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은 왜 한국어를 배우지 않았을까?

by 흑선백지

미국인 동료 케빈은 한국에 오래 살았음에도 한국어를 거의 못했다. 식당에서 한국말로 주문을 해야 할 때는 언제나 나나 다른 한국인 동료에게 부탁을 했다. 우리가 그의 어눌한 한국어 실력에 대해 놀리면 그는 언제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지금 열심히 배우는 중이라고 둘러댔다.


왜 케빈은 한국어를 배우지 않았을까? 한국인 아내가 영어에 능숙해서? 운 좋게 사내 공용어가 영어인 회사에 입사해서? 회사 직원이 저마다 추측을 내놓았지만 내 생각은 이랬다. 내가 보기에 케빈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어쩌다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서 한국이란 나라에 살게 되었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다. 그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한국의 수직적인 기업문화나 보수적인 문화를 비꼬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어쨌든 그에게 한국이라는 장소는 장기적인 생존에 매력적이 없었고 따라서 한국어를 배우는 시간과 노력이 불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그가 내심 하루빨리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상하게 나는 케빈이 밉지가 않았다. 나도 한국이 싫어서 떠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현지인도 이런데 외국인이라고 무조건 한국을 좋아하길 바라는 것도 웃긴 노릇이었다. 게다가 케빈은 능력 있는 개발자였다. 그의 짓궂은 농담은 때때로 한국 정서와 안 맞긴 했지만 회사 동료로서는 큰 하자가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가까운 것은 아니어서 내가 퇴사한 후 케빈하고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케빈이 있던 회사에서 배운 기술은 몇 년이 지나자 한물간 것이 되었다. 나는 채용시장에서 나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했다. 돌이켜보면 사회의 구성원들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를 학습하길 요구받았던 것 같다.


중국이 한창 성장할 때 취준생들은 중국어 자격증을 따기 위해 중국어 학원을 등록했다. 한한령으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철수하자 코딩이 새로운 생존 언어로 떠올랐다. 문과 출신들은 개발자로 일하기 위해 중국어 대신 코딩학원에서 파이썬과 자바 같은 언어를 배웠다. 지금 배워야 하는 언어는 무엇일까? 분위기를 봐선 인공지능인 것 같다. 키보드 몇 번 두드리면 인공지능이 코드를 대신 써주니 기업들은 개발자를 뽑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AI 전문가들은 미래에는 인공지능을 관리하는 이들이 살아남을 거라고 한다.


이외에도 자산을 불리기 위해선 주식, 채권, 펀드 같은 금융의 언어를,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선 부동산 시장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언어들을 보며 나는 살아남기 위해 이것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케빈을 닮아간다. 배우고 배워도 생존이 보장되지 상황에서 내 마음 안에서는 게으름이 고개를 든다.


‘또 배워야 하나? 도대체 언제까지 배워야 하는 거지? 이걸 배우면 정말 도움이 되긴 하는 건가?’


나는 자기 계발과 성장으로 포장된 위태로운 배움의 챗바퀴에 흥미를 잃어간다. 어쩌면 케빈은 단순히 한국이란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한국어를 배우지 않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도 나처럼 이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언어를 배우는데 지친 상태였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번아웃은, 생존을 위한 학습에 내몰리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저항일지도 모른다.


문득 케빈이 궁금해진다. 지금 그가 계속 한국에서 한국어를 모르는 상태로 있을지, 아니면 한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 미국으로 돌아갔을지.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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