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서로서의 신체반응을 선명하게 자각할 수 있도록
비교적 관찰하기 쉽다
자기상담가로서 우리가 자기자신을 이해해나갈 때 가장 먼저 초점을 둘 부분은 우선 '신체반응'이다. 사고나 정서, 행동과 같은 다른 요소가 있음에도 신체반응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한가지다. 자각의 용이성. (https://brunch.co.kr/@realrestkjh/26 , 『우리가 스스로를 이해할 때 초점을 두는 순서』) 언젠가 말했듯이, 분명히 우리가 우리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자각하는 것보다는 신체반응을 자각하는 것이 쉽다. 왜냐하면 신체반응은 우리의 의식적인 의도에 따라 발현되는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교적 가시적이다. 사고나 감정보다는 우리가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고 운이 좋다면 눈으로도 관찰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신체반응을 살펴보는 것을 우리가 스스로를 살펴나가는 첫번째 스텝으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신체반응과 행동의 구분기준
여기서 한가지 짚어두고 넘어갈 것이 있다. 신체반응은 행동과 다르다. 우리는 자기상담의 과정으로서 우리자신을 살펴보는 과정을 '신체반응 -> 행동 -> 사고 -> 감정' 순으로 알아볼텐데, 사실 이 순서를 반드시 칼같이 지켜야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각 요소 간의 구분은 중요하다. 그래야 혼동을 최소화할 수 있을테니까. 신체반응과 행동은 다분히 개념적으로 가깝고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배타적으로 구분할 수는 없지만, 저 두 가지 요소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우리의 의도'이다. 신체반응은 우리가 의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행동은 우리의 의도가 개입된다. 가령, 배가 고픈 것은 신체반응이다. 하지만 저녁에 야식을 먹는 일이나 밥을 굶는 일은 행동이다. 졸리는 것은 신체반응이다. 의도가 개입되지 않는다. '졸려야지'하고 졸음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졸음을 참는 일이나 곧장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하는 일은 행동이다. 이것은 우리의 의도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다.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는 것은 신체반응이다. 하지만 이를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하는 것은 행동이다. 이 정도의 나이브한 구분만으로도 내가 앞으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오해없이 이해하기에는 충분하다. (다만, 이 분류는 어떤 이론이나 관점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생각나는대로 적는거다. 다분히 내가 이야기해나갈 내용에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나눈 자의적인 구분이니 이를 보편타당하게 사용되는 구분기준으로 이해하고 지식으로 담아두는 것은 곤란함을 밝혀둔다.)
단서로서의 신체반응
신체반응을 잘 자각하는 방법은 다음의 간명한 절차를 따르면 된다.
1. 어떤 상황이든 하고 있던 모든 행동을 가급적 멈춘다.
2. 가능하면 생각도 멈춘다.
3. 가능하다면 감각적 자극도 가급적 멈춘다.(시각적 자극, 청각적 자극, 촉각적 자극, 미각적 자극 등)
4. 차분한 마음을 가지고, 가만히 내 몸의 상태를 느껴본다.
황당하게 느껴질수도 있지만, 저게 전부다. 이 이야기를 하자고 그렇게 말이 많았던 거냐고 묻는다면, 그건 물론 아니다. 우리는 생득적으로 신체반응을 잘 느낄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물론 이는 신경학적 손상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수 있는 정도의 병을 현재 앓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문제는 일단 판단하지 말고 신체반응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신체반응이 좋은 이유는, 비교적 우리가 왜곡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왜곡을 하기는 한다. 가령 어떤 술집에서 여자친구와 가볍게 술을 한잔하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당신(여기서는 남자로 가정한다.)에게 술이 취한 채 시비를 걸어온다. 덩치는 매우 작은 거 같고 힘도 없어보인다. 묘하게 얼굴에 열이 오르면서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손발에 피가 도는 느낌이 난다.(물론 이거 느끼려면, 위의 고차원적?! 단계를 나름 잘 연습해서 체득해야만 가능하다.) 심장박동이 빠르게 뛰는 것은 신체반응이다. 이는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에 대한 일종의 단서가 된다. 심박이 빨라졌다는 신체반응은 왜곡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해석을 통해 분명히 왜곡을 한다. 왜 심장이 빨리 뛰는가.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을까.
1. 덩치 작은 이 사람의 시비에 극심하게 분노했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은 상대의 무례한 태도와 몰상식한 행동에 매우 화가 났다. 그래서 화가 났고, 이 치밀어오르는 화 때문에 심장이 빨리 뛴다.
2. 덩치는 작지만 누군가가 시비를 걸었다는 생각 때문에 당신이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이다. 덩치와 무관하게 이 사람이 너무나 위협적으로 느껴지고 혹시라도 상대가 보기보다 싸움도 잘하고 힘도 있어서 내가 모욕을 당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두려움과 위협감 때문에 심장이 빨리 뛴다.
3. 곁에 여자친구가 있다. 당신은 여자친구 앞에서 당신의 남자다움을 증명해보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왜소하고 힘도 하나도 없어보이는 남자는 더더욱이 술에 만취한 상태라 내 적수가 될 수가 없다. 남자다운 모습과 일침으로 별 감수할 위험없이 여자친구 앞에서 믿음직한 남자친구로서의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약간 들뜨기도 하고 조금은 흥분도 된다. 그래서 심장이 빨리 뛴다.
위의 세 가지 말고도 당신의 심장이 빨리 뛰는 이유에 대한 해석은 사실 무궁무진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우리가 심장이 빨리 뛴다는 신체반응을 자각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이해하는 가장 핵심적인 단서 중 하나이다. 이 단서를 자각하는 능력은 생득적인 것이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실패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꽤나 많은 우리의 신체반응을 자각하지도 못하고 지나친다. 우리는 앞으로 그렇게 자각하지도 못하고 지나치는 일을 훈련과 수많은 시도를 통해 줄여나가야 한다. 우리는 여지껏 자각도 못했던, 혹은 내가 이해하고 싶은대로 이해하고 넘겨버렸던 신체반응이라는 단서들을 모아서 자기이해의 재료로 사용할 것이다.
P.S) 이러한 재료들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세계를 가져다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