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사실 우리 삶의 목적은 주어져 있다

우리는 사실 은근히 삶의 소명이나 목적이 이미 정해져있기를 바랐잖아

by 대장장이 휴

우리에게 삶의 목적이 외부 누군가에 의해 주어져있다면?


2005년에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아일랜드'는 장기대체를 위해 사는 복제품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들 복제품은 자신이 복제품인지 모르고 살지만, 실제로 이들이 태어나서 삶을 사는 이유는 원본이 필요할 때 그들에게 장기를 제공해줄 수 있기 위해서다. 즉, 그들(복제품)의 삶은 사실 목적이 이미 주어져있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충격을 준 이유는 매우 여러가지가 있지만, 나는 이것이 가장 와닿았다.


그들(복제품)의 삶의 목적은 이미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정해져있었고, 그 목적은 그들의 삶이나 그들의 행복 그 자체가 아니다.


어떻게 들리는가. 비인간적으로 들리는가. 기구하게 보이기도 하는가.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영화 속 그들(복제품)이 가엾기도 하고 마치 그들과 우리는 전혀 다른 존재인 것처럼 그들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본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내가 이전에 삶의 이유가 주어져있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 우리에게 삶의 목적은 이미 주어져 있다. 그것도 꽤나 강력하고 자명하게 말이다. '이미 주어진' 두 가지 삶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두가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결국은 우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중 하나는 바로 유전자의 숙주로서 살아가도록 설계된 우리의 욕구들을 말한다. 다른 한가지는 사회와 문화가 우리에게 미리 제시해놓은 로드맵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두가지에 의해 충분히 삶의 목적이 주어져 있다.


유전자의 숙주


유전자의 숙주로서 설계되고 각인된 우리의 욕구체계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해보자. 사실 우리가 삶의 목적이나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유전자 입장에서 본다면, 코웃음을 칠 일이다. 이렇게나 강력하게 설계를 해놓았는데 삶의 목적이나 이유를 자체적으로 고민한다니! 우리는 철저하게 유전자가 복제될 수 있도록 운반체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어있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문분과가 바로 진화심리학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심리학 관련 저서로서 이미 명실공히 세계적인 스테디셀러로 그 입지를 굳혔다. 그의 책과 관련해서 한참을 항간에 떠돌았던 일화들이 있다.


"우리 반의 학생 하나가 그 책(이기적 유전자)을 읽더니 학교도 안 나오고 염세주의자가 되어버렸어요."
"우리 아이가 그 책을 읽고 나서는 교회도 안 나가고 울기만 해요."


실제로 굉장히 많은 항의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나 또한 처음 그 책을 읽고서 굉장히 깊은 충격에 빠져 두서달 정도를 꽤나 우울하게 지냈던 기억이 난다. 진화심리학은 반증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마찬가지로 '과학'이 아니다 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그만큼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 자체가 곧 그만큼 설득력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우리의 신체는 철저히 운반체로서, 숙주로서의 우리가 아니라 유전자의 복제를 위해 설계되어 있다. 이에 대한 매력적이고 설득력있는 설명은 너무나도 많다. 쥐에 대한 한 실험을 보면 그 쥐는 음식레버를 누르면 음식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계속 성적 자극(쾌락중추 자극)만 추구(성적자극을 제공하는 레버를 계속 누름)하다가 아사한다. 바다에서 구조받지 못한 사람들의 증언을 보면, 인간은 생존을 위해 정말 엄청난 능력을 발휘한다. 생선 눈을 평소에는 먹지도 않다가 자꾸 눈알이 땡겨서 눈알을 열심히 먹었는데 추후 검사 등을 통해 추적을 해보니 구조당하지 못했던 시기에 결핍이 심각할 수 있었던 영양소가 눈알에만 있었다고 한다. 영양소의 섭취를 위해 생선눈알에만 있는 영양소에 대한 지식이 없음에도 식성이 자가변화한 것이다. 식욕, 수면욕, 성욕 이런 생물학적 욕구만 그럴까. 심리적인 것도 다분히 진화과정에서 생존에 유리한 특성만이 남았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자주 화를 내지만, 사실 분노할 때 신체반응은 다분히 물리적 전투에서의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심박이 빨라지고 소화기관이 느려지며 손과 발끝으로 혈류가 몰리면서 최대한 싸우고 도망칠 수 있게끔 변한다. 문제는, 얼핏 보면 인간은 인간 스스로를 위해 진화해온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간 몸 속에 있는 유전자를 위해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은 인간에게 불리하더라도 유전자에게 유리하면 우리는 그러한 특성에 따라 느끼고 반응하고 행동하도록 설계되어있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우리


그리고 우리는 태어나면 그 사회와 문화에 속해서 살아간다. 그 문화와 사회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개개인인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사회화' 과정을 통해 학습하도록 만든다. 우리가 타인의 기대와 사회문화적 기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어떻게 살아가면 될 지가 거의 정해져있는 문화에 가깝다.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을 보면, 행복도와 개인주의가 반비례하는데 우리는 개인주의가 굉장히 낮다. 여기서 '개인주의'는 우리가 평상시에 생각하는 그 단어의 의미와는 다르다. 여기서 '개인주의'는, 문화에서 기대하는 관습적 삶보다 자신의 주관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배타적이고 비판적인지를 나타낸다. 즉, 우리는 다른 문화보다도 우리에게 삶의 목적이나 방향이 훨씬 사회로부터 강력하게 제시되고 조용됨을 의미한다.


왜 고민을 하는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런 상황인데 대체 무슨 이유로 삶의 의미를 고민한단 말인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우리에게 각인된 유전자의 숙주로서의 욕구체계에 의해 자연스럽게 먹고 싸고 자고 이성을 만나 번식을 거쳐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죽는다. 이게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태어나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거치든 안 거치든 직장을 가져서 생계를 유지하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열심히 일하다가 그렇게 죽으면 된다. 사실 우리가 고민을 1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우리는 충분히 아무 생각없이 정해진대로 흘러가기만 해도 될만큼 강력하고 명백하게 삶의 방향이, 삶의 이유가 이미 정해져 있다!


무언가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드는가. 영화 '아일랜드'의 복제품들이 그렇듯이, 우리가 아닌 다른 외부의 어떤 존재가 이미 우리 삶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정해놓았다는 생각이 불편하게 다가오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충실한 유전자의 숙주로만 살기에, 모범적인 사회구성원 중 하나로서만 살기에 아쉬운 무언가가 있는 사람인가보다. 어쩌면 마음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울려퍼지는 소리가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항상 말미에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사회와 문화의 관습대로 삶을 살거나, 다른 종들처럼 자신의 자연스러운 욕구에 충실하게 삶을 살아나가는 것에 전혀 반대하지 않는다.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고쳐야 한다고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것들에 대해 이해하고 자각하고 한 번쯤 고민해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부지불식 간에, 전혀 자각도 못한 채 내 안에 설계된 생물적 욕구대로만, 타인과 사회의 기대대로만 살면서도 자기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본인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소리다. 이런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삶의 목적을 생각해볼 것인지 고민해보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믿는다.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다면, 그 결정이 날 행복하게 하는 욕구를 좇아 맛있는 거 먹고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이든, 모범적인 사회구성원으로서 사는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고민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삶은 마지막에 너무 큰 후회와 절망을 느끼게 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최소한 이러한 주제에 대해 반드시 숙고하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는 어떤 것에 더 영향을 받는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꼭 고민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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