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속 약봉지

나의 지옥 여행기

by 검은토끼

가방 속 대충 구겨 넣은 약봉지를 꺼낸다. 이 작은 것이 어떻게 나의 우울을 잠재운다는 건지. 혀끝에서 쓴맛이 느껴진다. 약이 쓴 건지 내 삶이 쓴 건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 삶이 쉬워질 줄 알았다. 유연한 생각과 노련한 행동이 나이테처럼 쌓여, 내 어디가 베이더라도 괜찮을 줄 알았다. 언제였는지도 모르겠는, 종이에 베인 손가락의 상처가 금방 아물 듯, 모르는 사이 흔적 없이 사라질 상처라고 치부했다.



다음 생은 없기를, 모래사막 먼지처럼 흔적 없이 왔다가 사라질 수 있기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디제이의 목소리가 낯설다.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던 적이, 시선에 눈 맞추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아득하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고립이 두렵다.



마음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불안한 마음을 애써 뒤로 하고 차창 밖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고정해 보지만, 다시 또 불안에 사로잡힌다.



바람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싶은 마음과, 미련과 후회로 가득한 한숨에 가려진 해묵은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아직도 이겨내지 못하고,



자꾸만 제자리로.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카프카의 새장처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내 불안의



파편들



하염없이 바라보던 차창에 뿌연 김이 차오른다. 언제쯤이면 이 모든 것에 무뎌질 수 있을까. 무기력한 한숨이, 무력한 마음이 좁고 짙은 나이테가 되어 나를 가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