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 이야기 : 경계 위에서
하진에게 경계란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었다.
신입 시절부터 조직은 복잡했고, 능력보다 관계가 앞서는 순간들이 반복됐다. 밤새 준비한 결과가 다른 사람의 공으로 포장되던 경험들, 자신의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다른 이름 아래 놓이던 순간들 속에서 하진은 배웠다.
사람을 최소화하면 일이 또렷해진다는 것을.
불필요한 감정의 개입을 차단하고, 일의 본질만 밀어붙이는 태도는 그녀를 업계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로 만들었다. 그 방식은 오랫동안 유효했다.
그러나 지금, 그 경계는 더 이상 하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했다.
더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다루기에는 한계가 분명했고, 시대의 변화도 분명히 느껴졌다.
실무를 언제까지 직접 붙들 수 있을지, 급변하는 시대를 떠받칠 구조가 있는지—이 질문들에 하진은 선뜻 답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몇 년 뒤에도 나는 같은 자리에 멈춰 있지 않을까.’
현실적인 고민 앞에 발이 멈췄다.
그때 재현이 제안해 왔다. 대행사 시절부터 하진의 명성을 익히 들었다는 그는, 하진이 평생 다루고 싶어 했던 규모의 프로젝트를 들고 나타나 동업을 제안했다.
재현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판을 여는 감각은 뛰어나지만, 가볍다는 말과 말만 앞선다는 평가가 동시에 따라붙는 사람이었다.
하진은 계산했다.
‘판은 재현이 깔고, 업무의 중심은 내가 쥔다면.’
통제 가능한 분업, 예측 가능한 관계.
재현의 계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은 잘 벌리지만 실무 완성도가 약한 그에게 하진의 전문성은 필수였다. 정치 없이 일만 하는 사람은 재현에게도 안전한 파트너였다.
서로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했다.
그렇게 손을 잡았다.
하지만 현장은 예상과 다르게 흘렀다.
회의 자리에서 하진은 준비해 온 자료를 차분히 설명했다. 그러나 분위기를 움직인 것은 재현의 언변과 타이밍이었다.
클라이언트 미팅에서 시선은 재현 쪽으로 천천히 기울었다.
그는 전문 용어를 거의 쓰지 않았다. 대신 변화된 환경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냈다.
고객들이 궁금해하는 최신 플랫폼의 흐름에도 익숙했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어느새 판단의 기준도 그쪽으로 옮겨가 있었다.
전문성은 여전히 필요했지만, 상황을 움직이는 힘은 다른 곳에 있었다.
며칠 뒤 또 다른 자리. 클라이언트의 무리한 요구들이 이어졌다. 일정은 줄이고, 조건은 늘리고, 방향은 흔들렸다. 하진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현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하진이 끼어들자, 재현은 부드럽게 상황을 정리하며 자리를 넘겼다.
돌아오는 길, 하진은 참아왔던 말을 꺼냈다.
“동업이라면, 최소한 제 의견은 제가 직접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차 안의 공기가 묘하게 무거워졌다.
하진은 시선을 창밖에 둔 채 말을 이었다.
“우리는 전문가예요. 시작부터 모든 요구를 안고 가면, 결국 기준을 잃게 되겠죠.”
재현은 한숨처럼 웃었다.
“선배 말이 틀린 건 아니에요. 저도 기준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덧붙였다.
“근데 오늘은 논의의 물꼬를 트는게 먼저였어요. 지금 선을 그으면, 아예 다음 얘기를 못 할 수도 있잖아요.”
하진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재현이 말을 이었다.
“제가 다 받아들인 게 아니에요. 일단 듣고, 수용하면서 우리가 조정할 시간을 번 거예요. 그게 제 방식입니다.”
그 말은 변명이 아니었다.
다만 하진과는 다른 계산이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더 큰 일을 해보자고 했잖아요. 제 방식도 조금은 믿어주세요.”
정중했지만 선이 분명했다.
같이 가기로 한 이상, 한 사람의 기준만으로 움직일 수는 없다는 의미였다.
하진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혼자 결정하던 때와는 달리, 일은 더디게 흘렀다.
설명해야 할 것이 늘었고, 누군가의 판단을 이해해야 했으며 동시에 나를 이해시키기위해 설득해야 했다.
타인이 자신의 삶 안으로 들어올 때 생기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그것이 하진을 가장 불안하게 만들었다.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팀이 있었다.
하진은 그곳에서 누구보다 성실했고, 아이디어를 아끼지 않았다.
일로 인정받으면 자연히 신뢰도 따라온다고 믿었다.
중요한 결정들이 하진이 모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참 뒤였다.
뒤늦게 알게 된 것은, 그들이 하진을 중요한 논의에서는 배제하고 이용하기 편한 위치에 두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하진은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관계를 계산의 언어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신뢰는 공유한다고 생각했다.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곧 자책으로 이어졌다.
‘내가 일만 보고 사람을 보지 못한 걸까.’
그 질문은 오래 남았다.
그것이 하진이 능력으로 승부하겠다고 선언한 이유였다.
그때부터 그녀는 관계를 정서가 아닌 기능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경계가 결국 하진을 진짜 고립으로 밀어 넣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믿었지만, 경계라는 선택이 하진을 다시 한번 배신한 셈이었다.
재현이 나쁜 의도를 가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문제는 누군가가 하진의 삶 안으로 들어올 때 발생하는 변수들이다. 그 불편함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최근 몇 년 사이, 하진은 자신보다 능력이 떨어진다고 여겼던 사람들이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가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들에게는 하진이 갖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사람이었다.
관계를 이어가고, 그 관계가 다시 기회로 돌아오는 구조.
그들은 타인과 엮이며 생기는 변수들,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그것을 받아들이며 자기 자리를 만들어왔던 것이다.
젊었던 하진은 그런 관계 맺기를 비효율적이라 여겼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인연도 정리하는 게 깔끔하다고 믿었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익숙하고 안전한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을 확장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함께 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현재의 하진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관계에서 도망쳐버렸던 자신.
재현과의 동업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을 견딜 자신이 없다면, 여기서 멈추는 게 맞다.
예전의 하진이라면 동업계약서를 바로 찢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주저했다.
‘이 불편함은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문제다. 지금 도망치면, 몇 년 뒤에도 나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후회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진은 계약서를 서랍에 다시 넣었다.
대신 메시지를 보냈다.
‘미팅 전에 이야기합시다. 우리가 분담해서 할 수 있는 것을 정리해 보죠.’
답장은 빠르게 왔다. 서로 당황스런 부분이 있었다는 말과 함께, 대화하자는 동의였다.
하진은 여전히 이 선택이 옳은지는 알 수 없었다.
혼자일 때보다 피곤하고, 자존심도 상했다.
그러나 그냥 가보기로 했다.
이 불편함을 견디는 일이, 어쩌면 자신이 평생 미뤄왔던 다음 단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멈춰 있던 하진의 내면의 시계가, 타인이라는 톱니와 맞물리며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계라는 관성이 더 이상 그녀를 지켜주지 못하는 지점에서 버팀의 무게중심이 조용히 이동하고 있었다.
아직 방향은 확실하지 않지만 그녀도 이제 이전과는 다른 궤도 위에 서 있었다.
당신은 언젠가 다시 마주해야 할, 피해서 지나온 자리가 있는가?
당신이 지켜온 경계는, 아직 당신을 보호하고 있는가?
*본 글에 등장하는 인물은 메시지 전달을 위해서 재구성된 가상의 페르소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