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OJ, 나를 만드는 것들 – 4
도시 풍경에서 읽어낸 브랜드들
도시를 걷다 보면, 사람들은 서로의 존재를 애써 모른 척하지만, 사실 수많은 단서들이 동시에 눈에 들어온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가장 먼저 시야를 채우는 것은 손에 쥔 스마트폰이다. 누군가는 최신 아이폰 화면을 스크롤하며 뉴스를 읽고, 또 다른 이는 갤럭시 폴드의 넓은 화면으로 드라마를 본다.
귀에 꽂힌 이어폰만 봐도 풍경은 다채롭다. 큼직한 소니 헤드폰, 하얀색 에어팟, 날렵한 젠하이저 이어버드, 디자인 감각이 돋보이는 B&O 제품, 그리고 나처럼 가끔 ‘낫싱’의 투명한 이어폰을 낀 사람까지. 같은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말 한마디 섞지 않지만, 귀와 손끝에서 드러나는 브랜드가 작은 표식처럼 각자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낸다. 지하철이라는 공간은 결국 수많은 브랜드들이 동시에 전시된 하나의 쇼룸 같다.
평일과 주말, 두 개의 브랜드 풍경
하지만 주말이 되면 풍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운전석에 앉아 도로 위라는 또 다른 세계로 들어선다. 이제는 사람들의 패션 아이템이나 스마트폰 화면이 아닌, 수많은 자동차 브랜드들이 시야를 채운다. 평일에는 ‘사람이 들고 다니는 작은 브랜드’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면, 주말에는 ‘도로 위를 달리는 거대한 브랜드’가 내 시야를 지배한다.
특정 모델을 타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미지를 드러낸다. SUV는 가족적이고 안정적인 느낌을, 스포츠카는 속도와 자유를, 전기차는 환경과 미래 지향적 성향을 말해준다. 운전을 하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브랜드의 또 다른 풍경이 도로 위에서 펼쳐진다. 그래서 주말에 운전하는 순간만큼은 세상이 디지털에서 오프라인으로 전환된 듯한 기분이 든다. 브랜드는 이제 화면 속 아이콘이 아니라, 실제 도로 위를 스쳐 지나가는 실루엣으로 존재한다.
자동차, 숨길 수 없는 브랜드
패션에서는 브랜드를 감추는 선택이 가능하다. 과한 로고 대신 미니멀리즘을 고르거나, 아예 로고 없는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이 미학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동차에서는 이런 전략이 거의 불가능하다.
자동차는 태생적으로 브랜드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다. 차량 앞뒤에 붙은 엠블럼은 물론, 차체의 선과 헤드라이트의 형상까지 모두 브랜드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일부 마니아들이 엠블럼을 떼거나 튜닝으로 브랜드를 지우려 하지만, 이는 예외적인 취향에 가깝다. 대다수의 자동차는 브랜드를 숨기지 않고 달리며, 그 자체로 하나의 존재감을 갖는다. 엠블럼이 선명할수록 차주는 자부심을 느끼고, 모델명이 뚜렷할수록 사회적 신호는 강해진다.
결국 자동차의 브랜드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메시지다. 도시가 수많은 간판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라면, 자동차는 그 사이를 오가며 반복적으로 각인되는 ‘움직이는 간판’이다.
자동차 세그먼트와 마케팅
자동차 산업의 흥미로운 점은 스스로를 ‘세그먼트(Segment)’라는 언어로 구분한다는 것이다. B세그먼트, C세그먼트, D세그먼트처럼 차급을 나누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작은 차를 고른 소비자는 도심 속 기동성과 합리성을 선택한 것이고, 중형차를 고른 소비자는 실용과 균형을 중시한다. 대형차와 SUV를 선택한 사람들은 안정, 여유, 사회적 위상을 함께 산 셈이다. 물론 이 구분은 국가와 산업마다 조금씩 다르다. 유럽식, 일본식, 한국식 분류가 제각각이고, ‘경차’라는 단어조차 각 시장에서 다른 크기를 가리킨다.
세그먼트라는 언어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편의적 구분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과 소비자를 설명하는 데 강력한 틀로 작동한다. 결국 자동차 세그먼트는 마케터가 연령, 소득, 성별로 시장을 나누는 ‘세분화(Segmentation)’와 닮아 있다. 자동차의 크기, 성능, 가격이 사람들의 욕구를 나누고, 그 결과는 다시 도로 위의 브랜드 풍경으로 드러난다.
자동차는 도시의 풍경을 만든다.
자동차를 단순히 이동수단으로만 본다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역할은 끝난다. 하지만 실제로 도로 위에서 자동차는 도시 풍경의 일부가 된다. 자동차는 단순히 움직이는 도구가 아니라, 도시의 미감을 완성하는 장치이자 시각적 리듬을 만드는 요소다.
독일 뮌헨에서 내가 본 풍경이 그렇다. 도심 곳곳에 벤츠 택시가 가득했고, 특정 브랜드가 도시 전체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한국에서 벤츠가 여전히 ‘고급차’라는 상징이라면, 뮌헨에서는 일상의 ‘메르세데스’일 뿐이었다.
이처럼 자동차는 도시를 장식하는 오브제이자, 동시에 사회적 상징이 된다. 브랜드는 광고판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과 시각적 기억 속에 스며들어 도시의 풍경을 만든다.
자동차는 움직이는 브랜드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우리가 매일 스쳐 지나가는 그 차들은 단순한 금속 덩어리에 불과할까? 아니면 도로 위를 달리며 우리의 일상에 메시지를 남기는, 움직이는 브랜드일까?
자동차는 사람을 목적지로 옮기는 기능적 도구를 넘어, 도시의 풍경을 구성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끊임없이 전파하는 살아 있는 미디어다. 패션이 옷장에서 거리로 흘러나와 시선을 사로잡듯, 자동차 역시 차고에서 나와 도로를 달리며 수많은 눈길에 포착된다.
결국 자동차는 ‘이동수단’이라는 정의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로 위의 액세서리이자 도시 풍경의 조각이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움직이는 브랜드다.
그리고 마케터에게 이 장면은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우리가 매일 스쳐 지나가는 그 차들을 단순한 배경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도시 속에 흩뿌려진 거대한 브랜드 메시지로 읽어낼 것인가.
혹은, 그것을 이해하는 순간이야말로 도시를 이해하는 방법이며,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