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다 위의 일상

지중해 크루즈 여행

by 흑진주

작년 5월. Sun Princess호를 타고 지중해를 달렸다.

크루즈 여행은 내 인생 첫 경험이었다.

내가 탄 썬프린세스 호도 신조 크루즈였고 첫 번째 항해였다.

우리는 지중해를 향해서 아테네 피레우스(Piraeus)항을 출발했다.


1. 바다 위의 작은 세상


크루즈는 바다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작은 세상이다.

음악, 춤, 게임, 스포츠, 예술과 쇼핑 등 세상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축소판이다.


매일 아침 룸으로 크루즈 데일리 뉴스레터가 배달된다. 레스토랑 메뉴부터 크루즈 내에서 진행되는 '오늘의 이벤트'와 피트니스센터 요가 프로그램도 한눈에 볼 수 있다.

크루즈 선실과 복도, 계단 곳곳에는 대형 그림작품들이 걸려있다. 아주 오래된 고가로 보이는 오르간과 악기, 여러 버전의 지중해 지도와 전시물이 곳곳에 비치되어 박물관을 연상시킨다.

선상 가장 꼭대기 층에 있는 조깅트랙에서 바닷바람과 햇살을 맞으면서 조깅을 한다.

하루에 세 번 줌바댄스시간이 있어서 아침에 리듬에 맞춰 경직된 몸을 풀어본다.

레스토랑마다 언제나 사람들이 넘쳐나며, 바에서는 하루 두세 번씩 라이브 공연 중이고, 서빙하는 직원들이 와인과 음료를 들고 다니며 권한다.

야외 수영장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서 수영하며 영화를 볼 수 있게 해 두었다.

내가 크루즈에서 가장 즐긴 것은 당연히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과 라이브뮤직과 바다이다.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사람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의 크루즈 패션이다.

데일리 뉴스레터에는 그날의 드레스코드가 적혀있다.

2주 동안 두 번의 Formal Day와 Dress to Impress Day가 있었다.

Sun Princess (일명 태양공주)는 이름처럼 화사하고 이 크루즈 승객들은 드레스코드에 매우 민감하다.

지정된 날에 여자들은 각종 파티용 이브닝드레스를 뽐내며 남자들은 블랙 턱시도우를 차려입고 나온다.

레스토랑들은 저녁특별만찬을 준비하며 메인광장에서는 특별공연이 이루어진다.

이런 분위기는 크루즈마다 약간씩 다르다고 한다.

데일리뉴스레터 열번째 날 찍은 사진

2. 크루즈의 가성비, 기항지 투어


그리스 아테네에서 출항하여 9개의 기항지를 거쳐 이탈리아 로마에서 하선하는 일정이었고, 기항지에 머물 때마다 그룹투어를 했다. 덕분에 몬테네그로,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의 도시들을 방문할 수 있었다.

이동수단과 숙식을 한꺼번에 해결하고 여러 도시를 다닐 수 있는다는 것은 정말 큰 메리트이다.


그룹투어는 크루즈와 제휴한 여행사를 선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안전'때문이다. 개인 투어를 하다가 어떤 이유로든 늦으면 배는 기다려주지 않지만 제휴여행사 패키지의 경우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크루즈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준다. 사전예약도 필수다.


기항지투어 이야기는 다음 편부터 게재하려고 한다.


3. 방대한 복합산업 집합체


크루즈 산업이 선박, 항공, 관광, 호텔, 엔터테인먼트, 물류, 유통, 스포츠 등 어마어마한 규모의 비즈니스가 서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는 '복합산업 집합체'라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크루즈를 경험해 보고서야 그것이 무슨 말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기장의 설명에 의하면 내가 탔던 썬프린세스 호에는 승객 4,500 여 명과 직원 포함하여 총 6,000여 명이 승선했다. 직원만 1,500 여 명이란 이야기다. 그 직원들 중에는 아시아인들도 많았다.


보통 레스토랑은 10시면 문을 닫는데 24시간 오픈해 두는 곳이 있다. International section으로 커피, 음료, 주류 및 간단한 머핀이나 와플을 판매하는 곳이다.

2주 일정으로 머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다녔더니 단골이 되었고 직원들이 내 얼굴을 알아보고 인사도 하고, 농담도 던지고, '어제는 어디를 다녀왔는지' 묻기도 한다.

난 그들이 크루즈에서 일하는 게 어떤지 물어보았다.

크루즈 자체를 즐기며 무엇보다 각국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그들이 이 크루즈에 직원으로 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관계자들이 관여했을지 상상해봤다.


6,000여 명에게 배 위의 작은 도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기위해 연결된 수많은 기업들과 정부기관들, 비즈니스 네트워크와 규모만으로도 크루즈는 거대사업체이다.


4. 한 편의 영화 같은 풍경


Sun Princess 대형간판이 붙어있는 DECK 위, 오롯이 나와 바다만 남은 지점에 서서 마치 터키블루 빛 비단천을 넓게 펼쳐놓은 듯한 지중해 바다를 한창 바라보았다.

영화 타이타닉의 명장면, 뱃머리 위에서 케이트 윈슬렛이 디카프리오에게 의지하여 바다를 향해 양팔을 벌리고 바람을 느끼는 장면이 떠올랐다.

새벽미명, 햇살 가득한 정오, 저녁노을에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는 한 점의 그림 같다.

어디 장소로 움직이든 곳곳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하는 소리와 음악소리는 자연스럽게 배경음악이 된다. 바다는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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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금 나는 보수 중


"나도 날아서 다시 저 바다로 나가고 싶어"


30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마음먹고 가게 된 여행이라서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여행이 끝나고 다시 무엇을 시작할 지 아무 계획이 없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사회는 바다 한 복판과 같다. 잠잠한 바다 깊은 곳 먹이사슬 세계가 존재하듯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힘의 논리가 흐르며, 바다에 파도와 풍랑이 일듯 사회도 외부 영향에 쉽게 휩쓸린다.

직장생활은 파도타기 하는 것과 같다. 때로는 미끄러지고 휩쓸리다가도 균형을 잡고 다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뒤집히는 것도 한순간이다.


암초에 부딪혀 침몰한 타이타닉처럼, 생각지 않았던 암초에 걸려 내 인생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간 적이 있다. 그 암초가 무엇이었든 내가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았나 보다. 예상치 않은 곳에 정박을 하고 내리긴 했지만, 저 넓은 바다로 다시 나갈 기대와 소망을 꿈꾸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 한가운데서 풍경이 주는 낭만과 내 현실 사이를 수십 번은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는 지금 보수 중'이며 여행은 그 과정의 일부란 것을.

바다 위의 일상은 현실과의 단절이 아니라 현실과 연결된 브리지이고, 나는 다시 연결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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