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이라는 재료

같은 식탁, 다른 재료

by Roselle

최근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큰 화재가 났다. 구룡마을은 강남구에 남아 있는 판자촌이다. 80년대쯤 도시 개발 과정에서 터전을 잃은 저소득층이 모여 형성된 마을이라고 알려져 있다. 평당 1억이 넘어가는 개포동의 아파트 단지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오래도록 그늘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구룡마을 화재 소식에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강남에 저런 빈민가가 있었어?”라는 놀람, “재개발을 노리고 불법 점거하는 사람들 아니냐”라는 비난.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정으로 거기 남아 있는지는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15년 전 구룡마을을 처음 봤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무판자를 문처럼 세워 둔 집들, 그 앞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하루를 보내던 사람들, 마을 입구에서 쌀과 밀가루를 나눠주던 주민센터 직원들. 내 기억 속에서의 그곳은 동정이나 비난 이전에, 같은 도시 안에 전혀 다른 속도로 흐르는 삶의 자리였다.


강남에서 태어났다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이고 누군가에게는 오해다.

나는 강남구 대치동에서 나고 자랐다. 집안이 부유한 편은 아니었지만, 주소 하나만으로 이미 많은 것이 주어지는 환경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이들의 삶은 은근히 갈라졌다. 명문 사립 유치원이나 영어 유치원을 보냈느냐부터 사교육의 결이 달라진다. 돈이 있어도 운이 없으면 못 간다는 사립 초등학교 경쟁률은 대학 입시만큼이나 치열했고, 중학생들은 특목고나 자사고를 위해 고교 입시를 준비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 앞에 있었던 나의 모교 초등학교에서는, 지금은 당연한 풍경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흔하지 않았던 장면이 매일 펼쳐졌다. 정문에서 후문까지 기사들이 픽업을 위해 차를 줄지어 세워놓는 풍경, 집에 가면 부모님은 안 계시고 입주 가정부와 종일 시간을 보내던 친구들, 초등학생 책가방을 명품으로 쓰던 아이들.

열 살도 안 된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너네 집은 몇 평이야?” “너네 집은 기사는 몇 명 써?”와 같은 대화를 나눴다. 스마트폰은커녕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친구도 거의 없었고, 학교에서 줄을 서서 공중전화를 쓰던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말에는 이미 어른들의 세계가 들어와 있었다. 그 세계는 꽤 일찍부터 서열을 배웠다.


도곡동에서만 학교에 다니다 개포동 고등학교로 가면서, 세상은 조금 넓어졌다. 반경이 넓어진 만큼, 격차는 더 또렷해졌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에서는 늘 학생 조사를 한다. 인적 사항과 함께, 경제 상황을 묻는 서류도 포함된다. 어느 날 조퇴를 하려고 교무실에 갔을 때, 책상 위에 쌓여 있던 ‘교육비 지원 신청서’를 보게 됐다. 저소득층만 받을 수 있는 신청서가, 우리 반 학생 수의 3분의 1에 가까운 분량으로 쌓여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살아온 세계가 얼마나 좁고 편협했는지.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부유한 건 아니다. 내 친구들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 아버지의 외벌이와 어머니의 치맛바람으로 소득 대부분을 교육비로 쓰는 집안이 많았다. 자가가 없는 경우도 많았다. 교육을 위해 이사 와서 전세나 월세로 버티다가, 졸업과 동시에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일도 흔했다. 자신을 위한 노후를 준비하는 대신, 자식에게 투자하는 방식으로 버텨낸 삶들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보인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특권에 가까웠다는 걸. 특별한 교육을 받았던 건 아니다. 문화시설, 교육 정보, 사람들의 기대치, 주변의 말들.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이 이미 하나의 교육이었다. 동시에 너무 일찍 깨우친 것도 있다. 빠른 속도, 높은 기준, 비교에 익숙해지는 일. 그게 과연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지, 아니면 스스로를 계속 부수게 만드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조부모 세대, 먹을 것이 늘 부족했던 전후 세대에 태어나 IMF를 견디며 자식을 키운 부모 세대, 그리고 먹을 것이 있어도 먹지 않는 지금의 우리 세대까지. 놀랍도록 많은 역사와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성장의 속도만큼, 격차도 함께 자랐다. 누군가가 위로 올라갈 때, 누군가는 그 자리를 떠밀리듯 아래로 밀려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더 좋은 교육을 향한 열망이 커질수록, 그 교육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자리는 더 선명해진다. 같은 재능을 가졌어도, 태어난 곳에 따라 재능을 발견할 기회부터가 다르다. 같은 노력을 해도, 그 노력이 닿을 수 있는 높이가 다르다.


비교는 사람을 서열로 만들지만, 이해는 사람을 이야기로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분류하는 데 익숙해졌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연봉이 얼마인지. 그 사람이 어떤 하루를 견디며 여기까지 왔는지는 묻지 않는다. 마치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뛰기라도 한 것처럼, 결과만을 중시한다. 과정은 번거롭고, 결과는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이름 대신 직함으로 불리고, 얼굴 대신 스펙으로 평가된다. 누군가의 인생은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익어왔는데, 우리는 그걸 단 몇 줄의 정보로 삼켜버린다.


삶은 각자 다른 재료로 시작된다. 누군가는 좋은 재료를 먼저 받고, 누군가는 늦게 혹은 부족하게 받는다. 조금은 유리한 재료를 쥐고 시작했다면, 조금 덜 가파른 길에서 출발했다면, 누구에게나 같은 모습으로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그걸 보려 하지 않으면, 우리는 끝내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서로를 평가만 하다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의 삶의 레시피에는 환경도, 운도, 노력도 들어 있다. 나는 특별히 유리한 출발선을 가진 사람도, 눈에 띄는 성취를 이룬 사람도 아니다. 다만, 예전에는 너무도 당연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누군가에겐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을 뿐이다.

내가 얻은 것들에 감사하다. 그리고 그 감사함이 다른 누군가의 출발선을 지워버리는 이유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격차를 무시하지 않는 태도, 결과만으로 사람을 재단하지 않는 시선. 아마 그게, 이 시대에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배려일지도 모른다.


저녁 식탁에 앉아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나는 오늘, 내 삶을 어떻게 차려냈는지. 비교로 간을 맞추지는 않았는지, 누군가의 느린 속도를 게으름으로 오해하지는 않았는지. 내가 받은 것들 위에 안주한 채, 그 바깥을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는지.


삶의 레시피는 남의 레시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각자에게 맞는 온도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재료의 비율로, 자기만의 맛을 찾아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그릇이 넘치지 않게 잘 담아내는 동시에, 타인의 그릇이 비어 있지 않은지 돌아보는 일이다. 그게 이 격차 속에서 끝내 내가 놓치고 싶지 않은 삶의 레시피이다.




뉴욕일보 칼럼니스트 작가 송지

https://m.newyorkilbo.com/4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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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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