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현존과 몰입이 쉽지 않은 두 가지 이유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 가시나무

by 대장장이 휴



앞서 말한 것처럼(https://brunch.co.kr/@realrestkjh/12), 나는 현존과 몰입이 행복을 누리는 꽤나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현존하는 것과 몰입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좀 더 내 경험에 부합하게 표현한다면, '개빡쎄다.'


우선 현존하는 것은 내 마음과 감정에서 벗어나 그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여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게 쉬운가. 잠깐만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해본다면, 금방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를 초조하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그로 인한 온갖 어둡고 무거운 감정에 짓눌리곤 한다. 누구나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과 생각에 시달리기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누가 우리를 옆에서 콱 꼬집거나 괴롭히지 않더라도 상시적으로 충분히 힘들다. (안 힘든 분들께는 일반화해서 ㅈㅅ하다는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ㄷ...)


불행, 고통 등 부정적 감정의 존재는 곧 무의식적인 존재인 ‘저항’이 있음을 의미한다.


현존 개념의 창시자인 에크하르트 톨레의 저서 'The power of now'에 따르면,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결국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대해 저항하기 때문이고, 이 저항은 무의식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우리는 무의식 중에 현재 상황이나 스스로에 대한 저항을 하게 되고, 이는 곧 부정적인 정서를 불러일으켜 우리 스스로가 현존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언젠가 간단히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이것은 결국 수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수용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https://brunch.co.kr/@realrestkjh/2)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간단히 현존하는 법을 체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좀 더 피부에 와 닿을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한 것과 유사한 이유로, 몰입 또한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무언가에 온전히 나의 모든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이를 방해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가 않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마음속 한 켠에서는 내일 있을 중요한 업무나 발표를 걱정하고, 재미있게 영화를 보면서도 이따금씩 가족이나 친구와 크게 싸운 일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그 순간에 존재하면서 어떤 것에 온전히 마음을 쏟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서 몰입의 창시자인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본인 저서에서 몰입을 하게 되는 예시 중 하나로 스키를 이야기한다. 스키 탈 때는 내 무게중심과 자세, 땅의 각도와 길의 굽이치는 정도, 발의 감각과 앞에서 튀어나올 수도 있는 장애물을 파악하는 등 내 몸을 스치는 공기와 내 신체감각에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집중해야 한다. 이럴 때 우리는 모종의 행복감과 우주에 나와 몰입하는 대상만 존재하는 듯한 일체감, 통제감 등을 경험한다는 것이 몰입의 관점에서 보는 행복의 상태이다. 하지만 일상 매 순간 속에서 이게 어디 쉬울까. 아까 말한 것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후회와 걱정으로 과거와 미래를 오간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걱정과 후회, 아쉬움, 분노, 불안, 좌절과 이로 인한 우울함 등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기에는 너무 많은 생각과 감정에 휩싸여서 살아간다. 과거와 미래를 끊임없이 오가면서 말이다. 이에 대해 에크하르트 톨레는 이렇게 말했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주변 장치로 인식하되 심리적인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심리적인 시간이란,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의 온갖 감정에 따라 마음 속으로 지금 이 순간에 있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몰입 역시 현존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몰입은 도대체 우리가 무엇에 몰입할지를 정하지 못했다(고 쓰고 '못한다'라고 읽는다.)는 문제까지 더해진다. 우리가 잠깐 건네받은 삶을 다시 반납할 때, 즉 죽음 앞에 섰을 때 과연 어떤 일에 몰입하여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삶을 살았어야 덜 후회할까. 몰입상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삶 전체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과연 어떤 것에 온전히 몰입할 것인지 그 대상을 결정할 필요가 생긴다. 그래야 삶 전체가 하나의 통일된 큰 몰입과정이 되어 행복하게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산발적으로 당장 눈앞에 닥친 일에 그때 그때 몰입하는 것도 언제나 마음이 지금 여기 있지 못하는 우리네 대부분의 산만한 삶보다는 훨씬 행복한 삶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죽음 앞에서 삶을 치명적인 아쉬움 없이 다시 반납하기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몰입할 대상을 정하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가 어떤 일을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지 알아야 한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로 귀결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의외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무엇을 삶의 가치로 정해서 그것에 몰입해야 할지도 당연히 잘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감 없이 주위를 둘러본다. 어떤 것에 가치를 두고 추구하며 살아가는지. 하지만 주위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저항을 하고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는 이유,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감정에 휘둘리느라 현존하지 못하고 몰입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해하는 것, 그리고 어떤 것을 삶의 목적으로 정해서 그것에 몰입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 이러한 모든 일들은 결국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이해해야 한다는 명제로 귀결된다. 좋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를 이해하면 될 일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후회하지 않을 삶의 목적을 정해 그것을 지향하며 몰입하는 삶을 살 수 있고, 현재에 대한 저항 없이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 현존하며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평온함과 행복감을 느끼며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이해하는 일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데 있다.


P.S) 우리가 우리를 이해하는 일이 왜 힘든지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일단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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