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도시, 그리고 오늘

불변의 가치 vs 변화의 필연성

by 흑진주

기억의 착각과 깨달음


파리(Paris)내가 해외에 나가서 처음 살아본 도시였다.


1992년은 해외여행자율화가 된지 얼마 안되었던 때라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어디 붙어있는 나라인지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Made in KOREA 라고 하면 '아 꼬레아(Corea)!'이렇게 반응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너 어느나라에서 왔니?'하고 물으면

'삼성전자가 우리나라거야'라고 말했었다.


매일 아침 갓구운 바게트를 사러 동네의 블랑제리에 들렀다. 블랑제리는 정확하게 오전 6시에 바게트를 내놓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춰 일어나는 시계 역할도 했고 오가며 매일 보는 이웃들과 인사를 하는 가교역할도 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말랑한 오리지널 바게트 냄새는 파리의 아침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개선문에서 샹젤리제 거리를 걸어 튈르리 정원 끝까지 가는 동안 10분에 한 번 꼴로 아랍계 사람들이 말을 걸 정도로 아랍권 인구가 많았다.


어디를 가든 맥도널드가 여행객의 이정표이자 만남의 장소였다.


여행안내서적으로 '세계를 가다'가 유일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정확하게 잘 만들어진 여행가이드북이다. 스페인의 그라나다 여행 때 숙박 정보가 적혀있는 주소를 찾아갔는데 숙박업소가 있을 것 같지 않은 부유한 주택가 아파트였다. 초인종을 누르고 물어보니 백발의 할머니 자매가 살고 계셨고, 그 아파트에서 손녀가 쓰던 방을 여행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며 방을 내어주었다.


스페인 세비야에 엑스포 시즌인 줄 모르고 갔다가 도시의 모든 숙박업소 예약이 만료되어, 공항 카페테리아에서 무사히 밤을 샐 수 있었던 시절이다.


프랑스인들에게 일본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일본인을 좋아했다. 반면 나는 불쾌한 인종차별을 경험했었다.


너무 오래 되서 기억의 파편들이 조각조각 떠오르긴하지만 지금과는 다른 예전의 경험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끝없이 할 수 있다. 이미 한 세대가 지났고 그만큼 세상이 변했기 때문이다.


나는 수 백 년, 수 천 년 동안 그대로였던 유럽이 30년 지났다고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언제 가더라도 변함없이 그 곳에 있을 거라는 '불변의 가치'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눈에 보이는 문화유산은 변하지 않을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교육과 문화와 철학과 가치는 계속 변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이 변화의 파장은 내가 알던 도시를 낯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라진 거리의 화가들


2012년에 출장으로 다시 파리에 들렀을 때 그것을 알았다.

파리는 여전히 아름답고 거리와 랜드마크가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런데 낯익은 도시에서 느낀 낯설음이 있었다.


야간에 에펠탑에서 레이저 광선을 쏘아대는 것이 처음에는 그렇게 흉물스러웠다. '첨단기술과 문화유산의 융합'이라는 거창한 제목 아래, 사람들은 현란한 원색의 빛깔이 울려퍼지는 도시의 축제를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난 레이져쇼가 회색빛깔 도시의 에펠탑이 지녀온 본질적인 고요함을 잃은 채 자기과시에 몰입하는 행위로 보였다. 이질감이 느껴졌다.

1992 에펠탑실물인화사진 (좌) vs 2019 베르나르 뷔페 서울 전시- 에펠탑

몽마르뜨 언덕에 거리의 화가는 없어진지 오래이다. 도시재생프로젝트로 지역이 개발되었고 고풍스런 건축물 대신 현대식 주택단지들이 세워졌다. 대신 관광객들을 위해 몽마르뜨 언덕 마을을 순회하는 이동수단이 생겼다. 작은 열차같이 생겼는데 그것을 타고 한바퀴 돌아 언덕을 내려오면 물랑루즈를 중심으로 유흥가들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992년 vs 2012 사크레쾨르 대성당

앞 장에서 소개한 '절규하며 괴로와하던 그 여자'가 있던 사크레쾨르 성당과 자유분방한 쾌락의 중심지 물랑루즈의 거리가 오늘날에 더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면서 공존하고 있고, 밤에는 다니기 꺼려지는 동네가 되었다.


매일 아침 바게뜨를 사러 다니던 동네의 훈훈한 블랑제리는 대규모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가게로 변했다.


센느강의 변화된 진풍경 중 하나는 전세계 연인들이 걸어놓고 간 사랑의 열쇠 다리였다. 당시 다리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마 철거되었을 것이다.


센느강가는 파리 시의 정책에 따라 시민들의 여가공간으로 변했고 인공 놀이터, 카페와 바가 들어섰다.

기억 속의 고전적인 멜랑꼴리는 다채로운 현대식 시설물로 대체되었다.


지금도 그 도시는 정부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과 긴장이 고조되고, 이민자 사회의 갈등으로 경직되었으며, 여기저기 곪아있는 사회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프랑스적 가치인 똘레랑스(Tolerance, 관용)의 가치와 부딪히면서 계속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함에도 오늘 파리를 걷는 여행자는 현재를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추억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애틋해하는 파리의 과거를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당연한 일이다.

시간의 무심함이란 이토록 비정하게도 과거를 지워버리고 기억을 해체한다.

파리의 센느강 - 연인들의 사랑의 열쇠다리 2012

잃어버린 웃음과 금지된 여유


다시 지중해 종착지인 로마(Rome).

'영성과 유산'편에서 언급했었는데 다시 와보기 전까지 로마에 대해 기억에 남아있는 건 몇 개 없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장조'를 본 경이로움이 선명하게 새겨졌고, 스페인계단에서 아이스크림 먹고, 진실의 입에 손 넣어보고, 트레비분수에서 동전 던졌던 기억 정도다.


그런데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었다.

운전할 때도 노래를 흥얼거리던 버스기사 아저씨.

지나갈 때마다 밝게 인사하며 내가 듣거나 말거나 이탈리아어로 계속 수다떨던 웃음 가득하던 사람들.

물론 집시들이나 아시안 여자들한테 찝적거리는 남자들을 조심해야 했지만,

대부분은 유쾌하고 흥이 많고 이탈리아에 대한 자부심도 가득했고 관광객들 대하는데 여유가 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 로마사람들에게선 그 웃음과 노래가 사라졌다. 콧노래 부르며 손님들에게 이탈리아어로 반갑게 맞아주는 레스토랑 주인조차 만나기가 어려웠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는데 내 기억이 왜곡된 것이었을까?

관광객의 시선이 아니라 주민으로 살아보면 또 다를까?

그들은 사실 로마인이 아니라 타국에서 온 이민자들이어서 그런가?

세계 경제가 심각해서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워져서 그런가?


여행에서 돌아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친구에게 말했다.

"예전엔 아시안 보면 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그렇게 말걸려고 하더니 이제는 소 닭보듯 하더라. 하긴 해마다 도시가 관광객들 때문에 몸살을 앓는데다 코로나도 그렇게 겼었으니 이젠 싫기도 하겠지"

"그게 아니라 그때는 우리가 젊었었고 지금은 늙은거지"하고 돌직구 날린다.

"그런거야?" 깔깔대며 웃었다.

그럼 다행이지만, 내가 받은 인상은 삶에 무료하고 지쳐버린 사람들 같았다. 내가 경험했던 이탈리아 특유의 생기가 사라졌다.


정말 놀랐던 진풍경이 또 있다.

도시를 삼킬 듯한 인파였다.


콜로세움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광장을 따라 끝없이 줄을 서 있었다.

바티칸시티 입장을 위해 서 있는 줄은 바티칸의 담벼락을 돌아 몇 겹을 둘러서 그 끝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디가나 줄서기다. 무엇을 한번 보려면 한 두시간은 기본으로 서 있어야 한다. 그런 인파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수준이었다. 다행히 사전예약을 해두어서 시간낭비를 피할 수 있었다.

바티칸 시티 입구

다시 찾은 시스티나 성당에 입장을 했을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천지창조가 아니라 성당을 가득 채운 인파와 그들을 줄세우며 통제하고 관리하는 보안직원들이다. 직원들은 매일 반복되는 근무일정에 따라 무표정하게 '이쪽으로 가라 저쪽으로 가라'를 반복한다.

경이로움에 압도되는 게 아니라 인파에 압도되었다.


저 멀리 스페인계단이 보인다. 그런데 계단에 앉아서 책읽는 모습이나 아이스크림 먹는 모습은 볼 수 없다. 가까이 가서 보니 계단에 앉으려고 하면 경찰들이 안전상의 이유로 앉지 못하게 단속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스페인 계단에서 아이스크림 먹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단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라고 한다.

1992 vs 2025 스페인계단

트레비 분수에 가서는 더더욱 놀랐다. 분수 주변으로 빽빽하게 앉아있는 인파를 보고 있으니 난민수용소가 따로 없다. 그 인파를 뚫고 들어가서 인증샷을 찍어도 분수 중앙의 조각상 대신 관광객 얼굴이 절반은 차지한다.

처음엔 당황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오래 여행을 안해서 그렇지, 이미 여행객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그 안에서 나름의 여유와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도대체 트레비분수가 뭐길래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면서도 결국 동전을 던졌다.


유럽도시에 아날로그식 낭만도 여유도 사라져간다는 것은 섭섭했다. 그렇지만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생존을 위한 새로운 방식으로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로마의 경우는 좀 다른게,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 있는 문제가 오버투어리즘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베네치아에 살던 주민들이 떠나고 정부는 앞으로 입국세를 받겠다고 나서는 현상도 이해가 되었고,

바르셀로나에서 시민들이 오버투어리즘 반대 시위를 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이해가 되었다.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교통, 통신, 디지털 등 사회 전반의 모든 인프라가 급속도로 발달한데다 생활방식과 여가문화의 변화 등 가치관 변화도 큰 몫을 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유럽 시민들은 '변하지 않는 유적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 '변해야만 생존하는 현실사회' 사이에서 자의든 타의든 일상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해야 했을 것이다.

그들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닐까.


도시를 둘러싼 현실의 무게가 그 시민들의 삶에 침투하고 있는데, 나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박제된 낭만을 원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돌아본다.

모순적인 사실은 나 자신은 쉼없이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우리나라 전통을 보전한다는 이유로 낙후된 지역에 머무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파리의 허름한 서점만큼은 코로나19 이후의 경제난을 겪더라도 대를 이어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랐다. 내가 10년 후에 다시 그곳을 찾을 때, 그 서점이 마치 시간의 증거처럼 나를 기다려주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기대였다.

내가 기대한 것은 도시의 불변이 아니라, 그 도시에서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과거의 나 자신을 보고 싶은 것이다. 결국 변해야 했던 것은 과거에 갇혀있는 나의 시선이었음을 깨닫는다.


시간을 거슬러 변하지 않는 가치


로마에서 변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보았다.

오래된 담쟁이와 문과 낡은 골목들. 색은 바랬지만 고풍스러운 유럽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음식이 맛있다. 피자와 소고기가 듬뿍 담긴 라자냐도 기름지거나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다.

때가 되면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혼잡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로마시내를 한꺼번에 감싸안는 종소리다.

이탈리아인은 남자나 여자나 다 멋있고 잘 생겼다. 꾸미지 않아도 배어있는 멋이 있다.

거리에 줄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많다. 카페 근처 거리, 광장 계단, 골목 모퉁이에 연기가 배어있다.

트레비 분수에는 동전이 가득 쌓여있다. 기사를 봤는데 트레비분수에서 건지는 동전은 해마다 한화로 20억원이 넘으며 단순히 관광수익이 아닌 자선기금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계단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떨어뜨렸길래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 아이스크림 먹기가 법으로 금지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전을 던졌길래 기부금이 모일 정도가 될까 싶다.

이쯤되면 이것이 영화의 힘인지 로마의 힘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트레비분수 2025

사람들이 유럽을 끊임없이 찾은 이유는 비단 유서깊은 땅에 서 있는 박물관과 그 곳에 몇 백년을 갇혀있는 돌덩이 때문만은 아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오래된 것들이 자신의 무게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목격하며 그 오래됨이 새로운 시대를 품고 생존하고 방식을 본다.

시간을 거슬러 흐르는 가치와 삶을 본다.

수백 년 된 건물에서 식사를 하고,

거대한 갤러리가 된 도시를 걸어다니며 예술을 만난다.

성당의 종소리가 자유에 대한 갈망이 되고

트레비 분수의 동전도 역사로 만들어버리며,

거리의 담배연기를 그림의 소재로 삼고,

굳게 닫힌 문과 낡은 골목에서도 인간 존재의 근원과 자취를 쫓으며

사회적 긴장과 문화적 갈등도 수 천 년 역사가 쌓여서 만들어낸 삶이 되는 그런 정신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의 휴일'이 아직도 살아있다.


그런데 수천년, 수백년간 그 오래됨이 보존된 것은 문화유산 자체의 힘만이 아니라 그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시민들이 의지적으로 선택한 일상의 불편함과 희생 덕분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내가 누린 유럽의 '낭만의 아우라'는 유럽시민들이 보이지 않게 감수한 불편함의 대가임을 알 때 도시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는 '그 관광수익으로 먹고 살면서 당연히 감수해야지' 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도 당연한 건 없다. 선택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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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나 광장 2025(좌) vs 1992(우)

모든 것은 변한다.

변화는 새로운 버팀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변화를 수용하는 것은 더 잘 누리기 위해서다.

과거의 기억을 버리고 변화를 향해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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