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이 가르쳐주는 것
버스가 달리는 내내 창밖은 소와 양, 염소, 말들의 차지였다.
어디를 봐도 동물이 사람보다 많았다.¹
젖 짜러 무리 지어 가는 소들, 누워 쉬는 소들, 고개 숙이고 풀 뜯어먹느라 미동도 하지 않는 양 떼와 염소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다.
현지가이드가 설명했다.
말은 안전하다고 느낄 때만 눕는 동물인데² 뉴질랜드 말은 누워서 잔다고. 믿거나 말거나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이 들판의 말들이라면.
방목은 자연과 더불어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풀어놓아 기르는 것이다.
그런데 방목은 가두어 기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동물 하나하나를 더 넓은 곳에서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하고,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입국할 때 검역 절차가 유독 엄격했다.³ 흙 묻은 트레킹화 하나까지 신고해야 해서 처음엔 유별나 보였다.
그런데 여행을 하며 깨달았다. 그런 철저한 관리가 모여 이 청정한 땅을 지켜왔다는 것을.
가공되기 전의 세계, 원재료로 가득한 땅.
보이지 않는 수고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로토루아 외곽의 아그로돔(Agrodome)을 찾았다.
농장이라고 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이었다. 그 넓은 땅 안에서 알파카도, 사슴도, 양도 각자의 방식으로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직원들이 동물 하나하나의 특성을 알고 있었다.
알파카는 화가 나면 침을 뱉는다고 한다. 그래서 조심스러웠는데 내가 다가서자 살살 다가와 손에 들린 먹이를 받아먹었다. 부들부들한 털, 크고 순한 눈. 낯선 여행자에게도 아무 경계 없이 다가오는 그 온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는 알파카가 제일 예뻤다.
사슴들도 있었다. 멋진 뿔을 가진 사슴 한 마리가 먹이통 앞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얼굴도 들지 않은 채 계속 먹었고, 다른 사슴이 다가오면 낮게 으르렁거렸다.
방목의 들판에도 질서가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두 가지 실수를 한다.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상대를 통제하거나, 자유를 준다는 이름으로 손을 놓아버리거나. 그 어느 쪽도 결국 상처와 갈등을 남긴다.
방목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
그 존재가 가진 본연의 방식을 인정하는 것.
본연의 모습대로 살 수 있도록 드넓은 들판으로 내보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심하게 보살피는 것.
강요 없이 형성되는 친밀함.
뉴질랜드의 들판이 가르쳐준 것들이다.
¹ 뉴질랜드 양과 소 개체수: 2024년 6월 기준 양 2,360만 마리로 인구 1인당 약 4.5마리. 소는 유제품용 580만 마리, 육우 370만 마리. (출처: Agriland — https://www.agriland.ie/farming-news/new-zealand-ratio-of-sheep-per-person-drops-to-4-51-govt/)
² 말이 누워서 자는 것: 말은 안전하다고 느낄 때만 누워서 잔다. 누워서 잘 때만 완전한 REM 수면이 가능하다. (출처: Scientific American —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horses-stand-up-to-sleep-but-lie-down-perchance-to-dream/)
³ 뉴질랜드 검역: MPI(농림수산부)가 관할. 미신고 시 최소400뉴질랜드 달러 즉각 벌금. (출처: MPI — https://www.mpi.govt.nz/bring-send-to-nz/bringing-and-posting-items-to-nz/how-to-declare-items-when-arriving-in-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