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 그 괴로움에 대하여

by 검은토끼

2014년 나는 종합 주방 생활용품기업의 아이템을 미국·유럽·일본 등지로 수출하는 D라는 회사의 무역팀에서 근무했었는데, '무역팀에서 일하는데 해외 전시회는 한번 다녀와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사장님의 너그러운 챙김으로 프랑크푸르트 소비재박람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직장생활 5년 만에 처음 가 본 해외 출장지였다.



서울 사무실에서는 사장님과 이사님 그리고 나, 미국 사무실에서는 부장님과 직원. 이렇게 다섯 명이 참석하였는데, 어떤 사정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시장님, 이사님과는 다른 비행 편으로 떨어져 홀로 출국하게 되었던 나는 덕분에 여행 가는 기분으로 독일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도착 다음 날은 전시회 부스 세팅 마지막 날이었는데, 사장님의 계속되는 챙김으로 나는 마무리를 돕는 대신 하루 종일 프랑크푸르트 시내 관광을 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정확히 몰랐었다. 해외 출장이라는 게 어떤 것이었는지를.


다음날 정장 치마와 스타킹, 구두의 완벽한 쓰리피스 직장인 착장으로 도착한 전시회장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넓었고, 전시회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각자의 역할로 아주 바빴지만 그 속에서 나는 아주 한가하였다.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부스를 찾아온 기존 혹은 잠재적 바이어를 밀착 담당하는 건 아이템 생산 업체의 마케팅팀과 우리 회사 미국 사무실의 부장님이 함께했고, 나는 꽤 오랜 시간을 어색하게 부스 앞, 옆 또는 근처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게 민망해질 때쯤이면 "Have you heard about XX? "라고 외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어색하게 부스 안쪽으로 안내하며 이사님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그다음 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는 나를 불쌍히 여기셨던 사장님은 미국 사무실에서 온 직원과 함께 전시회장을 돌아다니며 한국으로 수입할 만한 제품이 있는지 찾아보라는 지령을 내리셨다. 해외 출장이 처음이었던 내가 챙겨 온 신발은 3cm와 1cm 굽의 구두와 슬리퍼뿐이라 어쩔 수 없이 구두를 신고 넓디넓은 전시회장을 활보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의 나라면 운동화를 사서 바로 갈아신었을 텐데 그땐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무지렁이였으며) 호텔 방에 도착하자마자 피가 엉긴 스타킹을 발가락에서 조심스레 떼어내며 출장 마지막 날만 손꼽아 기다렸고, 한국에 돌아와서 출장 정산을 마친 이후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뭐 이만한 일로 회사를 그만두나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전시회장 현장에서 느꼈던 이런저런 자격지심을 이기지 못했고, 이런저런 능력치를 더 갈고 닦아 다음에 들어갈 회사에서 혹여나 가게 될지도 모르는 해외 전시회장에서는 보릿자루가 아닌 바이어 밀착마크맨이 되리라 마음을 크게 먹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회사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인가를 배우려면 회사원이 아닌 백수가 훨씬 편했기에-


하지만 어디 사람이 쉽게 변할 수 있으랴? 그저 그런 상태 그대로 다음 회사로 들어가게 되었고, 예상치 못하게 직업을 바꾸게 되면서 해외 출장이라는 건 완전히 나와 상관없는 일일 줄 알았다. 하지만 팔자에 역마살이 있는지 두 번째, 세 번째 출장을 다녀왔으며, 이제 네 번째 출장을 준비 중이다.



두 번째 출장지에서는 같은 방을 쓰던, 피곤함에 취해 반수면상태이던 팀장님을 붙잡고 대성통곡을 하였고, 세 번째 출장에서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혼자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네 번째 출장을 준비하는 지금 마음이 아주 착잡하다. 사막의 모래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싶었던 두 번째 출장의 상처가 아직도 선명한데 지금의 나는 네 번째 출장의 방문지를 추리며 동선을 짜고 있다.



이번에도 눈물 바람일까? 몇 번의 출장이 지나야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이번엔 제발 괴롭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