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만 가득한 과거 불안하기만 한 미래때문에
후회후만 가득한 과거 불안하기만 한 미래때문에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알츠하이머 할머니의 머릿속의 이야기를 풀어낸 드라마. 내가 지디에게 컨셉 아이디어를 말했던 것과 비슷한 이야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를 슬프게 바라본다. 정작 본인은 기억이 나질 않아 슬플 것도 힘들 것도 없다. 자고 일어나면 늘 새로운 세상에 그는 자신이 매우 긍정적인 사람으로 생각한다.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여기까지였다. 그런데 ‘눈이 부시게’는 정말 큰 반전이었다.
주인공 혜자는 아나운서 지망생. 대학 4년을 마친 25세의 아가씨. 중학교 때 좋아하는 오빠 때문에 아나운서가 장래희망이 되었고 그래서 그냥 적성이 있는지도 모르고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을 갔다. 어떤 소신도 없이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대학을 졸업했지만 뭘 해야 될지 모르고 놀고 있다.
오빠가 한 명 있다. 그도 백수. 엄마는 동네 작은 미용실을 하고 아빠는 택시 운전사다. 딱 봐도 평범한 소시민적인 삶이다.
그녀의 절친 둘. 한 명은 중국집 딸. 그녀는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을 배달하고 주방에서 갖은 재료를 다듬고 썰고 하는 일을 한다. 한때 혜자의 오빠와 사귄 적이 있었다. 현재 백수에 찌질이로 변한 오빠를 보면 그때로 다시 돌아가 반품하고 싶은 심정이다.
또 한 명의 친구는 7년째 가수 지망생. 지하실에서 연습만 죽어라 하고 커피 심부름만 하고 와도 즐거워하는 초 긍정주의.
주인공 혜자는 딸 바보인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아나운서가 될 몸인지라 엄마 또한 금이야 옥이야 공주 대접. 오빠는 찬밥 신세. 엄마는 혜자가 아나운서가 되면 미용실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간다고 입버릇처럼 말을 하곤 한다.
그녀는 동창회 모임에만 갔다 오면 꽐라가 되곤 한다. 갈 때마다 대학 때 짝사랑하던 선배를 바라만 보다가 오기 일쑤. 올해는 대학 때 후배가 잘 나가는 아나운서가 된 것도 배 아픈데 그 선배에게 꼬리를 치는 모습에 열받아서 막 마시다 인사불성.
한편 그 동네에 이사 온 지 두어 달 된 키 크고 잘생긴 청년이 할머니와 살고 있다. 그 남자와 막 썸 같은 썸으로 설레는 시간을 보내며 친해질랑 말랑할 때쯤 그녀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그러자 그녀가 어렸을 때 바닷가에서 주운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를 이용해서 죽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시계를 돌리고 돌리고. 무한 돌리다가 결국 아버지를 되살려낸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아침식사를 하러 주방으로 걸어 들어오는 그녀를 보고 가족들 모두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녀는 75세 할머니가 되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듯이 자신의 시간을 너무 많이 써버린 그녀는 그만 확 늙어버렸다.
그것을 인정하기에 너무 억울해서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보낸다.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청춘. 마치 꿈을 꾸듯 그렇게 청춘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짧고 아쉽고 허망한 한때였다.
마치 우리네 인생처럼~
그래서 그 멋지고 잘생긴 그이와는 절대로 연결될 수가 없다. 그녀가 그렇게 몇 달을 절망과 좌절로 보내는 동안 그 청년에게도 많은 일들이 생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불량 아버지와 엮인 사건으로 인해 아나운서를 포기하고 노인 복지센터에서 노인들을 이용해서 돈을 번다. 질이 안 좋은 아는 형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그리고 이미 4화 정도에 너무나 극적으로 이야기가 펼쳐져서 더 이상 무슨 이야기로 나머지를 채울 것인지 궁금했는데 역시 작가의 능력은 여기서부터였다.
노인들의 이야기를 철저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시계에 대한 궁금증을 계속해서 심어주는 가운데 다시 청춘으로 되돌아가는 기대를 할 때쯤, 어느 드라마처럼 그런 결과를 바랐건만.
결국 이 이야기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할머니가 젊었을 때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를 자신의 엄마 아빠로 생각했던 거였다. 우리가 모두 25세의 딸이 75세의 할머니로 변해도 엄마의 딸이지만 늙어버린 비밀을 감추기 위해 미용실 손님들에게 이모할머니라고 말하거나 엄마와 시장에 가서도 시어머니라고 말하던 것. 그리고 경비를 하면서 젊은 사람에게 변을 당하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자신이 이 사람 엄마라고 말하는 부분이 그 당시에는 딸이라고 믿었기에 마음이 아팠던 부분이다. 근데 이 할머니가 딸이라고 믿고 한 말들인데 결국 그때 상황은 마치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 같이 말하는 할머니를 조금은 이상하게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이 의아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혜자가 자신이 딸이라고 생각하고 남들 앞에서 엄마를 며느리로 아버지를 아들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그들의 표정이 묘했는데 그들은 혜자가 느끼는 관점이 아니라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그 표정은 혜자가 이제는 자신들을 몰라보는 단계까지 갈 때 더 잘 드러난다.
남편을 잃은 혜자가 미용실을 꾸리며 어렵게 아들을 키울 때 그녀는 아들에게 매우 엄했다. 그래서 아들은 엄마에게 풀리지 않는 감정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내리던 날, 엄마가 사라졌다는 전화를 받고 병원에 와서 찾은 엄마는 자신을 몰라보고 마당을 쓸고 있었다.
"아들이 다리를 절어서 눈이 오면 넘어질까 걱걱정된다"는 혜자의 말을 듣게 된다.
그가 산동네에 살았을 때 학교에 가려고 나오면 가파른 언덕길을 항상 누군가 쓸어놓았던 기억이 났다. 그건 바로 엄마가 한 것이었다. 아들을 몰라보는 엄마 입에서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듣게 되자 아들은 회한의 찬 눈물을 흘리며 오열한다.
아 슬프도다. 망각은 자신에게는 차라리 축복일지도. 하지만 타인에게는 크나큰 저주로구나.
드라마는 계속해서 노인들을 통해 공감을 준다. 늙는다는 것은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젊음, 그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가장 큰 축복이다. 이 시대 젊은이들은 특히나 힘들게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유한 노인을 택할 것인가 가난한 젊은이를 택할 것인가.
나도 늙어가고 있다. 하루하루 몸이 다름을 느낀다. 인생은 공짜가 없다. 젊음은 너무 짧고 늙음은 너무나도 길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라도 젊음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다른 것보다도 내게는 아마도 그게 가장 바꾸고 싶은 것이 아닐지. 왜 어른들이 그리도 젊음을 부러워하는지.
그 자체로 이미 너무나 완벽한 것임을.
20대 중반 난 대체 왜 그렇게 모든 것을 빨리 선택해 버린 걸까?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이 지나와 보니 한 줄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나의 많은 가능성과 기대를 뒤로 보내고 보내다 지금의 나와 마주하고 있다.
젊음은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반짝반짝한.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남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순간일지도 모른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젊음은 그냥 한때의 "빛나는 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