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의 확장을 욕심냈었던 적이 있다. 구조조정으로 분위기가 흉흉했던 나의 세 번째 회사. 같은 팀에서 일하던 나보다 선배이던 S는 '이럴 때를 대비해서 확고한 업무 바운더리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바깥으로 조금씩 업무의 확장을 진행하여 항상 1.5인분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상사에게 심어주어야 한다'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곤 했다.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싶었던 내 귀에 그 말은 정답인 것처럼 들렸었다. S의 업무가 결국 내게 넘어오며 S가 퇴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연봉제에서 호봉제로 나의 임금 체계가 변경된 이후, 업무의 확장이라는 건 차마 입에 올려서는, 머리로 상상해서도 안 되는 금기어가 되어버렸다. 애매하게 정리된 업무분장을 방패 삼아 시도 때도 없이 생겨나는 새로운 업무를 힘겹게 막아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잇장 같은 업무분장의 얇은 틈 사이로, 차마 업무분장표에 기재하기도 애매하며 얄궂고 치사한 업무들이 결국은 내 업무가 되어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팀원들과 업무가 확연히 다른 경우라면 그나마 좀 덜하다. 그러나 동일한 업무를 지역에 따라 나누어 처리하는 경우,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그 어느 것에 속하는 업무가 꽤 심심치 않게 생기기 마련이며, 그런 업무가 생길 경우 어차피 일은 팀원 중 아무나 하면 되기 때문에, 업무 바운더리 최전선에서 원하지 않는 영토 확장에 성공한 누군가에게(부려먹기 쉬운 누군가, 팀 짬밥이 덜 찬 누군가) 그 업무가 슬그머니 넘어가게 된다.
물론 업무 비수기의 경우 그나마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9 to 6라는 긴 업무 시간 동안 별 다른 일 없이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괴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짜치게 넘어오는 업무들은 분노가 되어 깡탄산과 함께 분노의 타자를 치게 만든다.
절기상 입춘, 겨울 기운이 물러가고 따뜻한 봄이 오는 날 아침부터 애매한 업무가 봄처럼 내게 다가왔다. 내 지역은 아니지만 너무 허접하기에 그에게 시키기엔 민망한 일.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당장 처리할 필요는 없는 일이기에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봄이 오는 날 이니까. 하지만 퇴근 전, 아무도 관심 없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며 품은 많이 들지만 생산성이 낮고 헛수고 같으며 삽질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업무가 또 내게 다가왔다.
현침살이 돋아나려는 순간 가까스로, 정말 가까스로 참았다. 목젖을 치고 나오려는 한 마디. 꾹 참고 지하 매점으로 내려가 콜라 한 병을 사들고 나서야 조용히 읊조렸다. '근데 그걸 왜 저한테 말씀하시는 거예요?'
자리에 돌아오니 더 센 분노가 들이친다. 왜 내가 해야 하는지 납득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대놓고 따질 깜냥도 안된다. 그럴 용기가 없으니 수긍하는 것 조차 고역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분노 가득한 순간이야말로 업무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한다. 입안 가득 터지는 탄산 속도에 맞춰 시작한 분노의 타자질은 신들린 듯한 속도로 파일 3개를 토해내며 예상에도 없던 야근으로 마무리되었다.
계획서가 만들어 낼 삽질이 나를 기다린다. 출근하기 싫어 잠도 자기 싫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