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과 누림의 변주

도대체 끝이 어디냐고 묻고 있는 당신에게

by 흑진주

도연은 데드리프트 바에 20kg 플레이트를 양쪽에 끼운다.

예전보다 10kg 더 무겁다. 지면에서 바가 떨어지는 순간 온몸의 근육이 하나로 연결된다.

기어이 열 번을 채운다.


하진은 풀업 바에 매달려 몸을 끌어올린다.

하나, 둘, 셋, 넷. 예전에는 한 개도 못 했던 몸이 이제는 다섯 번의 도약을 해낸다.


민서는 플랭크 자세로 90초를 버틴다.

온몸이 떨린다. "3, 2, 1!" 바닥에 주저앉는 순간, 거친 숨소리와 함께 살아있다는 감각이 선명해진다.


몸은 후들거리고 근육은 쑤시는데 이상하게도 살아있는 느낌은 또렷하다.

사람들은 흔히 일과 삶, 운동과 휴식, 책임과 여가까지 모든 것을 저울질하며 균형을 잡으려 한다.

하지만 그런 균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수평을 이루거나, 정지된 지점을 찾아 안정이 오는 일은 없다.
균형은 움직이며 조율되는 것이다.

식단의 균형도 모든 영양분을 똑같은 비율로 먹는 게 아니라 운동선수는 단백질을, 임산부는 엽산을 더 많이 먹는 식이다.

줄타기 곡예사 역시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매 순간 미세하게 무게중심을 옮기며 조율한다.

균형은 멈춰 있는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조율' 그 자체다.


이 조율의 원리는 우리가 삶을 통과하는 방식인 버팀과 누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버팀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흐르는 시간이며, 누림은 그 시간을 통과하는 나만의 태도다.

이 둘은 교대로 오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난다.

흐르는 시간(버팀) 속에서 우리의 태도(누림)는 끊임없이 조율된다.


어떤 순간에는 책임을 더 쥐고, 어떤 순간에는 통제를 내려놓는다. 이 조율이 기계적인 왕복운동이 아니라 살아있는 움직임이 될 때, 우리는 그것을 '리듬'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리듬이 변주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할 때 비로소 변주는 시작된다.

여름

음악에서 비발디의 '사계'가 계절마다 다른 표현 방식을 갖듯, 삶의 리듬도 고정되어있지 않다.

생애주기에서 30대에는 성장을, 50대에는 유지를, 60대 이후에는 수용을 향해 시간이 흘러간다.

삶의 무게중심은 이미 옮겨갔는데 태도가 과거의 리듬에 머물러 있으면, 버팀은 곧 족쇄가 된다.


성장기에 동력이었던 책임감이 수용의 시기에는 그 양이 조율되어야 하듯, 우리를 지탱하는 태도들은 상황에 맞춰 끊임없이 조율되어야 한다. 특정 태도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삶의 하중에 맞춰 누림의 리듬을 바꿔가는 것. 이것이 변주의 본질이다.


물론 이 변주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의식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우선 내 태도가 지금의 무게중심과 맞는지 살피는 '알아차림'이 있어야 하고, 익숙한 리듬에서 힘을 빼는 '이완'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의 나에게 적합한 박자로 '재조율'할 수 있다.

이 과정은 끝없이 이어진다.

살아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삶의 무게중심은 계속 이동하기에, 우리는 매일 다시 알아차리고 다시 조율해야 한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싶지만, 역설적으로 이 변주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가장 선명한 증거가 된다. 삶은 거창한 관념이 아니라 매일의 이러한 리듬이 쌓여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불가항력의 시간 속에서 이 태도의 리듬을 조율하는 것은 현재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선택이다.

가을

피트니스 센터를 나서는 길.


도연은 버스 정류장에 선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초조함을 밀어낸다. 예전 같았으면 '나만 멈춰 있다'는 무력감에 쫓겼겠지만 이제는 일하지 않는 공백의 현재를 무가지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남들의 템포에 휘둘리지 않고 조급함을 다스릴 때, 수치심이 사라진 자리에 통찰력이 자리를 잡는다.


하진은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연다.

재현과의 미팅 자료를 정리하다 문득 멈춰 메시지를 보낸다.

"여기까지 정리했어요. 의견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예전처럼 혼자 완결 짓고 통보하는 대신, 중간의 빈틈을 열어 타인의 박자를 초대한다.

섞이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지만, 더 이상 자신의 성벽 뒤로 숨지 않는다.

버팀의 무게중심이 홀로 서기에서 함께 걷기로 옮겨가는 찰나, 그녀는 고립대신 생경한 연대감을 느낀다.


민서는 집에 도착해 식탁 위에 놓인 배달음식 박스와 탄산음료 캔을 본다.

예전 같았으면 몸에 안좋은 것만 먹는다고 잔소리부터 뱉었겠지만, 지금은 아무말 하지 않는다

그리고 거실로 나온 아이들과 시시콜콜한 운동 이야기를 나누며 민서는 웃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번질 때 불안이 머물던 자리에 비로소 여유가 스며든다.


그들이 떠난 피트니스 센터 창밖으로 겨울 바다가 보인다.

파도는 매번 다른 높이와 속도로 밀려왔다 물러간다.

바다는 끊임없이 파도를 만들어내며 살아 움직인다.

우리 삶도 이와 같다.


그 변주는 계속된다.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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