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치아야 Mar 11. 2021

너희 곁에 있을 수 있어서

엄마의 미타임은 언제



  이제 첫째도 다시 학교를 가고, 둘째도 어느 정도 어린이집에 적응해서 소중한 나의 시간이 생길 예정이었다. 그동안 아이들 돌보느라 미루어 왔던 나의 일들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고 하루가 기다려졌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갑자기 우리 지역 한 회사에서 대규모 코로나 환자들이 발생했고, 사태가 심각해 이틀동안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한다고 학교에서 연락을 받았다.

  아, 이런. 곧이어 둘째 어린이집에서도, 첫째 학원에서도 줄줄이 휴원통지 문자가 날라왔다. 동생이랑 놀 수 있겠다며 즐거워 하는 첫째와 달리 나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이 오조오만개 인데 또 미루어야 하다니. 짜증이 잔뜩 난 상태에서 애꿎은 남편만 들들 볶았다. 남편이 ‘어쩔수 없지 뭐’라는 속 편한 말로 내 속을 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축 쳐진 기분을 안고 휴대폰을 들어 지역맘카페에 들어가서 나와 같은 동지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이제 겨우 학교를 가기 시작한 아이들의 엄마들은 나와 똑같이 분노하고 있었다. 며칠이나 갔다고,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어른들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냐고. ‘그래,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게 아니구나. 다들 힘들구나.’ 동질감을 느끼니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어서 마음이 조금 가라 앉았다. 그러다 어느 워킹맘이 적은 글이 눈에 띄었다. 당장 맞벌이로 일을 가야 하는데, 학교도 긴급돌봄을 해주지 않는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하다는 글이었다.

  그 순간 워킹맘으로 살았던 나의 예전 모습이 생각났다. 아둥바둥 거리며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고, 혹시라도 아이가 아프면 급히 조퇴를 달고 병원에 다녀와서 아이가 잠들때 못다한 일을 마저 처리하며 치열하게 살았던 그 시절. 감사하게도 주변에 시부모님이 계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연로하신 시어머니께 아픈 아이를 맡길 수는 없어서 최대한 우리힘으로 해보자 다짐하며 남편이랑 육아 동지애를 불태우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 엄마는 아이를 맡길 곳도 없어 보였는데 얼마나 답답할까. 주변에 있다면 내가 아이를 맡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지금 나의 상황이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육아휴직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 이렇게 갑작스러운 일에도 당황하지 않고 아이들 곁에 있어줄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 아이들은 신이 나서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며 둘이서 신나게 놀고 있다. 이런 시기에 투닥거리며 다투었다가 다시 깔깔 거리며 서로 웃고 있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동생을 위한 놀이동산을 만들겠다며 미끄럼틀을 옮기고 텐트로 마무리 한 뒤, 뒤로 누워서 내려오며 자기를 좀 보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는 첫째가 오늘따라 더 사랑스럽다.

  내가 왜 육아휴직을 했는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니 더 이상 이 상황이 짜증나거나 힘들지 않았다. 그래, 내 시간도 소중하지만 아이들과의 시간도 소중하지. 나를 필요로 할때 함께 있어 줄 수 있어서, 언젠가 아이들이 컷을때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이런 기간이 길어져 또 지치고 힘들어 질때면 오늘의 감사함을 떠올리며 힘을 내어 보아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감사일기

#육아에세이

#일상에세이





                     엄마의 마음을 치유하는 감사일기
매거진의 이전글 그럴 수도 있지, 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