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옥 여행기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삶의 마지막 음식으로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이처럼 단숨에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머릿속에 수만 가지 음식이 떠다닌다. 한 입 머금으면 귀 밑에서부터 찌릿함이 올라오는, 신김치를 넣고 푹 끓인 김치찌개? 한 입 베어 물면 튀김옷의 바삭함과 그 뜨거움에 입천장이 다 델 것 같은 양념치킨? 지금 눈앞에 차려진 것도 아니고 그냥 상상만으로도 입맛이 도는 건 그나마 덜 우울하다는 걸까?
익숙지 않은 동네의 낯선 병원에서 이름이 불려지길 기다리며 '내 인생 마지막 음식'이라는 주제로 이상형 월드컵을 치른 지 한 시간 십오 분이 지나가고 있다. 8월 말까지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어서 다른 시에서 일하는 옛 직장 동료에게 추천받은 병원이다. 이 병원을 내게 추천해 준 그녀의 현 직장 동료는 8개월 전 우울증 진단을 받고 병가휴직 중이라고 했다. 휴직. 이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40대 미혼인 나는 내 몸이, 내 마음이 아프지 않고서야 닿을 수 없는 이상향.
"저희 병원은 예약을 받진 않아요. 평일 방문이 힘드시다면, 토요일에 오셔서 접수 먼저 해 주세요. 접수 순서대로 진료 가능합니다. 그런데 저희 병원 내원 환자가 많아서요. 일찍 오셔야 할 거예요. 근로자의 날은 휴진입니다."
사실 휴직을 바라고 이 병원을 찾은 건 아니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가능한 먼 곳에 있는 병원에 다니고 싶었다. 병원에서 아는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어떡하나 하는 배부른 걱정이 나를 버스로, 지하철로 한 시간 사십 분이나 걸려 와야 하는 이곳으로 이끌었다.
"이쪽으로 오셔서 질문지 작성 후에 원장님 진료 보실 예정이에요. 작성 후 잠시 대기하시면 바로 진료 보실 수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떠올리며 고민했던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어두운 사람이 되어 우울의 깊이를, 불안의 정도를 수치화한다.
'병원 근처 재래시장 초입에 있는 생칼국수 가게가 유명한 맛집이라고 했었나?'
내 속을 들여다보려고 하는데 자꾸만 다른 생각이 든다. 내가 체크하는 답변에 따라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 복용해야 하는 환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인 것 같다.
뭘 이렇게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건지.
'해물칼국수를 먹을까 닭 한 마리 칼국수를 먹을까, 뭐가 맛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뒤로하고 모든 질문에 체크를 끝낸 질문지를 제출했다.
이제야 비로소 병원에 온 게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불안과 우울의 나이테가 나를 가두고 있는 게 맞을까? 아니면 별거 아닌데 그냥 평소보다 조금 더 예민해진 것뿐일까? 과연 나는 어떤 이야기를 털어놓고,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