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폰을 빼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 전원버튼을 누르고 비밀번호를 두 번 입력한다. 어제와 같은 바탕화면을 지나 시스템에 로그인한 후 사내 메신저와 외부 메신저 접속으로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메신저 개인그룹에 온라인으로 표시된 사람들을 빠르게 한번 훑어본 후 일어나 텀블러에 뜨거운 물을 반쯤 채워 다시 자리에 앉는다.
첫 회사에서는 업무용 메신저로 MSN과 네이트온 두 가지를 사용했었다. 거래처 직원과 대화할 땐 MSN, 사내 직원과 대화할 땐 네이트온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사용했었고, 두 번째 회사부터는 카카오톡 피씨버전만 이용했다. 주로 해외 거래처와 커뮤니케이션하는 업무를 맡아왔던 나지만, 아웃룩 메일로 나눈 대화보다 메신저로 나눈 대화가 훨씬 많고 깊고 다채롭고 시끄럽고 도파민으로 가득했다.
상사의 업무지시 메시지에는 그녀 또는 그와의 관계에 따라 '네', '넵', '넹' 등을 돌려가며 대답하고, 사이가 애매한 동료와의 업무 관련 메시지에는 전송 전 맞춤법 검사로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인 척을 하기도 하지만, 내가 보내는 메시지의 반 이상은 사실 'ㅋ'이 차지한다.
지리멸렬한 업무시간을 환기시키는 진정한 웃음으로서의 ㅋ과 이쯤에서 영양가 없는 대화를 끝내고 업무에 집중하자는 마침표로서의 ㅋ, 또한 상황에 따라 그 개수를 추가하여 강조 혹은 공감의 느낌을 전달하는 ㅋ까지. 내게 ㅋ은 100개가 넘는 키보드 자판 중 스페이스바, 엔터키와 함께 손에 꼽을 정도로 자주 사용하는 버튼일 것이다.
예전 회사들은 규모가 크지도 않았고, 메신저로 대화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지 않았을뿐더러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나서 정확히 어떤 메시지들이 오고 갔는지, 육성으로 내뱉는 감탄사가 아닌, 문자료 표현해야 하는 내 감정의 미묘한 뉘앙스를 어떤 식으로 표현했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그때는 사실 잡담이나 험담... 이 아닌 이상 업무 관련된 내용은 대부분 전화로 해결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회사의 특성인지, 아니면 세월이 지나 업무 스타일이 달라진 건지, 아니면 너무도 고요한 사무실의 적막을 내 목소리로 깨고 싶지 않아서인지 업무 관련된 문의도 메신저로 많이 나누는 편이다. 얼굴도 이름도 낯선 동료와 메신저로 대화하다 보면, 역시나 ㅋ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데, 요즘 직장인은 ㅋ 만큼이나 ㅎ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ㅋ이나 ㅎ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냐만, 이상하게 메신저창에서 'ㅎㅎ'를 볼 때면 기분이 좋지는 않다. 평소 ㅋ을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내 언어습관 때문일까? 아니, 사실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메신저 밖의 그 누군가가 나를 얕게 바라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ㅎ이 두 개 중첩된 ㅎㅎ의 모습이, 입술 끝만 억지로 올리고 눈은 웃지 않는 사람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것만 같아서이다. 상대방이 가진 나에 대한 감정을 ㅎ로 가려 웃음으로 무마하지만 사실 그 이면엔 나를 그다지 좋지 않은 대상으로 생각하나 직장이니까, 직장 동료니까 억지로 웃어 주는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오늘 남은 시간 동안 누가 내게 메신저로 말을 걸어온다면, ㅎ이 아닌 ㅋ으로 환하게 웃어줬으면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