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지친 것 같아

나의 지옥 여행기

by 검은토끼

나 지친 것 같아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것 같아



병원 앞 버스 정류장에 앉아 멜로디를 지운 노래 가사를 나지막이 속삭인다. 이 세상 어딘가에 같은 감정으로 버티다 지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다가도, 금방 또 혼자만의 방에 나를 가둔다. 삶을 살아내는 것이,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을까.

코끝이 시려오며 눈앞이 흐려진다. 황사 섞인 봄바람 때문일까. 마르지 않은 소매 끝으로 다시 한번 닦아낸다.


45분. 정류장 앞 건물 2층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데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35분. 상담하고 돌아가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무엇이 이렇게 급하게 나를 나오게 했는지. 그런데도 왜 들어가지 못하고 앞에서 망설이고만 있는 건지.

15분. 종종걸음으로 복귀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소득 없는 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간다.



자리에 돌아와 모니터를 응시한다. 새로 온 쪽지가 모니터 오른쪽 아래 노랗게 떠오름과 동시에 눈물이 다시 또 터져 나온다. 티 나지 않게 화장실로 걸음을 옮겨 마저 운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른다. 눈 밑에 있는 점은 눈물점이라며 빼야 한다고 말하던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없애버린지도 몇 년이 지났는데 왜 이렇게 자꾸 눈물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옛날 노래 가사처럼 심장이 고장 난 걸까? 뭐가 그렇게 슬픈 걸까? 이젠 정말 털어놓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괜찮아지겠지 미뤄왔지만 더 이상 도망갈 데가 없다.



집 근처 병원에 초진 예약을 문의했다. 8월 말이라고 했다. 잘못 알아들은 건가 싶어서 다시 한번 물어봤지만, 지금으로부터 넉 달 뒤, 8월 말이라고 했다. 세상에.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니. 가까이에 나와 같은 마음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이 된다면 이기적인 것일까?



달력을 네 장 넘겨 동그라미를 친다. 빨리 가서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가도, 진단을 받아버릴까 봐 겁이 난다.

읽지 않은 쪽지가 아직도 깜빡인다. 다시 또 눈물이 차오른다. 8월 말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