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컷
최근에 나는 몇 년 동안 기르던 긴 머리카락을 짧게 컷 했다. 그것도 셀프로.
몇 달 동안 일곱 번에 걸쳐서 지금의 짧은 단발이 되었다.
한방에 훅 잘라내면 왠지 섭섭할 것도 같아서 머리 길이를 즐기다가, 싫증 나면 또 자르고
마음껏 내 맘대로 잘라 보았다.
이번 기회에 컷 연습도 할 겸 시도를 해본 것이다.
그런데 재미가 있었다.
자를 때 사각거리는 가위소리가 어찌나 통쾌하고 시원한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도 딱이었다.
내가 직장을 다녔다면 감히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난 지금 집에서 쉬고 있는 중이니까 얼마든지 실험 대상이 될 수 있다.
실패를 하면 그때는 미용실 가서 다듬어 달라고 하면 되니까.
그런데 말이다.
미용실에 가지 않으면 엄청 우스꽝스러울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눈치를 못 챈다.
내가 먼저 말해주기 전에는.
그러고는 미용실에서 한 줄 알았다며 칭찬까지 해준다.
사실 내가 셀프 컷을 하게 된 데에는 전적으로 염색 때문이었다.
나는 염색이 매번 참 고민스럽다.
염색이란 게 한번 하게 되면, 매번 뿌리 염색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깔끔해지니 별 수가 없다.
그러니 스타일을 지키려면 염색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난 또 쉽게 염색을 하고 계속해서 머릿결은 나빠지고,
그러니 이건 염색을 하는 한 머릿결까지 좋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하여 여태 나는 머릿결이냐, 스타일이냐의 갈림길에서 스타일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게 머릿결에 치명적이라 해도 여태껏 염색을 하는 내내
머릿결이 희생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그랬던 내가 이제는 머릿결을 선택했다.
오랜 세월 염색을 하는 동안 고통을 담당했을 나의 머릿결을 위해서.
이렇게 머릿결을 고민하고 있을 때 또 다른 문제가 고개를 쳐들었다.
바로 반갑지 않은 손님, 새치였다.
앞으로는 새치가 점점 더 늘어날 텐데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염색을 안 하려고 하냐고.
왜 나는 하필 이 시점에서 머릿결을 고민하고 있느냐고.
새치를 보이고 다닐 수는 없지 않으냐고 내 안의 누군가가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결정했다.
내가 새치를 커버하고 싶을 만큼 하얘지기 전에,
내 검은 머리카락이 다 사라지기 전에,
내 검은 머리카락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는 잘 버티고 있다.
그래서 난 혹시나 유혹에 넘어갈까봐 미용실에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