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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 펄 Apr 05. 2023

옷정리 할 때마다 고민

무스탕의 하소연


내가 이 주인을 만난 지 어언 20여 년,

지금은 이 집에 붙어 있는 것만으로 겨우 버티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나마 여태 날 버리지 않고 지켜준 주인이 의리 하나는 끝내준다.

내가 또 주인 복은 좀 있나 보다.

다른 사람 같으면 난 벌써.. 상상도 하기 싫다.

그렇다고 맘 편하게 있는 것은 아니다.

벌써 나를 안 찾은 지가 몇 년이나 됐는지 아나.

그때 몇 년 만에 한 번 입더니,

여태 나를 안 찾는다

주인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참담한 신세로

오늘도 난 옷장에 갇혀 있다.


지난번 옷 정리할 때 주인은,

날 한참을 들고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너를 어떡하면 좋으니? 하고 내게 물었다.

...'나야 뭐 당연히, 뭘 어떻게?' 하고 말하고 싶었다.

내게 묻는 말이 아니라 혼잣말이었다.

그러고는 딸을 불렀다.

”이 옷은 아빠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사준 건데.. 진짜 비싼 옷이거든.

버리기는 아깝고 놔두기는 뭐 하고 입지도 않으니 어떡하지??

그러자, 딸은

“그냥 기념품이다 생각해."

주인은 다시 날 바라보며,

“ 도대체가 너를 어쩌누? 너를 내 옷장에 놓고 보기가 역겹다. "

그러더니,

"딸, 이거 네 옷장에 넣어두면 안 될까? 내 눈에 띌 때마다 고민스럽네.”


그래서 나는 졸지에 주인 옷장에서 딸 옷장으로 강제이사를 했고,

그 옷장의 어린것들 눈치 보며,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었다.

가끔 어린것들이 주인 딸의 선택을 받고 나를 무시할 때면,

난 그 옛날 우리 주인이 나를 신주 모시듯 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그때 주인은 결혼을 하기 전이라 참 이곳저곳 여행을 많이 다니고 매일 외출을 할 때마다 나를 찾았다.

주인의 온기를 느끼며 외출도 하고 여기저기 바깥세상에 재미난 것들을 구경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주인은 나를 입고 뽐내기를 좋아했다.

아마 이 옷장 어느 옷도 나만큼 주인과 함께 한 옷은 없을 거다.


그렇게 주인의 총애를 받던 어느 겨울, 주인의 배가 전보다 많이 나오는다 싶더니

그새 결혼을 했는가 보다.

나는 날씬하게 이쁘게 입어줘야 하는데.. 살짝 불만이 생겼다.

 

나는 코트에게

“야, 폼 안 나게 시리 이게 뭐냐? 아 놔?”

코트 왈,

"이제 정말 우리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야. 아기가 태어나면 우리를 잘 찾지도 않을걸.

그냥 편한 옷만 찾고, 어쩌다 한번 외출할 때 빼고는 말이야.

그러다가 후딱 몇 년 지나 봐, 유행이다 뭐다 하면서 우리를 내다 버리려 할걸."

...

때로 고깃집을 가면 고기 냄새가 잔뜩 봬어서 베란다에 쫓겨날 때 투덜 되곤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주인의 손길만으로 행복했던 시절이라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 옷장 안에서 나보다 제일 비싸고 가장 사랑받는 옷 있으면 나와 보라고.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이렇게 나는 꼰대가 되고야 말았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하지만 왜 이리 내 시대는 오지 않는단 말인가!

나의 유일한 히든카드는 그래도 다시 유행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거다.

우리 주인과 함께 오색찬란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오늘도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다시 주인을 만나려면 그때까지 주인이 날 버리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우리 주인이 가난해져야 나를 그래도 찾아주지 않을까? 이런 몹쓸 생각도 해본다.

아무리 비싼 값어치가 있어도 시대를 잘 만나야 인정을 받고

유행이 지나면 가치가 없어지니 이것이 우리의 운명인가 보다.

다음 세상에는 내가 주인으로 태어나고 싶다.

그러면 나는 기념으로라도 남편과의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일 년에 한 번은 꼭 찾아 줄 테니까.


아 내가 지금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이제 또 옷정리를 또 할 텐데....... 우짠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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