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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 펄 Apr 15. 2023

산티아고는 구상 중

내가 여행하고 싶은 나라

과거에는 여행하고 싶은 나라가 너무 많았다. 

아마도 세계지도의 거의 반은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세계 곳곳을 들쑤셔가며 안방 드나들 듯 세계를 누비고 신나게 모험을 떠나고 싶었다.

그렇게 겁도 없이 상상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일라이 로스 감독의 ‘호스텔’이란 어마 무시한 영화를 보고야 말았다. 그날은 장대비가 시원하게 내리던 날이었다. 남자 여행자 3명이 어떤 남자의 소개로 동부 유럽에 귀가 솔깃할만한 여행 정보를 알려줘서 가게 되면서,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일을 겪게 되는 이야기다. 솔직히 이 영화는 비추다.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며칠을 헤어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지금 보면 별로 충격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요즘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그때가 30대 초중반쯤 낭만주의였던 내가 받은 충격은 상당히 컸다고 할 수 있다.

암튼 그 이후로 여행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러나 그 이후 여행할 곳이 생기면 또 어김없이 싹 다 잊어버리고 가곤 했다.

사진: Unsplash의Les Argonautes

최근 2,3 년 전에 ‘스페인 하숙’을 보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어졌다. 그래서 준비물까지 세세하게 적어본 적이 있다. 최대한 간단하게

그런데 한 달 코스로 잡았을 경우, 하루에 30km를 걸어야 한다는데, 그게 가늠이 안 되었다.

보통 매일 1시간 조금 넘게 6km 정도 걸을 때였다. 그럼 하루에 그 5배를 걸어야 한 달 안에 끝낼 수가 있는데 그게 나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기간을 좀 더 넉넉하게 잡고 걸으면, 두 달로 잡았을 때 하루 15km인데 이 정도도(?).. 이러면서 계산을 해본 적이 있다.

보통 그들이 아침 일찍부터 해지기 전까지를 걷는 것 같았다.

나도 그걸 기준으로 잡아야지 싶었지만 거리를 계산해서 걸으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데 이렇게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하루 종일 걷기만 했을까? 복음을 전하려고 다녔으니 몇 달이나 몇 년이 걸리지는 않았을까?

가능하다면 나는 천천히 걸으면서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쉬기도 하면서 여행하고 싶다.

워낙에 걷는 것을 좋아하니까. 아름다운 곳에서 내 삶을 돌아보고 관계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은데....

하도 깨달음을 얻었다는 증언이 많으니 뭐가 있기는 있겠지.

그런데 4개월 전부터 족저 근막염 때문에 오래 걷지를 못해서 이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일단은 구상 중이다.

사진: Unsplash의Mike Tinnion 

가장 최근에 여행하고 싶은 나라는 ‘아프리카’다.

유튜브에서 동물들에 관련된 영상을 보다가, 내 버킷리스트에 여행 가고 싶은 곳을 ‘아프리카 대평원’이라고 적었다.

사실 여태 살면서 아프리카에 한 번도 가보고 싶은 적은 없었다. 

갈 곳이 없어서 아프리카를 가나. 

일단 적도 부근이고 태양기피증이 있는 나로서는 최악의 조건 중 가장 큰 이유다. 

거기다가 벌레, 뱀,.... 더위... 등등.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총집합해 놓은 곳을 굳이?

그러나 자연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대자연의 장엄한 풍경을 꼭 보고 싶었다.

아름다운 노을도 한없이 바라보다가 동물들도 보고 싶은 이유가 가장 큰 이유다.

나아가 딸에게 사자 새끼가 너무 귀여워서 키우고 싶다(?)고 했더니 잡혀 먹힌다고 그건 좀 아니라고 해서 웃고 말았다만.

사진: Unsplash의Timon Studler

지금 현재, 예전에는 여행 많이 다니는 사람이 부러웠는데 지금은 하나도 안 부럽고

아름다운 경치를 봐도 그림의 떡이고 감흥이 없다.

내가 너무 무미건조해진 걸까? 우울한가? 회의적인가? 염세적인가?

나이가 들면 이런 증세가 더 심각해진다는데 그렇다면 자연스러운 증세인 건가?

그러면 지금은 내가 너무 겁쟁이가 돼서 가고 싶은 나라가 없는 건가?

아니다. 모든 게 100% 안전하다고 해도 가고 싶은 나라가 지금 현재는 도무지 생각이 안 난다.


차라리 ‘ 여행 가기 싫은 나라’가 어디냐고 물었다면 좀 쉬웠을까?

그냥 싫은 나라.

가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나라.

그 이름 중국.

예전 어릴 때부터 싫더니 지금까지도 싫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소설의 영향이지만. 서태후의 흔적도 싫고, 수호지에서 사람고기로 만두를 만들어파는 가게 때문도 싫고..

그중에 20대 초에 읽은 '초한지'결말 때문에 더 싫어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영상을 통해 중국의 이모저모를 보며 더 경악을 금치 못한 것들이 많아서 더럽고 무서워서 싫다. 완전 털도 나지 않는 쥐새끼를 접시에 놓고 젓가락으로 먹는 영상, 길거리 아무 데서나 볼일을 보는 문화, 보기도 역겨운 장면들이 꽤 된다.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라서 더 억울하다만) 안 봤으면 그나마 좀 나아겠지.

암튼 싫은 것은 확실히 알겠다.


그래도 여행을 꼭 가야 한다면

예전에는 외국만 떠올렸는데 이제는 한국에 안 가본 곳이 가고 싶다.

될 수 있으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 자연 그대로인 곳...

발전이 좀 덜 된 곳. 이러다가 무인도로 갈지도 모르겠네.. 쩝..

아마도 전라도 쪽과 남해 쪽이 될 것 같다.


여행은 가고 싶을 때 가야 한다.

여건과 경제적으로 자유하다면 말해 뭐 해? 지만

어른들이 젊었을 때 실컷 여행을 가라고 하신 말씀이 이제는 이해가 된다.

나이 들면 가고 싶어도 몸 이곳저곳이 아파서 못 가고,

가고 싶은 마음이 뚝 사라지는 이 놀라운 경험도 기다리고 있으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가자.









사진: UnsplashAndreas Fic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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