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의 묘미
겉표지의 무늬, 촉감, 사이즈까지 3박자가 주는 작은 설레임
요즘 소설가 김연수 님의 산문 ‘소설가의 일’을 3번째 읽고 있다. 모든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서 항시 졸음이 밀려올 때까지 열심히 읽다가 잔다. 이 책 내용은 당연히 두말할 것 없이 좋으니까 패스하고 이 책사이즈가 너무 좋아서 미치겠다.
마치 별이(내 인생고양이)를 가슴에 안고 있으면 품에 속 들어오는 것이 완전히 꽉 차지 않으니까 그 빈 공간이 또 어떤 감칠맛처럼 자꾸만 안고 싶은...
게다가, 겉표지가 무늬가 있어서 약간 투박한 듯한 그 촉감이 좋아서 가슴에 안고 쓰다듬는다. 내가 까칠까칠한 면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아들이 나를 닮아서 잠을 잘 때 발에 까칠까칠한 요를 깔고 자는가 보다. 내 여태 살면서 책을 이리 안고 쓰다듬어 본 적이 있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책의 겉표지가 주는 그 투박한 듯 한 무늬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3박자가 딱 맞았을 때만이 나도 모르게 이해할 수 없는 이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책의 사이즈도 아주 중요하다. 난 이 사이즈를 너무나 좋아할 뿐 아니라 그 부분이 꽤 중요하기 때문이다. 딱 잡았을 때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와 잡았을 때 딱 좋은 나만의 사이즈다. 아마도 사람마다 딱 맞는 느낌의 사이즈는 다 다를 것이므로 이건 어디까지나 내게 맞는 사이즈일 뿐이다. 그런데 책 표지까지 마음에 든다. 젠장.
사실 김훈의 책도 좋아하는데 그 책도 사이즈와 책 안의 페이지들의 까칠까칠한 면을 좋아라 한다.
이 책도 ‘책갈피가 그리 까칠까칠했으면 아주 좋았을 텐데... 사실 김연수 님의 ‘소설가의 일’은 겉표지의 무늬 때문에 그나마 안의 종이가 매끄러운 것을 어느 정도 넘길 수 있고 응당 겉과 속이 다 까칠한 것은 조화롭지 않을 수도 있기에 괜찮다.
물론 두 책의 공통점은 책 내용의 가치다. 그게 사실은 가장 중요하고 빠질 수 없는 주요한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근데 사실 위에 말한 것들이 지금 말한 책의 가치 중에 작은 부분이지만 덤으로 좋으니까 사람 미치게 하니까. 내가 그 부분을 너무 좋아서 편집자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내가 딱 좋아하는 3박자를 다 갖춰서 책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 편집자를 찾아서 내 책도 이렇게 만들어달라고 할 참이다.
나는 이런 부분에서 편집자가 되어었야 했을까? 책의 내용에 취해서 책을 이쁘게 만들고 종이는 뭘로 써야 독자들이 오감으로 책을 잘 읽을 수 있을까? 뭐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거 이런 것을 다 떠나서 서둘러야 된다.
얼른 나의 종이책을 만들고 싶다. 재작년부터 책을 읽다 말고 이런 것들을 좋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부터 입버릇처럼 '내 책은 사이즈가 어떻고 감촉은 어떻고.... 하면서 말을 하고 있었다. 정작 책은 쓰지도 않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 책을 써야 될 때가 됐나 보다.
그렇지 않고 이런 생각을 할 리가 없다. 어떤 어쩔 수 없는 시기가 된 걸까? 또 이렇게 의미부여를 갖다 붙이고 있다.
내가 잊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거기가 정확히 어느 공항인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싱가포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젊은 남자가 캐리어도 엄청나게 큰 것을 옆에 두고 아주 두꺼운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 책은 대략 어떻게 생겼냐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책이랑 다르다. 응 어떻게 설명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책은 예를 들면 교과서라고 할 때 이 책은 좀 더 세로가 길고 가로가 짧다.
교과서에서 세로로 길어지고 한 3분의 1, 가로가 3분의 1일 짧아지는 만큼 세로가 길어지는 것이 맞겠지. 암튼 두껍기는 오지게 두꺼웠는데 난 그 책이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었다.
암튼 그 장면이 30년이 다 되어가는데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나는 그때 본 그 책처럼 생긴 책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그렇게 길고 두꺼워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디자인이 있다. 그보다는 훨씬 작고 조금 두꺼우면 된다. 그러면 잡고 읽기도 좋고 어디를 가지고 다녀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사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있어서 전자책을 보면 되는데 웬 종이책???
이젠 종이책의 시대가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왜 이제 뒤늦게 종이책 타령이란 말인가.
아니 난 원래부터 종이책 타령이다.
전자책은 도대체가 맛이 나질 않는다. 종이책만 몇십 년을 읽다 보니 전자책을 보면 그게 암튼 감동이 덜 온다고 해야 되나. 이건 억지나 트집이지만.
정보는 그저 그렇게 빨리 후딱 보고 치우면 되지만 좀 더 오래 음미하고 싶고, 어떤 보고, 만지고, 느끼고 싶은 감동을 종이에 가둬두고 싶다고 할까?
정확히 왜 그런지 모르게 직관적으로, 감각적으로 종이가 좋다. 구닥따리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꼭 고집하지는 않는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만 해도 휴대하기 좋고 아주 만족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