실에서만 길러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속세에서 살아가는 모두는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일상이 괴로움뿐인 하찮은 것이라 여기지만, 사실 평범해 보이는 우리의 삶이야말로 신성한 훈련 장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