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품은 도시들

발걸음 사이로 누리는 갤러리 산책

by 흑진주

겸손한 헌신과 발견의 기쁨


몬테네그로의 페라스트(Perast) 마을에 들어서면 안내문 하나가 먼저 눈에 띈다.

이 마을의 역사와 예술을 대표하는 세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다.

지중해 최초의 항해학교를 세운 선장이자 학자, 군사적인 용맹을 떨친 해군제독, 그리고 페라스트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트리포 코콜랴(Tripo Kokolja)는 세계적인 거장으로 소개되지 않는다.

평생의 대부분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코토르 만의 작은 공동체에 헌신한 지역 화가로 페라스트 예술의 바로크 시대를 이끌었다.

페라스트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바위의 성모섬 성당에 들어서면 이 화가의 그림이 천장과 벽면을 채우고 있다.


바위의 성모섬(Our Lady of the Rocks)의 기원은 어부들이 바다에서 성모상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그 자리를 기억하기 위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항해를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돌 하나를 더 보탰고 그렇게 수 백 년 쌓여서 섬이 되었으며 그 위에 성당이 세워졌다고 했다.


이 성당의 그림들은 기적을 증명하려고 하기보다는 겸손한 믿음에 기반한 지속적인 헌신을 보여준다. 선원들에 의해 축적된 믿음 위에, 고향을 지극히 사랑한 한 사람이 평생 쌓아 올린 헌신으로 이 작은 공간은 갤러리가 되었다.

이렇게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의미가 되는 예술이다.

페라스트 바다 한가운데 성 조지 섬(좌)과 비위의 성모 섬(우)
바위의 성모섬 성당
바위의 성모섬 내부의 그림
성당 내부의 '바위의 성모섬' 그림

페라스트의 성모섬이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된 장소라면, 개인의 영적인 갈망이 예술로 이어지는 장소도 만날 수 있다.

바로 험준한 바위 산 정상에 있는 몬세라트 미술관이다.

수도원 입구 옆에 조용히 자리 잡은 이 미술관은 처음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수도원과 자연경관이 이미 너무 강렬하기 때문이다.

미술관 내부로 들어가면 시대와 화풍이 서로 다른 그림들이 이어진다. 유명한 화가의 작품도 있고 처음 보는 작가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이곳의 많은 작품이 봉헌과 기증으로 모였다는 점이다. 그림들은 과시하기 위해서 걸려있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서 삶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평안을 구하기 위해 걸려있다.


수도원과 바위산 절경을 소재로 한 그림들도 여러 번 등장한다. 대부분 카탈루냐 지역의 모더니즘 작가들이 그린 그림이다. 어느 것 하나도 같은 표정이 없다. 색깔도, 구도도, 붓터치도 다양하다.

각자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렸다. 그러나 몬세라트에 대한 경외와 애정은 한결같다.


나는 이곳에서 조용한 기쁨을 누렸다. 여행 중 숨겨진 안식처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 이것이 여행의 묘미이다.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Port d'Aval
산티아고 루시뇰(Santiago Rusinol): El pati blau
조아킴 미르(Joaquim Mir): El Cami de la Cova (중앙)


갤러리가 된 도시를 누비는 기쁨


피렌체에서는 자유여행을 선택했다.

목적지 정하지 않고 시간에 제약받지 않고 여유롭게 도시를 감상하고 싶었다.

무작정 걸었다. 광장 하나를 지나면 다른 거리가 나오고, 그 길 끝에서 다리를 만나며, 다리를 건너면 풍경이 달라진다.


가장 먼저 발길이 멈춘 곳은 시뇨리아 광장이었다.

거리의 조각상이 사람들과 어우러진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마치 사람들과 함께 역사와 예술을 온몸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

우리는 광장에 있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이탈리아 음식을 먹으며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다시 조각상과 건물로 시선을 돌렸다. 조각상 앞에서는 여전히 가이드의 설명을 열심히 듣는 사람들이 있고, 어떤 이들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다른 이들은 광장 바닥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박물관에 가거나 다비드 상 원작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다.

이 광장 자체가 살아있는 그림이다.


이제 다시 걸음을 옮겨 아르노 강가로 나가니 베키오 다리가 나온다. 다리 위에 섰을 때 아치형 난간기둥과 그 아래로 흐르는 강 그리고 파스텔 톤의 마을이 하나가 된다. 다리를 건너서 걷다 보면 알 수 없는 동네가 나오고 잠시 길을 잃었나 하는 순간 다시 대로와 만난다.

이 다리를 오가다 보니 도시는 하나로 연결되어 통하는 갤러리 같다.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도시의 일상의 모습이 전시장에 진열된 그림들처럼 다채롭다.


어느새 산타크로체 광장에 서면 단테 알리기에리의 동상이 보인다. 분주한 관광객들과 이들을 겨냥한 이탈리아 가죽제품 상점들은,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단테의 표정을 무심하게 지나쳐버린다. 그러나 이 도시는 그를 기억하며 기념하고 있다.


피렌체는 이 도시가 품은 예술적 가치를 과시하지 않는다. 그냥 예술은 도시 안에 스며들어 삶이 된 일상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기품이 흐르고 자부심이 높다.

사람들의 걸음 속도를 늦추고 멈추게 하는 매력은 전시된 조각이 아니라 생활 속에 빛나는 이 도시의 고고한 자태이다.


베키오 다리
잠볼로냐의 사비나 여인의 강탈(좌), 안드레아 로기의 평화의 나무(우)


빛과 색의 근원을 찾아가는 기쁨


고고한 피렌체와는 달리 아를은 소박하고 예술에 무심한 듯 보인다.

그러나 유적지를 다니다 보면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그림들이 곳곳에 놓여있다.

그가 그린 아를의 원형경기장은 실제 원형경기장 입구에 배치되어 있고 맞은편으로 고흐가 살았던 노란 집이 있는 골목이 보인다.

폐쇄된 미술관의 공간이 아닌 도시의 흩어져있는 길 위로 고흐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재미를 준다. 일정한 루트도 없고 규칙도 없다. 오히려 색의 통일성을 통해서 도시의 감각을 드러낸다.


고흐가 머문 요양원은 현재 관광지로 남아있는데, 예전 이름이 Hotel-Dieu (하나님의 집)이다.

난 이 이름이 흥미롭다. 교회나 성당이 아니라 병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비로 돌보는 시설이란 이중적 의미를 연상할 수 있다. 기적을 약속하지는 않는다. 인생이 정리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머물 곳을 마련해 주고, 돌보아주며, 그림활동을 지속할 힘을 준다.


아를은 예술의 유산이 빛나는 곳이 아니라 기록의 장소에 가깝다. 도시의 빛과 예술의 색은 삶을 구해주지도 않고, 희열을 선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삶에 머물게 하며 지속하게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원형경기장'(좌)과 '밤의 카페테라스'의 실제 카페 (우)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병원정원'

예술은 오랜 헌신으로 이루며, 평안을 주고, 생활이 되고, 생명을 지속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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