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집 막내로 태어난 은희. 부모님은 아들인 명석에게만 큰 기대를 한다. 둘째인 언니는 집안의 골칫덩어리로 항상 아버지와 대립한다. 막내인 은희는 모범생인 오빠와 날라리인 언니 그 사이 그 어디쯤. 별다른 개성 없이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이다.
남자친구도 한 명 있다. 그나마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는 존재. 그런데 이놈이 날 배신하고 다른 여자아이와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고 학을 뗀다. 은희를 좋아하는 후배 명희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느 날, 얼마 후 그놈은 은희를 잊지 못하고 찾아온다. 이내 다시 받아주는 은희.
은희는 한자 학원을 다닌다. 거기서 남다른 면이 있는 담배 피우는 여선생님이 새로 오신다. 수업 시간에 배운 '세상에 아는 얼굴은 많으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 '라는 한자성어가 가슴팍에 박힌다. 은희는 외롭다. 집에 가족이 있어도 마음을 나눌 수 없고, 친구 정희는 위기의 순간에 배신을 하고도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기 싫어하며 외면한다.
한 술 더 떠서 남자친구와 걸어가던 중 남자친구의 엄마를 만나게 되는데 은희네 집을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남자친구의 엄마는 남자 친구를 끌고 간다. 그저 끌려만 가는 남자친구.
그녀는 이 세상에 마음을 나눌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그나마 은희가 마음을 열기 시작한 한자 선생님.
어느 날 그녀마저도 사라진다.
은희를 좋아던 후배도 한 학기가 지나니 자신을 보고 모른 척한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해서 주인공 은희를 아프게 한다. 은희의 오빠가 툭하면 은희를 손찌검하는 것을 부모님은 어느 정도 허용하는 분위기이다. 오빠가 자신을 때려도 아무도 자신을 보호해 주는 사람이 없자 무력감을 느낀다.
94년 그 당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년 반 정도가 지난해였다. 생각해 보면 어느 이른 아침, 그러니까 7시가 지나서 라디오에서 ‘성수대교 붕괴’ 소식을 알려주던 그때에 난 신천에 살고 있었다. 그 사건은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보고도 믿겨지지 않는 비현실감이 느껴졌다. 가끔 상상을 해봐도 너무도 끔찍하다. 차를 타고 달리다가 갑자기 도로가 내려앉아 몇십 미터를 하강하는 그 순간 몇 초도 걸리지 않는 그 짧은 시간! 두려워할 시간조차 모자란 그 시간! 누구에게는 그 시간 달콤한 잠에 빠져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밥을 먹고,.. 너무나 평범한 그 시간에 그들은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오늘에서야 영화 ‘벌새’를 보던 중 영화 속 뉴스에서 버스가 납작하게 찌그러진 것을 보았다.
얼마나 떨어지는 순간의 충격이 컸으면 저렇게 납작해졌을까? 그 안에 사람들은 그럼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이것이 그냥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 아무리 그런 바람이 바래도 바뀌지 않는 현실.
그리고 거의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또 하나의 대형 사건인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 있었다.
나는 그때 부산에 있었다. 그때도 매우 더운 날로 기억된다. 삼풍백화점은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낸 끔찍한 사건으로 오래오래 나를 괴롭혔던 사건이다.
그리고 2016년 4월 ‘세월호’ 사건은 그 후 몇 년 동안 온 나라를 멘붕에 빠뜨린 사건이었다. 정말 너무나 슬프고 공포스럽다. 인간이 만든 불안정한 것들에 대한 불신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