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섬에서 북섬까지 물의 여정
여행을 떠나거나 공원을 산책할 때 나는 자연스럽게 물 곁으로 향한다. 호수, 강, 바다, 계곡 — 물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있고 쉼이 있다.
뉴질랜드는 물의 나라다.
길을 나서면 호수가 나오고, 숲으로 들어가면 강으로 이어진다. 풍경 속에 배경처럼 놓여 있는 물이 아니라 — 이 땅과 함께 살아 움직이는 물이었다. 남섬에서 북섬으로, 호수에서 바다로. 나는 그 물줄기를 따라 흘렀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만난 물은 퀸스타운의 와카티푸 호수였다. 선선한 늦여름의 오후, 산책하는 사람들, 큰 나무 아래 유모차를 끄는 엄마,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는 가족들. 호수는 일상의 고단함을 품어 안듯 찾아오는 이들에게 조용히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그 잔잔함은 밀포드 사운드에도 있었다. 다만 이곳의 잔잔함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연중 대부분 비가 내리는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운이 좋아야만 만날 수 있는 전경이라고 한다. 노르웨이의 피오르드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미지 않은 기품이 있었다. 수직 절벽 사이로 길고 가늘게 떨어지는 폭포들. 그 물보라 끝에서 무지개빛이 반짝였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에 옅은 립스틱으로 생기를 더한 것처럼.
북섬에 오자 물은 그 야성을 드러냈다.
후카폭포의 낙차는 고작 11미터에 불과하지만 물의 속도와 소리는 상상을 뛰어넘었다.¹
나는 폭포다, 하고 선포하는 듯했다.
흰 포말이 마치 말 달리듯 거칠게 흘러내렸다. 마오리족이 이 폭포를 후카, 거품이라고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폭포를 지나 찾아간 타우포 번지점프대 아래에는 비취빛의 맑은 강물이 흘렀다.
바로 뉴질랜드에서 가장 긴 강, 와이카토 강이다.
조금 전 보았던 그 사나운 폭포의 근원이 바로 이 강물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묘한 전율을 주었다. 유유히 흐르던 물이 좁은 협곡을 만나 폭발하고, 다시 달려 태즈먼 해로 나아간다.
이렇게 풍부한 물을 가진 나라답게 뉴질랜드는 수질 관리 기준이 매우 엄격하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수돗물을 그대로 마셔도 안전하다고 한다.²
그런데 나는 결국 마트에서 비싼 생수를 사 마셨다. 수돗물을 그냥 마셔도 된다고 모두가 말했지만, 공항 화장실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을 선뜻 들이켜기란 쉽지 않았다.
신뢰의 문제일지, 문화의 차이일지 모를 묘한 저항감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생수값이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점이다. 물 자체의 값이라기보다 플라스틱 용기를 만들고 운반하는 비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의 나라에서 비싼 생수를 마시다니.
로토루아 호수에서는 블랙스완을 만났다.³ 자꾸 눈이 갔다.
전혀 관계없는 영화 블랙스완이 떠올랐다. 사실 이 평화로운 호수와 광기 어린 예술혼을 다룬 영화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그랬다.
스크린 속 블랙스완이 완벽을 향한 서늘한 집착을 보여주었다면, 내 눈앞의 블랙스완은 지극히 평온하게 유영하고 있었다.
호수 한 편의 이동식 버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풍경 위로 검은 백조 두 마리가 교차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아주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¹ 후카폭포(Huka Falls): 높이 약 11미터. 마오리어 후카(Huka)는 "거품"이라는 뜻. 뉴질랜드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자연 명소 중 하나. (출처: hukafalls.com — https://www.hukafalls.com)
² 뉴질랜드 수돗물 수질: 뉴질랜드는 세계 수돗물 수질 상위 10개국에 속하며, 대부분의 도시에서 수돗물을 안전하게 마실 수 있다. (출처: Water Defense — https://waterdefense.org/water/tap/new-zealand/)
³ 블랙스완(Black Swan, Cygnus atratus): 호주와 뉴질랜드 고유종. 로토루아 호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출처: New Zealand Birds Online — https://www.nzbirds.co.nz)
**연재시리즈에 게재되는 모든 사진은 작가 본인이 직접 촬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