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모래 먼지

나의 지옥 여행기

by 검은토끼

사막의 모래 먼지가 되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은 날들이 있었다. 4박 5일 일정 내내 눈치를 보고 나를 향한 미심쩍은 시선과 말투에 상처받고 내 지난 언행을 반추하며 반성하고 의심하고 후회하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확인과 의심과 재촉에 이 자리에서 지금 당장 사라져 없어진다 해도 하나도 슬프지 않을 날들이 있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진단을 위한 마지막 관문을 앞에 두고 괜한 두려움이 몰려온다. 멀리까지 왔으니 당연히 검사해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과, 이왕 멀리까지 왔으니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시간 맞춰 사무실로 복귀하면 조금 나아지지 않겠냐는 마음이 끊임없이 다툰다.



11시부터 시작된 심리검사는 12시 반이 넘어서야 끝났다.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사무실로 복귀하는데 핸드폰 상단에 이름이 떴다. 한 시간 이후면 도착하는데 이렇게까지 급하게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망설였지만 결국 검사를 끝마쳤다는 후련함도 잠시, 내가 돌아갈 곳이 바로 지옥이었다는 걸 다시 의식하게 된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자리에 앉아 있기가, 문서를 작성하기가, 문의에 답변하기가,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처음 이런 감정을 느꼈을 때 사라져 버렸다면 지금 다시 똑같은 감정으로 괴롭진 않았을 텐데. 다시 또 상처받고 후회하고 슬퍼한다.



출장이 가까워지면서 짙어지는 불안감을 잠재우기가 어렵다. 시선, 말투, 분위기, 행동 하나하나가 아직도 생생히 나를 따라다닌다. 너무나 생생해서 1년 전 그때의 것이 잊히지 않은 채 나를 따라오고 있는 건지, 곧 내가 받게 될 것이 상상으로 나타나는 건지 모르겠다.



8월 말 초진 가능하다던 집 근처 병원에서 자리가 비었다며 1시간 내 방문 가능 여부를 물어왔다. 급히 외출을 달고 병원으로 가 또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매일 아침 챙겨야 하는 약, 증상이 나타날 때 추가로 복용할 상비약을 들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왔다.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바로 상담받을 수 있는 병원이 가까워졌다는 사실 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약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 이 작은 것이 어떻게 나의 불안과 우울을 잠재우는 것인지. 이렇게 쉽게 가라앉을 수 있었던 거였다면 미련하게 버티지 말 걸.



2박 3일의 출장 일정이 끝났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다행히 일행과 떨어져 혼자 앉아있다. 눈을 감고 3일 내내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놓아본다. 감은 눈 밑으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약으로도 달래 지지 않은 마음이 무거운 추가 되어 착륙을 앞당기고 있다. 나를 짓누르던 족쇄 하나가 사라졌지만 지옥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나는 다시 검고 좁은 방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눈을 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