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인상을 구기고 있다.
'별 볼 일 없는 얼굴이 잔뜩 찌푸리고 있으니 오죽하랴마는.. '
이 구절은 어제 드라마 '추노'에서 나온 말이다.
대사가 얼마나 구구절절 잘 썼는지 10년 된 드라마인데 깜짝 놀랐다.
난 그 시절 '추노'를 안 본 이유가 있다. 바로 다른 드라마를 열망했든
아님 끝난 드라마의 여운에 다른 것을 받아들일 여건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크다.
당장 그 당시 내가 빠진 드라마가 뭔지 찾아낼지어다.
아무튼지 저 무튼지 간에 어떤 유튜브 댓글에 '추노'가 지금 넷플릭스에 올려도
엄청날 거라고 지금 봐도 여전히 뒤처지지 않는 포스를 느낄 수 있다길래 귓전으로 듣다가
어제는 왠지 아주 오래간만에 티브이를 볼 때가 됐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바 거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쭉 안방 침대에서 ‘꼼짝 마라’였다.
그래서 보게 된 추노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왜 이제야 봤는지. 좀 알 것 같다.
그 당시 봤으면 아마도 난 나이가 더 어릴 때이고 하니 가슴이 지금보다 더 뛰지 않았을까?
하늘이 나와 추노를 가로막았다.
안 그랬음 큰일 날 뻔했다.
그나마 십 년이나 흘러 본 게 신의 한 수라고나 할까
무한한 카타르시스를 오가는 경험까지 선사했다.
장대한 이야기 구성과 캐릭터들의 아우라를 맘껏 뽐 낼뿐 아니라 구성이나 대사가 정말이지 요즘보다
더 꽉 찬 그 뭐랄까 그러니까 '정말 잘 만든 드라마'였다.
암튼 눈빛 하나 표정 하나가 지금 이 나이에 느끼기 힘든 감정을 느끼게 해 줘서 내가 감사를 할 지경이었다.
대사는 또 어떠한가. 찰지고 능청스럽고 요즘 같으면 성추행이라고 할 수 있는 말들이
안방 드라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 내가 어찌나 놀랍던지.
'배꼽을 맞췄네. 뒷물을 해라. 이년아 저 년아'는 아주 기본.' 성적인 말들이 얼마나 난무하는지
요즘 같으면 심의에 걸릴 말들이지만 그러나 저 시대에 충분히 저러하지 않았겠는가.
연기 잘하는 중년 노년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명품연기는 또 어떻고.
아 정말 남자들은 거의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아니다. 명품 몸매에 옷 쪼가리를 겨우 걸치는 수준.
사실 몸매가 저러한데 옷을 입어 가릴 수야 없지 않은가.
목욕 씬은 중요 부위만 가리고, 갈색 피부와 초콜릿 복근을 그대로 드러내고, 몰래 훔쳐보는 주모가 얼마나 집중을 하는지 그 마음 조금은 이해가 될 듯도 한데..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이렇게 벗고 다니는 게 입고 다니는 옷보다 나으니까. 마치 옷 사이로 뚫고 나온 근육을 어찌할 수 없다는 듯이 그저 받아들이라는 듯이.
그들은 옷 살 돈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벗고 다니는 것이고 그 완벽한 몸매는 실지로 배우들은 만드느라 힘들었겠지만 드라마 내용으로 봐서 들이고 산이고 뛰어다니며 노비를 쫓다 보니 복근이 자연히 생기고 근육은 자연 붙은 것뿐이라는 설정이 어느 정도 시청자에게도 공감이 심히 대는바 어쨌든 방송심의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사실 저 드라마를 보면 알지만 거의 남자 중심이다. 여자나 노비는 다를 게 없었다.
만일 여자들이 저리 벗고 다녔다면 방송심의에 걸렸겠지. 특히 목욕씬은 어찌나 적나라한지.
사실 그가 너무 완벽해서 보기는 좋았지만 그렇게 하나 둘 남자 배우들의 목욕씬은 드라마에 한두 번은 기본으로 나온다.
옷을 갈아입는 씬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웃통을 보여 줘야 되니 남자배우들을 그 신을 위해 엄청 몸만들기에 애를 쓸 것이다.
그런데 그러고 저러고를 떠나서 여자배우들이 저러면 여자를 비하시킨다 상품화한다고 난리이면서 남자 배우들은 너무 희생양을 만드는 것 같다.
어느 순간에 시도 때도 없이 웃통 벗는 씬의 드라마가 난무하는데 지겨웠다. 씬에 꼭 중요한 장면에 고심해서 찍어야 될 것을 이건 아니다.
물론 시청자로 그렇게 희생해 주는 배우 고맙기도 하지만 너무 난무하지는 말기를.
암튼 '추노'의 남자들은 사실 그냥 땡큐였다. 어쩌다 벗고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내내 입고 있을 때보다 벗고 다니니.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추노'같은 경우는 설정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보면서 극에 몰입할 수 있었지만
어떤 드라마는 쓸데없이 남자 배우를 자꾸 벗기었다. 그게 자연스럽다면 몰입되지만 어떤 의도가 보이면 짜증스럽다.
무조건 벗는 씬이 나오면 좋은 건 아니지 않은가. 극의 흐름도 있는 것인데 자꾸 핵심을 끊고 억지로 갖다 붙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음에는 내가 눈살을 찌푸렸던 드라마의 장면들을 찾아봐야겠다.
암튼 그런 면에서 '추노'는 한 군데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았다. 물론 그걸 즐긴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은 그게 옷이었다.
그래서 정말 배우들의 공이 크다.
남자 셋이 한 팀이 되어 노비를 잡으러 다닌다.
그중 한 명 대길은 어릴 적 자신의 집 여종으로 있던 언년이를 잊지 못하고 10년째 찾아다니고 있는 일편단심형이다.
양반이었다가 상놈으로 전락하고 승냥이라는 별명의 독종으로 소문난 인정사정없는 추노꾼 일인자.
최 장군은 꼭 관우를 연상케 하는 외모와 인품. 이 역시 완벽한 몸매에 무예가 뛰어나다. 최 장군은 그 존재 자체로 주모 둘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주모 둘은 최장군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별 짓을 다하지만 최 장군은 그저 침묵만 할 뿐이다.
막내는 그야말로 난봉꾼. 유부녀고 기생이고 간에 치마만 두르고 있으면 걸떡 되고 꼬신다.
시간만 되면 온몸을 던져 여자들을 후려치고 다니느라 바쁘다. 일할 때 빼고는 거의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더 늙기 전에 실컷 재미를 봐야 된다나 어쩐다나. 이 막내가 젤로 연애 사업하느라 바쁘고 형들은 다 조신한데 제일 날라리에 하는 말마다 걸쭉하다.
그리고 새로운 사당패 여자애는 또 어찌하나. 어릴 때부터 사당패 쫓아다니며 이놈 저놈 안 거쳐 간 놈이 없기에 이들보다 인생에 대해 더 많은 경험을 했다고 자부한다.
막내가 시도 때도 없이 걸떡 대지만 그 계집은 왠지 일편단심인 대길에게만 마음이 간다. 어쩐지 한 사람을 잊지 못하고 10년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멋지고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거친 말과는 다르게 약속한 것은 지키는 그를 보고 한 번 의아해하는데.
추노는 가만히 잘 봐야 한다.
얼마나 장대한 드라마인지 모른다. 그냥 얼뜻 봐서는 노비를 잡으러 다니는 추노꾼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안에는 정치가 있고 시대의 흐름이 있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인물들 각자의 스토리가 함께 버물어져 있는 한의 조화이다.
기막힌 장면이 액션씬이라 하겠다.
넓은 풀밭에서 대길이와 송태하가 처음 싸움을 하던 그 씬이 매우 인상적이다. 시작되자마자 가슴이 뛰었다고나 할까?
두 남자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다. 그 기운을 알아보지만 전진은 있되 후퇴는 없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둘이 벌써 만나다니 둘 중의 하나는 분명 죽을 텐데 얼마나 긴장감이 돌겠는가.
과연 누구 편을 들겠는가.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지만 서로 싸울 이유가 없지만 단지 쫓는 자와 쫓기는 자로서의 운명이기에 돌진하는 싸움만이 있을 뿐이다.
정말 그 싸움은 명품이었다.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두 인간이 너무 멋있어서.
툭하면 날아다니고 머리 날리고 눈빛에 신경 쓰느라 거기다가 명품 몸매 팔뚝은 또 어쩌고.
어쩌면 실지로 그 신을 찍을 때 둘이 붙을 때의 각도나 머리모양 눈빛에 더 신경 쓰느라 시간 좀 걸렸으리라.
암튼 그때 하이에나인 천지호가 대길이를 죽이려고 화살을 쏟아대다가 송태하가 맞고 싸움은 끝난다.
하이에나 천지호는 뒤늦게 대길이의 상대방이 대단한 싸움꾼이고 쫓기고 있는 노비라는 것을 알자 금세 말을 바꾼다.
자기가 아니었으면 대길이는 죽었다나.
졸지에 희극배우가 되어서는 시장 한복판에서 경험담을 늘어놓는데 그는 추노보다는 주둥아리 터는 게 자기 적성에 맞는 듯했다.
어찌나 실감 나게 구라를 치는지 현대에 태어났으면 대단한 스토리텔링 작가나 유투버로 돈 깨나 벌었을 것이다. 그리고 천지호 하이에나의 존재가 진짜 살짝 나쁜 기운이 있으면서 코믹하다. 이 부분도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성동일하고 아주 잘 맞는 역이다. 약간 비굴하면서도 밉기보다는 익살스럽다고 할까?
진짜 이 드라마는 반전은 기본이고 마당극을 보는 것 같은 넉살과 웃음의 포인트를 정말이지 잘 살린 드라마다.
아~ 그리고 언년이와 송태하가 우연히 만나 서로 돕고 같이 도망을 가는 처지가 되면서 이 산 저 산 다니느라 진짜 고생 많이 했겠다. 이다해는 평지에서의 씬은 잠깐이고 거의 다가 산이나 풀숲을 뛰어다닌다.
여배우로서 개고생을 엄청했다. 툭하면 산에서 뛰어다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길이 말 달리는 씬 또한
어찌나 시원하게 먼지 날리며 달리는지 서부영화의 총잡이들 못지않았고 또 마구 달리는 그 속도감에 야생의 짐승처럼 보였다. 그리고 쫓기고 쫓는 과정의 디테일도 엄청 잘 살렸다. 워낙에 예리한 고수들이기에 작은 것까지 잘 살렸다.
그리고 잊을 뻔했는데 여기 애기 배우가 정말 너무 이쁘다. 말 한마디 안 하고 늘 어른들에게 안겨있다. 상황이 늘 도망을 다녀야 하기에 그러한데, 어른들이 심각한 대화를 할 때마다 아기도 함께 심각해지는 표정이 뭘 알고 그러는 건지 연기를 정말 잘한다. 아기가 너무 이뻐서 아기만 봐도 재밌는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