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로서의 우리, 그리고 심리적 존재로서의 우리에 대한 단서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를 알게 하는 신체반응
신체반응은 우리가 유기체임을 새삼 자각하게 한다. 우리에게 생득적으로 주어진 생물학적인 욕구들은 그야말로 신체반응과 가장 직결되는 욕구들이다. 이러한 가장 기초적인 생물학적 욕구들은 곧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이는 여러모로 우리가 스스로를 이해해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우리에게 가장 기초적으로 부여된 욕구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마도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수면욕, 호흡욕, 배설욕, 식욕, 성욕 등이 그러한 욕구들이 될 것이다. 아까 말했지만, 이러한 욕구들은 우리 자신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한다. 우리는 휴대폰 배터리가 금방 닳는다고 아우성을 치곤 하지만, 사실 휴대폰은 우리에 비하면 훨씬 낫다. 휴대폰은 그냥 전원만 켜놓으면 사흘도 가니까. 하지만 우리는 전원만 켜놓고 가만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앉아있기만 하더라도, 이틀만 잠을 자지 않고 버텼다간 사경을 헤매기 시작할 것이다. 충전해야 하는 번거로움으로 치면, 우리만한 게 없다. 휴대폰 충전하기 귀찮다고 하는 건, 어쩌면 내로남불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물을 마시지 못하면 일주일을 버티기가 힘들다고 한다. 이런 기초적인 욕구들이 결핍되는 것은 곧 생존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생물학적 욕구가 결핍될 경우 즉각적으로 신체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진화되어왔다. 이런 욕구들이 바로 바로 신체반응을 통해 나타나도록 우리가 설계된 덕분에, 신체반응은 우리가 유기체로서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그리고 어떤 것들이 결핍되어있는지,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신체반응에 대한 우리의 (의식적) 자각은 생각만큼 단순하지는 않다.
별로 어렵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아니, 당연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자, 그렇다면 그런 당신을 위해 아주 약간 더 복잡하지만 더욱 중요한 내용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우리가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생리적 욕구에 따른 신체반응, 가령 배고픔 따위의 것들은 단순히 그러한 신체반응과 직결되어 있다고 판단되는 생리적 욕구에 의해서만 발생한 것이 아닐수도 있다. 즉, 우리가 어떤 신체반응을 경험하면서 우리의 의식 상에 떠올려 지각하는 욕구들은 무의식적인 다른 결핍욕구들과 함께 결부된 경우가 많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를 들어보자.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느끼는 신체반응 중 하나인 배고픔을 예로 들어보면, 배고픔(허기)이라는 신체반응은 단순히 음식물 섭취를 통한 신체 항상성의 유지를 위해서 나타난다고 생각된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가장 직결되는 생리적 욕구는 영양소 섭취를 통한 신체적인 밸런스 유지가 맞다. 하지만, 배고픔은 어떤 상황에서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생리적 욕구 이외에도,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나 누군가와의 친밀감에 대한 욕구 때문에 나타난 것일 수 있다. 혹은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스트레스를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욕구] 때문에, 배고픔이나 허기가 신체반응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실제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늦은 밤이라도 먹을 것을 찾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무수히 많다.(나부터 사실 그렇다.) 옆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묘하게 다급한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을 알아챌지도 모른다. 즉, 배고픔은 사실 꼭 정말 우리 몸이 영양소를 찾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만 나타나는 신체반응이 아닐 때도 많다.
다른 하나의 보편적 신체반응인 '졸음'을 예로 하나 더 들어보자. 과도하게 졸리는 경우, 이러한 신체반응은 어젯밤을 꼬박 샜거나 최근에 너무 많은 업무로 피로가 겹쳐서일수도 있다. 즉, 신체 상의 생리적 욕구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심리적인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가령, 우울해서 졸릴수도 있다. 실제로 DSM에서 우울증 환자의 증상으로 기재하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과도한 수면은 우울증인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는 한 가지 증상이 된다. 한편 어린 아이들 중 일부의 경우,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격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졸음이 느끼거나 하품을 하기도 한다. 즉, 졸음이 쏟아지는 신체반응은 단순히 생리적으로 수면이 부족할 때만 나타나는 신체반응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당연하게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이렇듯 한가지 신체반응은 의외로 무관해보이는 여러 가지 심리적 욕구나 그에 대한 결핍을 원인으로 한다. 그러므로 가장 직결될 것이라 기대되는 특정 생물학적 욕구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이는 신체반응에 대해서도 단순히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 반응이 일어난 것이라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 그 신체반응이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는 반응일지라도 말이다. 위의 예시들을 활용해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배고픔이라는 신체반응을 자각했다고 해서 '아, 나 밥먹은지가 좀 지나서 지금 배고픈가봐.'로 무조건 단정짓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졸린다고 해서, '아, 나 오늘 새벽에 일찍 일어났지.'로 무조건 단정짓고 지나쳐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게 들릴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는 신체반응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이에 대해 가급적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기록하라. 어디든.
여기까지 잘 따라왔다면, 신체반응에 대해 우리가 의식적으로 이해하고 자각하는 내용이 항상 올바른 이해가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는 신체반응이 어떤 경우의 수로 어떤 이유에 의해 발현되는지 전문가가 아닌데 말이다. 한 가지 신체반응을 유발하는 여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은걸까.
써라. 휴대폰에 메모를 하든 음성녹음을 하든 수첩에 쓰든 어디든 기록하라. 그리고 그러한 신체반응이 나타났을 때의 상황과 당신이 짐작가는 이유, 그 때의 기분,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 등 모든 것을 가급적 구체적으로 써서 모아라. 신체반응은 분명히 우리가 기대하는 이상의 무언가를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다. 우리가 우리를 이해해나가는 자기상담을 보물을 찾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면, 신체반응은 명백한 보물찾기에서의 핵심적인 실마리이자 보물지도다. 그러니 써라. 써두면 반드시 나중에 요긴하게 쓰일 순간이 올 것이다. 성실히 기록했던 스스로를 너무나 기특하고 대견하게 여길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고, 아니 그 순간이 올 거라고 말하고 싶다.
P.S) 비교적 자각하기 힘들지도 않고 단순해보이는 일이 바로 신체반응을 자각하는 일이다. 하지만 신체반응을 잘 자각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말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가져다줄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