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이다. 긴장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지만,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1시간 일찍 회사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사무실 앞에 우두커니 서서 직원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나의 첫 입사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흐른 세월을 의식해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 것에 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그 시절의 첫 회사 생활을 떠올리면 그리움, 아쉬움, 후회, 설렘, 열정, 기쁨과 같은 서로 온도가 다른 차갑고 뜨거운 감정들이 마음속에 소용돌이친다.
첫 회사만 거의 5년 정도 다녔으니, 사회초년생으로 입사해서 퇴사할 때까지 수많은 일들을 겪었다. 순간순간마다 느낀 크고 작은 감정들은 쌓이고 쌓여 이제는 그저 가끔씩 꺼내보곤 하는 '추억'이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첫 회사와 마지막 회사의 간극이 10년이나 벌어져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2010년대 초반의 회사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점이 많았고, MZ세대 중에도 중간쯤에 위치한 '90년대생'인 내가 2010년대 초반에 회사를 다녔던 경험은 비슷한 나이대에서는 희귀한 경험이 되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회사에 대해서 기억이 나는 대로 내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회사와 달랐던 점을 짚어보려고 한다.
그때에 '상식'이 현재는 '몰상식'이 되었다.
직급이 낮고 어릴수록 잡다한 일과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우리 회사는 정수기가 한대 있었고, 직수형이 아니라 생수통을 매번 갈아줘야 했다. 당연히 회사에서 가장 어린 내가 생수통 당번을 맡아서 생수통을 갈아 끼워야 했다. 물건을 나를 때, 심부름을 해야 할 때 등등 귀찮거나 힘이 드는 일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직원들의 몫이었다.
이건 지금도 많은 회사들에서 빈번히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회사의 관습으로써 당연시했었다는 점이 지금과는 분명히 다르다. 시키는 사람과 일을 하는 사람 모두 불합리한 게 아니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지금이라면 '왜 이걸 나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거다.
어린 직원들은 윗사람들을 위해 분위기를 띄워야 했다.
회사 워크샵 때의 일이다. 부서마다 발표가 끝나고 저녁에 고기와 술을 거하게 먹고 마셨다. 각각 배정된 숙소가 있었지만, 가장 큰 방에 대부분의 직원들이 모여서 또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때, 술에 취한 대표님은 직급이 낮고 어린 직원들만 모아서 당시에 아이돌들 덕에 유명해진 '귀요미송'을 부르게 했다.
잘하면 용돈을 주겠다는 대표님의 말에 시장에 팔려 나온 상품이 된 거 같았다. 하지만, 불려 나온 모두가 '1 더하기 1은 귀요미~' 하며 분위기를 맞추려 애썼다. 이때가 회사 생활 중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이었다. 또 한쪽에서는 부장님이 여직원들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강요하기도 했었다.
이때는 이런 일을 당해도 직급이 낮으니까 내가 참아야지 하며, 신고하거나 어딘가에 글을 올릴 생각 조차 하지 못 했다. 성희롱에 대한 인식이 미비했고, '사내 성희롱'에 대한 심각성이 사회적으로 점점 커지고 있을 시기였다.
지금도 이런 회사가 있다면, 잡***이나 블***과 같은 직장인 커뮤니티에 내부 고발이 이루어졌을 거다.
회식자리에서 술을 편하게 먹을 수 없었다.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당시 회사의 선배님들은 술을 엄청나게 잘 마셨다. 나는 컨디션이 엄청 좋아야 소주 2병이 한계였는데 대부분 4~5병은 기본으로 마시는 주당들만 모여있었다. 면접에서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시는 사람들만 골라 뽑은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직급이 낮은 직원들은 술을 거부할 수 없었다. 술을 거부하려면 없는 핑계를 대서라도 회식을 안 가야 했다.
팀장님을 포함해서 많은 선배님들이 술을 잘 마시니, 부하 직원들은 술을 못 마셔도 억지로 마시기 일쑤였다. 회식은 대부분 목요일 저녁에 이루어졌는데,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아침에 바로 출근하면 회사에서는 술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렇게 출근을 하면 당연히 그날 일이 정상적으로 될 리도 없고 하루를 그냥 허비한다.
요즘은 '각자 마실만큼 알아서 마시자'라는 인식을 하고 있지만, 그때는 조금이라도 빼려고 하면 눈치를 주며 술에 잔을 가득 따라줬다. 회사에서 하지 못 한 얘기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회식은 적절히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술을 강요하는 관습은 없어져야 한다.
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
'개인주의' - 국가나 사회보다는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의 의의와 존재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는 정치 철학 및 사회 철학
내가 속한 부서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단합을 이유로 회사 안팎에서 같이 게임을 했다. 강제는 아니었지만, 부장님이 주도했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자기개발 같은 개인플레이를 하면 '이런 걸 회사에서 왜 하는 거야'라며 빈정거렸다.
어느 날,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직원분이 점심시간에 다들 게임을 하면서 시끄러운 것에 불만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그분은 점심시간에 잠을 자는 것을 선호했는데, 키보드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부서 내에서는 그분을 예민하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몰아가기 시작했고, 결국 그분이 퇴사를 하고 나서야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이처럼 회사의 집단주의에 따르지 않으면 개인의 성향이나 의견은 가볍게 묵살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르다고 인정해주기를 거부했다. 이 집단주의를 회사의 문화라고 얘기할 순 없다. 회사의 성장이나 직원들의 개인 능력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의 문화는 건설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건 어른들의 유치한 '왕따놀이'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하다.
최근 회사들은 회식 대신 점심을 함께 먹는다거나, 자기개발 활동을 회사에서 지원해준다거나 하는 개인의 시간, 성향, 개성 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 개인주의 시대에 맞춰 회사도 변화하는 것이다.
회사가 평생 직장인 줄 알았다.
첫 회사에 있을 무렵 어른들로부터 늘 많이 들었던 얘기가 '한 회사를 꾸준히 다녀라'였다. 나도 그 얘기를 신념처럼 믿고 따랐다. 회사에 자리를 잡고 여기서 팀장이 되는 상상까지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제 한 회사에 오래 있는게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남의 일을 하는데 하루의 약 3분의 1을 쓸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고려해 봐야한다.
회사 선배님 중 어느 분은 이 회사를 열심히 다니면 10년 뒤에는 여기에 팀장이나 부장이 되어있을 거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조언이 악담처럼 들린다. 현재의 내가 저 조언을 조금 과장해서 나쁘게 해석하자면
'너는 성장 가능성도 없고 직원들의 역량 향상에 관심도 없는 회사에서 10년을 다니고, 팀장이나 부장이 되어서 밑에 직원들을 달래 가며 그런 회사를 유지하는데 보탬이 되어라'
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예전에도 한 회사에서 10년 이상 장기근속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지만, MZ세대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조금 예전으로 가면 'IMF'로,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준비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다. 이제 '평생 직장'이라는 말은 믿지도 믿을 수도 없는 말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소위 'N잡러'들이 늘어나고 있다. 회사의 의존성을 줄이도록 회사 외적인 일을 통해서 수익을 창출한다. 수익을 창출하는 것에는 예전보다 많은 방법이 있고, 많은 미디어를 통해서 그 정보 또한 쉽게 접할 수 있다. 회사에서만 돈을 버는 시대는 끝났고, 스스로의 힘으로 가치를 만들고 판매하는 시대가 찾아왔다.
첫 회사의 책상
10년 동안 회사 생활은 참 많은 것이 변했다. 그것만으로도 10년의 시간을 체감할 수 있게 한다. 또 다른 10년이 지나면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세상은 어떻게 바뀔지 예상할 수 조차 없다. 하지만, 지금 보다 더 나은 세상이 오기를 기대하며 준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