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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은감성 Mar 04. 2022

안철수는 이제 '말'이 아니라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안철수의 단일화에 대해서

사전투표를 하루 앞둔 아침 갑작스레 윤석열과 안철수의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많은 유권자들은 혼란에 휩싸였으며, 나도 그중에 하나였다. 특히, 전날 토론까지 보고 안철수에게 표를 행사하려고 했던 많은 중도층과 안철수 지지자들에게는 가장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나의 경우 지지하는 이념이나 정당이 없으니, 가장 대통령에 적합하고 합리적인 사람을 뽑을 생각이었다. 그래서 안철수를 눈여겨보고 있었고, TV토론이나 그의 언행을 보면서 점점 더 확신에 찼다. 그의 정치인생 10년이 단일화만 하는 '철수 정치'라며 조롱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안철수 본인도 그 프레임을 깨기 위해 이번 대선에 출마한 걸로 보였다.


단일화 하기 불과 며칠 전 유세에서도 "무능한 대통령을 뽑아서 1년 뒤에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미 손가락을 다 잘라 더 이상 자를 수도 없다"라며 지지를 호소했던 안철수였다. 그런 그가 자신이 신랄하게 비난하던 윤석열을 지지하고 사퇴한 것이다.


마지막 TV토론을 보고 사전 투표 날을 기다리며 잠든 나에게 새로운 아침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켜니 소란스러운 카톡과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단일화 기사들에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흠... 뭐지? 꿈 속인가...?" 누가 뒤통수를 세게 때린 것처럼 얼얼하고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믿기 힘들지만 그건 현실이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물음표들이 떠올랐다.


"제 3당으로써 다당제를 실현하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단일화 결렬을 선언하고 토론회에서도 단일화는 없다고 재차 확인해 주지 않았던가?"

"손가락 자르고 싶게 만드는 대통령은 막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에는 철수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조롱받았는데도 숙이고 들어가서 단일화를 하겠다는 건가?"

등등


내가 영상을 통해서 기사를 통해서 봐온 수많은 언행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앞에서 보여줬던 단일화 결렬 선언도 다 극적인 단일화를 위한 쇼였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일화 선언'이라는 것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의 국민을 위한다는 진정성도 이제는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자세히 꿰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10년간의 정치사를 보면 단일화, 탈당, 창당, 합당과 같은 시행착오를 많이 겪으면서 그도 충분히 많은 것들을 느꼈으리라 생각했다. 이번에는 그 경험들을 녹여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믿었지만, 그 끝은 명분 없는 단일화 선언으로 지지자들을 배반한 것이다.


그는 정치공학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누누이 얘기해왔다. 그래서 단일화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도 얘기했다. 하지만, 과정과 결론을 살펴보면 다분히 정치공학적으로 은밀히 단일화를 염두해 왔으며, 앞에서는 단일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지자들을 안심시켰다.


안철수는 현재의 지지자들보다 정치 생명과 입지를 연장하기 위한 결단을 내렸다. 완주해서 정권교체에 실패하면 보수 세력에게 외면받고, 반대인 진보 세력도 거들떠보지 않을게 분명했다. 하지만, 단일화해서 정권교체에 성공한다면 차기 정부에서의 역할이나 차기 대선을 노릴 수 있는 지지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안철수가 꿈꾸는 더 좋은 대한민국을 위해서 이것이 최선이라면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하지만, 이런 선택을 할 거라면 훨씬 더 빠르게 단일화를 선언하고 지지자들에게는 양해를 구했어야 한다. 투표일 직전에 아무런 언지도 없이 선언한 단일화를 보고도 계속 지지할 수 있는 지지자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해관계가 없는 단일화가 큰 효과가 있는지도 의문이 든다.


안철수에게도 기득권 정당에 굴복하는 게 고통스러운 선택이었겠지만, 그를 신뢰하며 그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의 선택이 더 큰 고통을 몰고 왔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혹시라는 마음으로 지켜봐 왔고, 마지막 토론까지 무사히 마치는 것을 보고 9부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단일화가 이루어질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안철수라는 사람의 진정성을 높이 샀고, 합리적인 정책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선택을 보고 더 이상 지지하긴 힘들 것 같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안철수의 매운맛'을 느껴보니, 왜 진절머리를 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차기 정부에서 행정을 맡게 된다면 보란 듯이 잘하길 바란다. 안철수란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나 같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진정성을 이제는 '말'이 아닌 '능력'으로써 펼쳐 보이길 바란다. 본인이 자신하던 그 능력도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면 사람을 잘 못 본 것이라 생각하겠다. 많은 희생을 치르고 얻은 기회를 날린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당신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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