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닫힌 셔터 같던 점주의 마음을 녹인 건 정답이 아닌 '위로'였다
새로운 팀으로 발령받은 지 어느덧 석 달. 편의점이라는 작은 세상 속에서 새로운 인연들과 부대끼며 제법 익숙한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영업관리자에게 가장 큰 자산이라는 '라포(Rapport)'가 켜켜이 쌓여갈 무렵, 내 마음 한구석에 유독 '아픈 손가락'처럼 남아 있는 점주님 한 분이 계셨다.
오랜 시간 팀의 고민거리로 여겨졌던 그분은 과거 점포를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산금 문제로 본사에 깊은 불신을 갖고 계셨다. 아무리 객관적인 수치로 정산 방식을 설명해 드려도, 점주님께는 그저 "팀장에게 눈탱이(?)를 맞았다"는 억울함으로만 남은 듯했다. 논리가 통하지 않는 벽 앞에 섰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묵묵히 그분의 쏟아지는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뿐이었다.
재계약 시점이 다가왔다. 상권은 전형적인 오피스 지역. 밤이면 인적이 끊기는 그곳에서 야간 운영은 점주님께 수익이 아닌 '인건비라는 짐'일 뿐이었다. 나는 점주님의 실질적인 이익을 위해 심야 미영업 조건과 배분율 조정을 제안했다. 야간 운영을 포기하는 대신 몸이 편해지고, 나가는 인건비를 아껴 실질 수익을 높이는, 누가 봐도 점주님께 유리한 '상생의 카드'였다.
게다가 근처에 무인 판매점까지 생겨 매출이 감소하던 터라, 노후된 시설(WIC) 교체까지 포함한 이 제안은 사실 회사 입장에서도 큰 배려였다. 만약 점주님이 거절하신다 해도, 이 정도 조건이라면 새로운 운영자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점주님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강한 거부와 함께 배분율 유지와 24시간 운영을 고집하셨다. "이제 딱 2년만 하고 안 할 거야"라며 시설 교체조차 마다하셨다. 논리적으로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었다. 본사가 싫다면서도 재계약은 원하시고, 수익이 안 나는 야간 운영은 고집하시는 그 속내를 알 길이 없었다.
답답함이 차올랐지만, 나는 다시 전략을 바꿨다. 이성적인 설득의 계약 이야기는 덮고, 대신 그분의 '마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기로 했다.
점주님이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옛날이야기들, 서운함, 그리고 근거 없는 불신들까지. 나는 토를 다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참 힘드셨겠네요", "그런 마음이 드실 수도 있겠네요"라며 그분의 감정 마디마디에 공감을 보탰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렀을까.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점주님의 목소리가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쏟아낼 만큼 쏟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공간이 생긴 것일까. 그때 다시 조심스레 본론을 꺼냈을 때, 점주님은 신기하게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이셨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정교한 숫자가 아니라,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에 대한 '신뢰'였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영업관리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데이터를 분석하는 이성적인 머리일까, 아니면 상대의 호소에 응답하는 뜨거운 심장일까. 정답은 결국 '상대방의 성향이라는 악보에 맞춰 연주할 줄 아는 유연함'에 있을 것이다. 아무리 완벽한 숫자라도 마음이 닫힌 사람에게는 그저 소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재계약을 잘 마무리 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점주님이 잘되기를 응원했다. 지난 세월 맺혔던 응어리는 조금이나마 풀리셨기를. 그리고 다시 시작될 2년의 여정은 밤의 고단함 대신 낮의 활기찬 수익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