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사리는 디카를 남기고

나의 좌충우돌 오디션 도전기

by 검은토끼

2009년 시작된 엠넷의 '슈퍼스타K'는 대국민 서바이벌 오디션의 붐을 일으켰다. 슈스케의 성공을 기점으로' K팝스타', '보이스코리아', '쇼미더머니' 등이 잇달아 인기를 얻었고, 이러한 오디션 프로그램은 소재를 바꿔가며 여전히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사실 슈스케 이전, 라디오에도 전설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별밤 뽐내기'.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간판 코너였던 별밤 뽐내기는 당시 가수를 꿈꾸던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도전했었을 코너로, 옥주현, 이수영, 이기찬, SG워너비 김진호, 어반자카파 조현아 등 내로라 하는 가수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학생 때부터 동네 노래방을 누비고 다녔던 나 역시 별밤 뽐내기의 문을 두드렸었다. 같은 반 친구 G와 뽐내기 참가용 듀엣을 급히 결성하고, 엽서를 꾸며 코너 참가 신청을 하고, 라디오 작가와의 전화 예선까지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여고생의 가득한 패기 덕분이었을까? 뽐내기 스튜디오 입성은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졌다.



주장원 도전을 위해 학원을 째고 친구와 함께 라디오 방송국으로 향했다. 방송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듣고 리허설을 진행했다. 한쪽에선 MR이 들리고 한쪽에선 내 목소리가 들리는 헤드폰이 신기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주장원은 따 놓은 당상이라 생각했다. 친구와 나의 화음이 기가 막히게 어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방은 달랐다. 긴장해서였을까, 리허설만큼 실력발휘를 하지 못했고, 화음은 어긋나 버렸으며, 원곡 가수의 색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심사평을 들었다. 결국 주장원은 3인조로 구성되었던 재수생 오빠들에게 넘어갔다.



비록 탈락했지만 본방을 사수해 준 친구들의 열렬한 응원은 큰 위로가 되었다. 아니, 단순한 위로가 아닌 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래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주로 수학시간 수업이 지루해 질 때마다 친구들의 성화에 못이겨 노래를 불렀다. 매번 똑같은 노래를 부를 수 없었던 나는 항상 다른 노래를 불러대며 경쟁자 없는 교실 오디션에 매번 혼자 참가하고 혼자 합격하며 맷집을 키워나갔다.




그 맷집이 빛을 발한 건 대학 시절이었다. 일찍 도착한 강의실에서 엎드려 자다가 가방을 통째로 도둑맞은 날이었다. 그 안에는 무려 300만 화소, 회전렌즈 디카로 유명하던 나의 분신 니콘 쿨픽스가 들어있었다!! 싸이월드 업로드를 위해 불철주야 열심히 그 몫을 다하던 디지털카메라의 흔적을 찾기 위해 나는 울며불며 5호관을 헤맸다. 그때였다. 내 눈에 디카 대신 문과대 노래자랑 대자보가 들어온 것은. 대자보 상품 리스트에는 '1등-디지털카메라'가 떡하니 적혀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이건 잃어버린 디카를 다시 돌려주려는 하늘의 계시가 분명했다.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박정현의 '오랜만에'를 선곡했다. 패기는 넘쳤지만 노래가 너무 높아 삑사리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없는 교실 오디션으로 맷집을 키운 나는 뻔뻔하게 노래를 마무리했고,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에 확신했다. '디카는 내 것이다!'



마지막 참가자가 거미의 '기억상실'을 들고 나오기 전까지.



전주가 나오자 깊은 탄식이 나왔다.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데 뛰어난 감정표현과 폭발적인 가창력을 필요로 하는 거미 노래라니. 디카는 물건너 갔나 당장 알바를 시작해야 하나 걱정하는데, 경쟁자의 첫 소절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는 정면 승부가 아닌, 인기상을 타깃으로 한 개그 캐릭터 였던 것이다. 결국 나는 새 디카를 손에 쥐고 무대를 내려올 수 있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무대 위 삑사리에 주눅 들어선 안된다는 것을. 뻔뻔하게 밀고 끝까지 가는것이야 말로 무대를 향한 예의이자 실력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