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스스로를 잘 이해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 중 첫번째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나 자신임에도, 나를 기꺼이 수용하는 용기

by 대장장이 휴

앞에서 이야기했듯이(https://brunch.co.kr/@realrestkjh/15 참고), 우리는 크게 두 가지 핵심적인 이유로 우리 스스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스스로를 잘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주인공인 이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몰입할지 스스로 자신감 있게 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매 순간 마음과 감정에 휘둘리며 지금 이 순간에 저항하는 대신, 항상 깨어있는 의식상태로 맑고 고요한 내면의 평화를 느끼며 행복하게 순간순간들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곧 행복이고, 삶을 반납해야 하는 죽음 앞에서 우리가 체념 대신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삶을 내려놓을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


자, 그러면 생각해보자. 과연 어떻게 해야 우리는 우리를 잘 이해할 수 있는가. 사실 답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르겠다. 가령, 물길이 흘러가는 것을 무거운 바위와 큰 나무통이 막고 있다면, 그 돌과 나무통을 치우면 될 일이다. 마찬가지다. 앞에서 이야기한 우리가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막는 이유 두 가지를 해소하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게 우리 스스로를 잘 이해하게 될 수 있다. 물론 그 방해물이 없더라도 현존하는 연습과 몰입하는 훈련은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아마도 더욱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걸 막는 강력한 녀석들을 잘 통제할 수 있는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선,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너무 간단명료하게 느껴져서 순간 한 1초 정도 살짝 무안해지긴 했는데, 분명 이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음, 무엇을 이야기해보면 좋을까. 인간중심상담이론의 창시자 칼 로저스는 자신의 저서 'On Becoming a Person'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우리의 첫번째 반응은 그것을 이해하기보다는 즉각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왠지 부인하고 싶기도 하고 언뜻 보면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곱씹을수록 날카롭기 그지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그것을 어떠한 가치판단이나 내 잣대에 따른 평가 없이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이해하는 경우가 거의 전무할지도 모른다. 당장 나부터도 항상 노력하지만 정말 정말 힘들고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바로 '무언가를 보거나 듣자마자 그것에 대해 평가하는 짓을 하는 대신, 일단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좋은 상담가로서 살고 싶은 입장에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정말 미치도록 잘 안 된다 ㅋㅋ


문제는 이런 짓을 우리가 과연 타인한테만 할 것인가이다. 내가 볼 때는 그렇지 않다. 세상은 내로남불을 비난하고 없애야 한다고 부르짖지만, 개인적인 생각에 내로남불 그거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다. 저 깊고 깊은 내 뱃 속의 창자 깊은 곳까지 내려가 우리의 깊은 진심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남에게만 엄격하고 스스로에겐 관대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도 실은 비슷한 잣대를 들이민다고 생각한다. 가령,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친구를 누군가가 의지박약에 나태함의 끝이라며 굉장히 비난한다고 해보자. 하지만 정작 본인은 늦잠 자고서, 합리화를 한다. '아니, 나는 너무 어제 체력을 많이 소진해야만 했으니까 난 어쩔 수 없어.' 이게 소위 말하는 내로남불일텐데, 나는 이런 사람도 아주 깊은 마음 속으로는 상대방을 비난하는 딱 그만큼 본인 스스로도 비난하고 경멸할 것이라 생각한다. 성적이 나쁜 친구를 하찮게 보고 업신여기는 사람은, 언젠가 자기자신이 성적을 엉망으로 받게 되었을 때, 그런 스스로에게 너그럽고 관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 사람은, 머리로는 애써 합리화를 하며 '내로남불'을 시전할지는 몰라도, 깊은 속마음으로는 성적이 안 좋은 자기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경멸할 수 있다. 자신의 친구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로저스의 말처럼, 우리는 타인의 말을 들을 때 그것을 이해하기보다는 즉각적으로 평가하고 판단부터 한다. 그런데 이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바라볼 때도 매한가지다. 우리는 어떤 기준이나 잣대에 의해 우리 스스로를 매순간순간 평가하고 판단한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대신.


자기개념이라는 단어를 일전에 언급한 적이 있다.(https://brunch.co.kr/@realrestkjh/15 참고)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어떤 일관적인 이미지나 상을 만들어서 마음 속에 가지고 있다. 대상관계이론에서는 이를 자기표상이라고 하고, 인간중심상담에서는 자기개념이라고 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자기정체성'과도 비슷한 개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나 상이 쉽게 말하면 '자기개념'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 자기개념을 '잣대 삼아' 우리 스스로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가령, 본인이 다른 건 몰라도 부모님에 대한 공경과 효심은 지극하다고 믿는 사람의 자기개념은 '효자'이다. 실제로 부모님도 자기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고 진심을 다해준다. 그런데 가슴 한 켠에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자기개념을 저렇게 가진 사람은, 그렇게나 자신을 사랑해주고 위해주는 부모님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일 수 없다. 절대로. 나는 그런 불효막심한 사람이 아니라, '효자'인 걸. 자기개념에 따른 나 자신인 '효자'와 지금 내 진짜 속마음 중 일부분인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상충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 할까. 절대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분노, 즉 자신의 자기개념에 위배되는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한다. '부모님이 그렇게 날 진심으로 사랑하며 키워주었고, 나는 그런 부모님에게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인데 부모님이 실수를 좀 했거나 너무 잘나지 못했다는 사소한 이유로(예를 들자면 그렇다는거다.) 부모님을 원망하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뭐 이런 식으로 생각이 흘러갈지도 모른다. 여기서 그의 진짜 경험, 있는 그대로의 마음인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나 스스로에게 거부당하거나 인지되지 못한다. 그러면 이 원망하는 마음은 어디로 사라질까. 안 사라진다! 이 마음은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 우리의 일상과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것이 바로 정신분석에서 무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이자, 인간중심상담에서 자기개념과 진짜 자신이 경험하는 것 간의 괴리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자, 인지행동치료에서 비합리적인 인지도식과 자동적 사고를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이자, 게슈탈트치료에서 전경에 떠오르는 게슈탈트를 방해하는 접촉혼란과 미해결과제를 중시하는 이유이자, 명상치료에서 알아차림과 관조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이다. (상담심리학의 여러 이론들은 언젠가 지면을 할애해서 조금씩 설명할 계획이다. 지금은 가볍게 그런 게 있나보다, 하고 눈으로 발라두기만 해줘도 좋다.) 즉, 여기서 이야기하는 내용인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보기보다 우리 삶에서 아주 중요한 핵심 중의 핵심이다. 여지껏 많은 대가들이 그렇게 생각해왔듯이, 경험과 지식이 일천함에도 나 또한 그리 확신한다.


그렇다면 지금 든 이 예시에서 내게 진심을 다해 사랑을 주고 날 길러준 부모님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저 사람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인생의 많은 국면에서, 언제나 답은 간단하다. 실천이 어려울 뿐. 이 예시에서 저 사람이 해야 할 일은, 그냥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자각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2014년)'에서 정신과 의사인 여자주인공 지해수(공효진)가 소설작가인 남자주인공 장재열(조인성)에게 조언을 구하는 장면이 있다. 지해수는 굉장히 선하고 자기자식에게 애정도 많은 한 어머니(자신의 환자인 남자고등학생의 어머니이다.)와 관련해서 무언가를 묻는데, 남자주인공 장재열(조인성)이 이렇게 대답한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은 자식한테 상처 안 줘? 천사 같은 우리 엄마도 가끔 나한테 상처 주는데.


굳이 이 대사를 언급하는 이유는, 세상에 다시 없을 천사같고 한없이 내게 좋은 것만 주려는 부모님도 내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날 지극히 사랑하는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기만 하고 살아와서 언제나 부모님을 너무 사랑하는 올바른 자식도 어떨 때는 부모님을 원망할수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세상에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온갖 도덕과 윤리와 당위와 의무로 점철된 자기개념을 들이대면서 스스로의 진짜 마음과 경험을 부인하고 왜곡하며, 우리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지도, 수용해주지도 않는다. 즉,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서부터 진짜 우리자신을 수용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배우자가 날 제대로 이해해주고 공감해주지 못한다며 눈물도 흘리고, 내 가족이, 내가 속한 곳의 구성원들이 나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하고 상처도 받지만, 사실 정작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으로 중요한 일은 '우리 스스로에게 있는 그대로 수용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P.S) 가만히 누워서 잠들기 전에 한 번 생각해보자. 나는 나를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추후에 자기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 시간을 할애해서 한 번 써볼 생각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기준으로서의 '자기개념'에 대해 잘 알게 되면, 분명 우리 스스로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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