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

내일을 향해 달리는 나의,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by 검은토끼

지금의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그것을 얻기까지 어떤 고난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아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가는 것들이 있다. 여성의 참정권도 마찬가지.




1946년 이탈리아의 한 가정집.

병상에 누워있는 시아버지, 폭력을 일삼는 남편, 학교 대신 일터에 나가야 하는 딸 마르첼라와 철부지 아들 둘. 그리고 누구보다 촘촘한 하루를 살아내는 델리아가 있다.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만 생활하는 시아버지를 씻기는 일로 시작되는 델리아의 하루는 가족의 식사 챙기기는 물론이고, 출장 방문 주사 놓기, 고장 난 우산 수리하기, 속옷 수선하기, 이불 세탁과 같은 생계형 알바로 가득 차 있다.


그녀가 누릴 수 있는 작은 일탈(?)이라고는 야채 노점을 운영하는 친구 마리사, 첫사랑 자동차 정비공 니노, 우연히 알게 된 미군 윌리엄과의 짧은 만남들 뿐이다. 그리고 본인과는 다른 삶을 살 딸을 위해 알바로 번 돈을 남편 몰래 모으는 것도.



사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보러 간 영화였다. 생일기념 무료팝콘 쿠폰을 써야 했고, 봉은사에 핀 홍매화를 새로 산 핸드폰 카메라로 담고 싶었고, 오후에는 다른 일정이 있어서 오전에 영화를 봐야만 했고, 이미 왕과 사는 남자는 두 번 봤기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다.

아무런 기대 없이 델리아의 고단한 하루하루를 따라가던 나는, 편지를 받은 이후 조금씩 달라지는 델리아의 모습을 보며 무릎 위에 팝콘을 얹고 앉아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첫사랑과의 동행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딸이 자신과 같은 삶을 반복하지 않도록 과감한 선택을 하고, 딸의 새 웨딩드레스 대신 학꾜(학교가 아니다, '학꾜'다) 등록을 위해 조심스레 모아둔 돈을 내어주는 델리아.

무엇보다 내일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려 나가는 그녀와, 그녀의 소중한 내일이 무산되지 않도록 마침표를 찍게 해 준 딸 마르첼라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그리고 같은 목표을 향해 그녀와 연대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모습 역시 감동으로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불평불만만 늘어놓곤 했다. 일이 많아서, 골치 아픈 일이 생겨서,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을 살며, 변화 없는 내일을 불평했다. 물론 이렇게 버텨낸 삶이 무가치한 것만은 아닐 것이나, 이왕 사는 거 뭐가 됐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일을 향해 살아보고 싶다는 작은 소용돌이가 마음속에 일었다.




그 옛날 수많은 델리아들의 내일을 향한 힘찬 걸음이 모여 당연한 오늘을 만들었듯, 나의 그리고 우리의 오늘 역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달리다 보면 제자리일때도 있고, 혹은 뒤로 밀려날 때도 있겠지만, 나와 우리가 같이 달리다보면 그래도 오늘보단 나은 내일이 있지 않을까?




우선 지금은 퇴근 먼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