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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아야 Mar 11. 2021

엄마에게만 들려주는 비밀이야기

특별한 존재의 특별함

언젠가 딸아이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비밀공간을 발견했다며 자랑을 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뒹굴고, 음식도 나눠먹고 보물도 숨기고 재미있었다고 말해주었다. 나 또한 어린시절 엄마가 모르는 친구들과의 비밀공간이 있었기에 그 마음에 공감이 갔고, 벌써 이리 컸나 기특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어떤 공간인지 궁금해졌다. 잠자리에 누워서 ‘그런데 친구들과의 비밀공간이 어디인지 살짝 힌트만 주면 안될까? 혹시나 우리딸을 놀이터에서 못찾게 되면 엄마가 너무 걱정되서 그러는데.’ 라고 말했더니 아이는 너무나 흔쾌히 엄마에게는 특별히 말해준다고 한다. 친구들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엄마는 자기가 너무 사랑하니까 말해줄수가 있단다. 그 말이 어찌나 감동이던지. 정말 감사했다.

딸아이가 이리저리 애를 써가며 설명을 해주는데 도통 어떤 곳인지 장소를 추측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한번도 안가본 곳이에요.’ 라고 하기에 ‘그럼 나중에 놀이터 나가면 엄마 데려다 줄수 있어?’라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래요. 그럼 엄마랑 직접 가봐요. 엄마니까 특별히 보여주는 거에요.’라고 생색을 냈다. 뭔가 아직은 엄마인 나에게 비밀을 이야기 하는 모습이 순수해 보였고, 특별한 존재가 된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실제로 가본 딸과 친구들의 비밀장소의 비주얼은 심히 충격적이었다. 아.... 이곳에서 눕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고? 오마이갓. 그들만의 아지트는 분리수거 장 옆 경비아저씨가 아파트 단지내 낙엽들을 쓸어 모아놓은 곳이었다. 여기저기 새의 깃털과 배변물이 있었고, 바로 옆에는 큰 쓰레기통들도 보였다. 일단 침착했다. 화를 내버리면 다시는 나에게 비밀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것 같아서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들을 아이에게 전달하려고 애를 썼다.

새의 깃털과 배설물에는 엄청나게 많은 병균들이 득실거리고, 이 낙엽 더미에는 담배꽁초나 그 이상으로 더러운 것들도 섞여 있을 수 있으며 심지어 개똥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런곳에서 놀다보면 병균이 묻어서 옷이 지저분해지고, 이런것들이 우리집으로 함께 들어오면 면역력이 약한 동생이 아플수 있다고 말이다. 과장을 살짝 섞어서 코로나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살짝 당황하며 자신들의 비밀장소에 실망한듯 보였지만 이 사실을 친구에게도 이야기 해야겠다고 말해주었다.

무조건 비밀장소를 없애버리면 반감이 들것 같아서 깨끗한 아지트를 함께 찾아보자고 말하니, 이미 다른 곳이 또 있단다. 그러면서 보여준 곳은 그나마 조금 나아보였다. 생각보다 빨리 수긍해주고, 엄마인 내 말에 공감해준 딸이 너무 고마웠다. 이제 조금 더 크면 아마 내가 모르는 친구들과의 비밀공간들이 많아지겠지. 그때도 엄마니까 특별히 보여줄까? 그저 지금은 ‘비밀’공간을 나에게 꺼리낌없이 소개해주는 아이에게 고마울 뿐이다. 매일 아이를 통해 감사함을 느끼고, 행복을 선물받는다. 참 고맙다.


주어진 모든것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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