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이 보내는 신호
누구에게나 버팀이 흔들리는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퇴직이라는 사회적 단절, 믿었던 관계의 균열, 혹은 낯설게 마주하는 노화의 징후들까지.
문제는 이 시련들이 결코 홀로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적 기반이 흔들릴 때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내면이 무너질 때 가장 가까웠던 관계마저 뒤틀린다.
버팀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지금까지의 방식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유지되던 일상의 리듬이 깨어지고 나를 보호하던 그물망이 풀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묻게 된다.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키워온 버팀의 근육은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는가?, 아니면 나를 소모시키는가?"
통창 너머로 겨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한 피트니스센터.
쇠붙이가 부딪히는 서늘한 소리와 거친 숨소리 사이로 세 여자가 서 있다.
한 공간 안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지만, 그녀들의 시선은 각자의 생을 거세게 흔들었던 ‘그날’의 기억을 향해 있다.
가장 구석에서 묵직한 덤벨을 들어 올리는 도연(51세).
그녀가 견디는 것은 덤벨의 무게가 아니라, 자신의 성벽이 무너지던 순간의 수치심이다. 늦게 시작한 사회생활이었기에 남들보다 배로 치열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지위와 일은 자신을 보호하는 견고한 성벽이었다. 그러나 임원 승진을 목전에 둔 어느 날,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조직 개편이라는 명목 아래 성벽에 균열이 갔다.
“부장님, 새로 오시는 상무님께 프로젝트 인수인계 부탁드립니다”
외부에서 영입된 젊은 상사의 출현으로 도연은 자신이 쌓아온 성벽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감각을 느꼈다. 50대에 직업을 잃는 것보다 직장이라는 울타리 내에 머무는 것이 낫다고 여겨 버텼으나, 견디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면은 소진되었고 결국 그녀는 퇴사를 선택했다.
트레드밀 위를 위태롭게 달리는 하진(47세).
하진에게 성벽은 오직 자신의 능력과 대체 불가능한 감각뿐이었다.
업계에서 민첩하고 창의적이라는 평판을 받았고 프리랜서 선언 후에도 찾는 클라이언트들이 많던 그녀였다.
“이사님, 기획은 탄탄한데, 감각은 조금 ‘올드’하네요. 저희는 좀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거든요.”
세 번째 비딩 탈락 통보가 날아왔다.
급변하는 시대에는 더 이상 베테랑의 노련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하진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불안함을 숨기기 위해 예전처럼 자신을 증명하려 애썼지만, 일거리는 점차 뜸해졌다. 자신을 지켜주던 능력과 자존심에 균열이 가던 순간, 그녀는 버팀의 근육이 파열되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매트 위에서 스트레칭 중인 민서(55세).
전직 기자로 활동하다가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며 가정에 모든 정성을 쏟아왔지만, 4년 전 암 진단은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염증이 심해 바로 수술이 어려웠던 상태에서 여러 차례의 방사선과 항암 치료를 견디고서야 마침내 수술을 할 수 있었다. 이제 항암제를 복용하며 관리한 지 3년째. 다시 삶을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정기 검진을 받을 때마다 재발의 두려움이 밀려오며 한때 완벽했던 자신의 세계가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는지 떠올리게 된다.
세 여자는 알고 있다.
지금 쏟아내는 땀은 단순히 몸을 가꾸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각자의 삶이 균열 났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들이 버텨온 시간의 실체를 마주하려는 몸부림이다.
표면적으로 그녀들의 삶은 멈춘 듯 보인다.
지위도, 일터도, 건강했던 일상도 이제는 곁에 없다.
그리고 세상은 속삭인다. 이제 힘을 좀 빼라고.
하지만 삶을 흔들어대는 균열은 버팀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균열 속에서 근육들은 새로운 축으로 버팀의 무게중심을 옮길 준비를 한다.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지금의 균열은, 어쩌면 버팀이 새로운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호를 알아차렸다고 해서 곧장 방향을 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에는 수십 년간 한 방향으로만 달려온 거대한 관성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과 에피소드는 에세이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설정된 보편적 페르소나이며, 특정 인물이나 실제 사건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