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역사를 지키는 집념의 버팀
유럽의 성벽은 굴곡진 역사와 인생, 전쟁과 상처의 상흔을 그대로 새긴 채 지금도 흔들림 하나 없이 서 있다. 후회도, 원망도, 두려움도 없다. 그냥 그 자리에서 도시를 지킨다. 내가 성벽을 좋아하는 이유다.
몬테네그로의 코토르(Kotor)에 도착하면 바로 보이는 것이 중세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지이다. 험준한 산비탈의 구불거리는 좁은 곡선길을 따라 꼭대기까지 수 백 년에 걸쳐 성벽을 쌓아 올렸다고 한다. 자연의 웅장함에 어우러진 인간의 집념이 빚어낸 장관이다. 성곽길을 따라 요새까지 올라가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그 코스가 하드코어라고 한다. 여유가 있다면 도전해 볼 만하겠다.
구시가지 돌길을 걸을 때는 둔탁하게 울리는 소리가 정겹다. 그 정겨움에 빠져 골목에서 길을 잃고 헤매느라 그룹투어 버스를 놓칠 뻔했다.
작다고 만만하게 보면 안 되는 도시다.
코토르와 더불어 가장 인상적인 도시 중 하나가 지브롤터(Gibraltar)였다. 지브롤터 바위(The Rock)는 핵심적인 요새역할을 했던 장소인데 바위 꼭대기 (The Top of The Rock) 전망대에서 보는 전경이 너무 몽환적이어서 전쟁과 과거의 이야기가 무색해진다. 지브롤터는 스페인 최남단 '땅끝'이라고 불리며 지중해와 대서양이 맞닿은 영국령 도시다. 바위 꼭대기 전망대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바라보면 한마디로 영국 땅에 서서 아프리카와 스페인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지브롤터는 전략적 군사기지였으며 대포로도 유명하다. 마을입구나 거리에 전시된 대포를 쉽게 볼 수 있다.
지중해를 끼고 바위산 주변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는데 있는데 뒤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원숭이가 갑자기 뛰어들더니 한 관광객의 안경을 벗기고 달아났다.
모두 놀라서 '무슨 일이야'하다가 허탈하게 웃을 밖에 없게 만드는 야생원숭이. 지브롤터 바위산의 명물이다.
결코 착하거나 순하지 않다. 공격한 것인지 장난친 것인지 알 수가 없지만 바위산에 오르는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전망대 입구에 커다란 안내문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마카크 원숭이를 존중해 주세요!'
요새와 대포가 기억에 남았던 또 다른 마을은 프랑스의 레 보 드 프로방스이다.
암벽꼭대기에 지어져서 한쪽은 바위산으로 둘러싸였고 다른 한쪽은 마을을 이루는 평원이 펼쳐져있다.
제주도'빛의 벙커'의 모델이 된 '빛의 채석장'이 그 지역에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하나라고 하길래 '레 보 드 프로방스'의 '보'가 프랑스어로 Beaux(아름다운)인 줄 알았는데 Baux 가문에서 유래한 Les Baux-de-Province였다. 'Baux'가문은 중세 귀족 가문으로 바위절벽 위에 요새화된 성채를 소유하면서 이 마을은 'Baux'가문의 본거지가 되었다.
아름다움을 넘어서 중세권력을 상징하는 가문의 이름이 마을의 이름인 것을 보면 가문의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 같다.
마을의 중심부는 대부분이 관광지이지만 소수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마치 가평의 스위스마을처럼.
레 보 드 프로방스에서 버스로 30분 이동거리에 아를(Arles)이 있다.
아를이 고호가 사랑한 도시여서 예술의 도시인 줄 알았는데 정작 도시의 첫인상은 고흐에 대해서 무심한 듯 보였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그냥 일상이란 듯이.
오히려 정말 인상 깊었던 것은 로마건축양식의 원형경기장과 노천원형극장이다.
1세기에 건축되었다. 그 시대를 이해하는 두 가지 역사는 로마의 팍스로마나(로마의 평화)의 안정기가 시작된 시기이며 예수님이 태어나고 활동하시던 시대라는 것이다.
그 시대의 유산을 지금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게다가 원형경기장은 콜로세움보다 작은 규모이지만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게 놀랍고, 콜로세움에 절대 뒤지지 않는 견고함과 위풍당당한 자태가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든다.
검투사 경기장이었지만 전쟁 때는 침략자들의 공격을 피해서 경기장 내에 도시를 형성하고 살았던 요새였다고 한다.
반면 원형극장은 대부분 파괴되었다가 일부 복원되었고 중세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돌로 만들어져서 중후한 느낌이다. 무대와 객석을 걷다 보면 지난 2000여 년 동안 울려 퍼졌을 희곡과 공연, 그리고 관객의 웃음과 눈물이 겹겹이 이곳에 쌓여있는 것 같다.
아를의 두 고대유산은 과거의 명맥을 이어 현재에도 축제와 공연의 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요새화된 도시 중 다시 가고 싶은 도시가 타오르미나(Taormina)이다.
눈길을 끈 것은 타오르미나의 벽과 돌의 색감이다. 코토르의 성벽이 은은한 회백색에 검은 그을음이 스민 색인 반면 타오르미나의 벽은 주황빛이 감도는 붉은 벽돌색이다. 코토르가 어둠 속의 겸허한 모습을 간직한다면 타오르미나는 난관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 같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절벽에 위치한 타오르미나는 중세시대 내내 지배세력이 교체되면서 외세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두 성문을 세워 도시를 봉쇄하였다. 두 문을 연결하는 코르소 움베르토 거리가 중세도시의 중심이 되었고 그런 외세의 압박 속에서도 끝까지 지켜낸 고대그리스식 원형극장이 타오르미나의 상징이 되었다.
코르소 움베르토 거리는 지금도 번영과 생동감이 있는 활기 찬 거리이며, 원형극장도 현재 오페라와 예술 공연 등 문화의 중심지로 사용되고 있다.
원형극장과 코르소 움베르토 거리는 연재시리즈에서 다시 한번 이야기할 것이다.
내가 본 중세의 흔적은 그렇게 화려해 보이지 않았지만 자부심은 강했다.
견디고 버틴 흔적들, 방어와 생존을 위한 절실함, 장식보다는 단순하고 검소하며 실용적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서 있는 힘, 그 버팀은
돌과 돌 사이에 스며든 시간과
삶의 기록이 쌓인 역사적인 무게와
어려움 속에서 지켜낸 의지의 결과물이다.
수백 년 동안 변함없는 진지한 묵직함이 주는 위안이 있다.
그것이 버팀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