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은 우리의 생각과 걱정, 욕구 등 많은 것을 반영한 결과이다
나는 최근에 두 개의 포스팅(https://brunch.co.kr/@realrestkjh/27 『자기상담을 통해 자기이해의 첫 단추, 신체반응 자각하기』, https://brunch.co.kr/@realrestkjh/28 『신체반응이 알려주는 우리라는 존재』)에 걸쳐 신체반응에 대한 자각과 이러한 자각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했다. 다음으로 행동에 대한 자각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참고사항으로 제시하고 싶은 점을 한가지 적어두고 넘어가려고 한다.
신체반응을 자각하는 일에 대한 참고사항
신체반응에도 나름의 심각한 정도나 중요도에 차이가 있다. 서열이라고 딱 잘라 단정짓기에는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으나, 중요도의 차이와 서열에 대해 고려하며 스스로의 신체반응을 자각하고 기록해나가길 권한다. 신체반응이 우리의 생존이나 신체적 건강과 더 밀접할수록 우리는 그러한 신체반응을 더욱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단적인 예로 단순히 배가 고픈 것보다는 두통이 지끈거리는 것이 더욱 생활에 지장을 주고 많은 고통을 야기하므로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두통보다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신체반응이나 전혀 잠들지 못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신체반응일 것이다. 극단적으로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고 기절할 것 같다면, 이것이 더욱 중요한 신체반응일 가능성이 높다. 신체반응이 더 생존과 직결되고 생활에 지장을 많이 주는 것일수록, 이는 더욱 큰 심리적 위협과 결핍에 대한 방어 등에 따른 반응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어떤 요소에 의한 것이라는 이 추론을 수용할 수 있다면, 결국 생존과 더 근접한 신체반응이 우리가 우리자신을 이해하는 데 더욱 중요하고 핵심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서열에 따라, 더욱 생존과 밀접하다고 판단되는 신체반응일수록 더욱 우리의 자기이해에 많은 단서와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자기이해 과정을 해나가길 바란다.
행동도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말해준다
이제 신체반응 다음으로 이야기해볼 차례다. 바로 행동이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지각하고 관찰함으로써 우리 스스로에 대해 좀 더 잘 알아갈 수 있다. 언젠가 언급했듯이, 신체반응이나 행동은 감정이나 사고와 달리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요소다. 그래서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는 상대적으로 자각하기가 쉽다. 다만 행동은 신체반응과는 달리 우리의 의식적인 의도와 결정이 수반된다. 즉, 배고픈 건 신체반응이므로 우리의 의도가 개입된 반응이 아니지만(물론 무의식적인 의도나 생각은 반영될 수도 있다.), 배고플 때 밥을 먹든 굶든 우리가 행하는 특정 행동들은 우리의 결정과 의도가 수반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어떠한지를 통해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
신체반응보다 왜곡될 가능성이 더 크다
무슨 말일까. 앞서 말했듯이, 우리의 행동에는 우리의 사고과정과 의지, 의도 등이 개입된다. 따라서 더욱 많은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여러 가지 요소들이 더 많이 개입된다는 의미다. 신체반응도 여러 가지 욕구가 발현된 결과라는 것을 이야기한 바 있다. 가령, 배고픔은 영양소 섭취에 대한 신체적 욕구 때문에도 일어나지만, 애정이나 사랑에 대한 욕구 때문에도, 스트레스를 회피하고 싶은 욕구에 의해서도 발현될 수 있다. 행동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개입된다. 요즘 한창 열풍인 운동에 대해 생각해보자. 당신이 매일 저녁마다 열심히 2시간씩 필라테스나 헬스를 한다면 이는 무엇 때문일까. 우리는 대개 한 가지 행동이 한 가지 주요한 욕구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러한 선입견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을 놓치게 할지도 모른다. 운동을 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당신은 신체적 건강을 위해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이성에게 조금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일수도 있다. 자신의 생활을 통제한다는 통제감을 느끼기 위해서일수도 있고 불면, 소화불량 등 최근의 불편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아서일수도 있다. 운동을 통해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서일수도 있고, 꼭 이성이 아니라도 사람들에게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호의를 얻기 위해서일수도 있다. 운동 자체에서 느껴지는 신체 각 부위의 감각과 신경계의 발달, 운동동작에서 오는 역학적인 것들을 느끼며 얻는 성취감과 고양감 때문일수도 있다. 이렇듯 다양한 욕구와 목표에 의해 운동이라는 '행동'이 발현될 수 있다.
행동은 심지어 우리가 어떤지와 정반대로 왜곡되어 발현되기도 한다
이렇듯 많은 요소들이 관여되는 요소일수록, 더욱 많은 왜곡이 일어난다. 심지어 행동은 우리의 욕구나 마음과는 정반대로 나타나는 형태로까지 왜곡되기도 한다. 가령, 우리가 속으로는 왠지 조금 무섭고 두려운 누군가와 만난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어쩌면 속으로는 두렵지만 두려워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더욱 여유있고 자신감있다는 듯이 큰소리로 말하거나 호탕하게 웃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당신이 어떤 이성에게 호감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그 이성에게 멋지고 매력적인 이성으로 보이고 싶고 호의와 관심을 받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상대에게 끌리는만큼 상대에게 거절당하거나 시큰둥한 대응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커질 것이고, 결국 당신은 상대를 좋아하는만큼 되려 상대방에게 무관심한 척하거나 까칠하게 대할지도 모른다. 그래야 애당초 내가 진심을 드러냈다가 짓밟히는 무안하고 수치스러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듯 행동은 진정한 우리 자신이 어떠한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기록하라, 여러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목록화해서
우리가 행동에 관해서 자기이해를 위해 할 일도 신체반응에 대해 우리가 해야 할 일과 같다. 쓰는 것이다. 다만, 신체반응에 대해 쓸 때와 약간의 뉘앙스 상 차이가 있기를 바라는 부분은 있다. 우리가 우리의 행동에 대해 쓸 때는 우리가 그 행동을 했을 때의 우리 마음을 차분히 잘 들여다본 후, 왜 그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는지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서 쓰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한 가지 행동이 오직 한 가지 욕구에 의해 발현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언제나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그 복잡다단한 수많은 생각과 감정과 욕구들이 뒤엉켜서 발현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행동의 이면에 그 행동을 하게 만든 이유에 대한 당신의 짐작과 가설을 최소 두 가지 이상은 쓰길 권한다. 물론 이 행동은 오직 한가지 이유만으로 행한거라고 느껴진다면 별 수 없지만, 당신이 이 일에 익숙해질수록 한가지 이유로만 특정 행동을 한다고 느끼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하루 전체의 행동들에 대한 기록, 즉 일과를 기록하는 일
하나하나의 행동에 대해 기록해나가다보면, 조금씩 그 일이 익숙해질 것이다. 어느 정도 스스로 그렇게 느낄 수준까지 이르고 난 후에는 반드시 하루 24시간 전체에 대해 기록해보길 권한다. 내가 과연 하루를 어떻게 채워나가고 있는지는 결국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활동하는지를 기록하면 가장 명료하게 알 수 있다. 그러면 당신은 단순히 한 가지 행동을 하던 내가 아니라, 24시간 동안 내가 어떤 행동과 활동을 하며 사는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이해도를 높여나가게 될 것이다. 내 기대를 이야기해보자면 당신은 분명히 스스로 어렴풋하게 생각하던 당신의 하루와는 전혀 다르게 기록된 하루를 읽게 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우선 한 가지 행동에 반영된 우리가 여러 가지 욕구와 의도를 보다 명료하고 섬세하게 이해하고 파악하는 연습을 하는 일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루 동안 우리가 행하는 행동과 활동을 이해하는 수준으로 점차 그 자각의 범위를 확장시켜나가야 한다. 단순히 행동을 노트에 열거하는 일도 나름 의미가 있기는 할테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깊이있게 이해하는 데는 많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