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과 유산

믿음을 지키는 자리

by 흑진주

종교과 문명의 경계선


1992년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너무 오래 전이고 SNS가 없던 때라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빛바랜 사진을 꺼내보았다.

사진 속 나는 역사적인 문화유산과 그림이 가득한 도시들 보는 것이 그저 신이 났었다.

성당을 볼 때도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는 재미와 성경의 인물이 조각된 정교함에 감탄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럽이 성당은 화려하지만 정작 내재된 종교의 본질은 죽어버린 공동체 같은 인상이 짙었다.


어느 날,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을 보러 갔다. 고전문학에 항상 등장하는 장소를 볼 수 있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소설에 묘사되었던 '거리의 화가'들이 실제로 언덕길을 따라 자리잡고 관광객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던 시절이어서 더 그랬다.


몽마르뜨 언덕 꼭대기에는 독특한 양식의 하얀 사크레쾨르 대성당(Basilica of Sacre-Coeur de Montmartre)이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예배당에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한 여자가 드러누워 일그러진 표정으로 절규하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가 위로 말려올라가 흰자위만 번득거렸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성경에서 나오는 '귀신들린 자'같은 형상이었다.

그 당시 나는 영적 세계에 관심 갖고 싶지 않았고, 겁도 많았던 터라 순간 온 몸이 경직되는 느낌이었다. 관광이고 뭐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 때 처음으로 타지인이 보는 낭만적인 도시가 아니라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절박함과 고통에 신음하는 삶의 단면을 보았다. 파리도 사진 속에 존재하는 풍경이기 전에 인간이 사는 곳이라는 자각과 함께.


그 여자는 사크레쾨르 성당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치유의 기적을 바라며 찾아왔던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그녀를 데려다 놓았을까?

그렇게 사크레 퀘르 성당은 내 머리 속에 그 여자와 함께 각인되었다.


그 이후부터 성당에 들어가면 '이 곳은 진정한 영성이 살아있는 곳일까' 하는 질문하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도 유럽이 종교의 본질이 훼손되고 문화만 남은 딜레마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종교와 문명의 경계선 사이에서 성스럽고 거룩하게 그 신앙의 본질을 이어가는 곳들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절벽 위의 신비로운 성지


크루즈가 바르셀로나 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달리면 고산지대 절벽산 위에 몬세라트(Monserrat) 수도원이 나온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톱니바퀴 모양의 바위산에 둘러싸여있다. 산을 감싸고 있는 비탈길을 따라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바위산 봉우리들이 창 밖에서 시시각각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절경이 장관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바위산 봉우리만 6만 여 개라고 한다.


세계 4대 성지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몬세라트 수도원 외곽과 돌들은 붉은 기운이 감도는 신비로운 색을 띄고 있는데 이는 오랜 세월에 걸려 지질학적인 변화를 거쳐 자연 생성된 것이라고 한다.

실제 수도사들이 생활하고 있으며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역사적으로는 스페인 정부의 독재 정권이 카탈루냐 문화를 탄압하던 시기에 카탈루냐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을 보호하고 '검은 성모'를 중심으로 카탈루냐 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켜낸 상징적인 장소이다.


몬세라트 에스꼴라니아 소년합창단의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합창이 울려퍼지는 수도원을 상상해본다. 그 노랫소리와 함께 예배당 외곽을 걷다보면 순례자들이 켜놓은 촛불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순례자들이 자신의 고통과 소원을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며 기도하는 간절한 몸짓과 경외심 가득한 표정이 촛불마다 새겨져있는 것 같다.


몬세라트 수도원이 품고 있는 거룩함은

하나님이 빚으신 이 바위산의 장엄함과 붉은 벽돌의 신비로움 위에,

현실의 박해 속에서도 기도하며 희망을 잃지 않고 굳건히 지켜낸 공동체의 믿음과

순례자의 간절한 소망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그 경이로움에 발길을 멈추게 된다.

몬세라트 수도원 전경



순교의 피와 고대로마의 영광


처음 로마를 방문했을 때 콜로세움을 봤지만 30 여 년 전이라 기억이 희미했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천정화 '천지창조'에 완전히 압도되어 있었던 기억, 영화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햅번 따라하기 미션이라도 하듯 스페인 계단에서 아이스크림 먹고 진실의 입에 손 넣었던 기억은 있다.


이번 로마여행에서는 콜로세움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로마제국 권력의 상징으로서의 콜로세움이 아니라 그 곳에 있는 십자가 때문이었다.


"여기 십자가가 있었나?"

"로마시대에 기독교인들이 순교한 곳이잖아"


콜로세움 하면 영화 '글레디에이터'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에,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하던 시기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맹수에게 던져지고 잔인하게 처형당하는 끔찍한 구경거리가 된 순교의 장소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로마제국의 영광 뒤에 가려진 기독교의 비극적인 역사와 순교의 피로 물든 이 자리에 서 있는 십자가 앞에서 겸허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콜로세움을 영화의 배경 쯤으로 여기고 구경하고 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사크레쾨르 대성당 앞에서 당황한 채 서 있던 젊은 시절의 나처럼.

죽음 앞에서 신앙을 지키며 숭고한 희생을 택함으로 고대로마제국에 파장을 일으켰던 이들의 믿음을 생각하면서 콜로세움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보았다. 진정한 믿음은 고난 때 드러나는 법이라는 울림과 함께.

콜로세움 십자가의 길


복음이 울린 철학의 언덕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과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둘러보고 아레오파고스 언덕에 올랐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은 울퉁불퉁하고 대리석 돌처럼 미끌미끌해서 서 있기도 쉽지 않았다.

어떻게 여기에 앉아서 중대한 사건을 재판하고 철학을 논하며 복음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고대 그리스 시대나 사도바울이 선교하던 시대는 형태가 좀 달랐다가 세월이 흘러 마모가 되면서 형태도 변하고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해도 환경 자체가 대규모 군중들이 집회하기에 적합하지는 않아보였다.

그러니 복음을 듣겠다고 오는 사람들도 열정이 대단했던 것 같다. 복음에 대한 관심이라기 보다는 당시 그리스인들이 새로운 철학과 사상을 듣는 것을 즐겼기 때문이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바울은 그들의 이성과 철학과 사유를 존중하며 진리를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 태도로 설득과 대화로 다가갔다.

콜로세움이 죽음과의 충돌로 신앙을 드러냈다면 아레오파고스에서는 지성의 대화로 신앙을 드러냈다.

언덕에서 아테네를 바라보니 성지순례 온 기분이 들었다.


처음 아테네 공항에 내려서 시내로 향하는 길은 기대와 달랐다. 도시는 낡고 허름했으며 거리는 쓸쓸했고 사람들은 생기가 없어보였다. 서양문명의 원천이 된 과거의 영광이 사라진 도시 같았다.

그런데 아크로폴리스를 돌아보고 나서야 전세계인을 끌어들이는 위력을 알 수 있었다.

반복되는 약탈과 붕괴 속에서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는 세계문화유산1호의 자태. 그것은 수 천 년간 겹겹이 쌓아올린 경륜과 내공을 자랑하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고고함에 가까왔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바라본 아크로폴리스 전경은 그 자체가 아테네였다.




믿음은 흔들리지않는 내면의 견고한 기둥이며 역경을 버틸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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