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우리가 심리상담을 받지 않는 네 가지 이유

상담을 받기 위해 누군가를 찾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by 대장장이 휴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슬픔과 수치심, 모욕적인 기억과 지워버리고 싶은 상처들을 나는 누군가에게 얼마나 보여줄 수 있었던가. 그 가슴졸이고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하기 위해, 얼마나 수십번 심호흡을 하고 또 가슴을 쓸어내렸었나. 나는 남에게 내 힘들고 아픈 것을 나누어달라고 조르고 매달리고 남까지 힘들게 만드는 행동을 못난 것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철썩같이 믿으며 살았다. 사람은 자신의 고통과 어려움을 자기 스스로 해결해내야 했고, 내게는 그것이 바로 성숙한 인간의 핵심 중 하나였다. 나는 성숙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에, 나의 조각조각난 상처들과 아픔들을 혼자서 어떻게든 싸매고 해결하려고 아둥바둥 노력하며 살았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내 성향 상 몇 되지도 않는다. 인생의 어느 시점을 콕 찍어서 펼치든 말이다.)에게 나의 고통과 어려움을 같이 짊어지자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 그건 참 못난 행동이었다.


언제부터 나는 그런 생각을 시작했던걸까.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시절부터, 나는 이미 그렇게 마음을 먹고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건 내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나를 배려하는 방식이자, 사랑을 주는 방식이었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식이 준 용돈을 쓰지 않고 그대로 모았다가 나중에 자식 먹고 싶은 거 사줄 때 쓰곤 하듯이, 우리 부모님도 그랬다. 가정형편이 힘들어지거나, 엄마나 아빠가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엄마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그걸 숨겼다. 그래서 나는 꾸준히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자라게 해주는 것이, 엄마 아빠에게는 분명 사랑이었던 것 같다. 세상의 험하고 아픈 것들을 당신들이 모두 막아주고 짊어질테니, 자식이 성인으로 자라는 동안만이라도 그냥 도화지같은 세상 속에서 뛰어놀게 하고싶었던 게 아닌가, 짐작만 한다. 문제는, 내가 아마 은연 중에 그러한 진실을 꽤나 이르게 알아챘던 것 같다는 것이고, 어쩌면 그 사랑을 받은 덕에 내가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나도 부모님에게 달려가 그걸 같이 나눠달라고 조르기보다는 혼자 삼키는 걸 먼저 배워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내 기억이 살아있는 순간부터 이미, 힘들 때 엄마아빠에게 달려가서 칭얼거리고 울기보다는 혼자 삼키는 걸 꾸역꾸역 연습하는 아이였다. 물론, 연습한다고 그게 그렇게 완벽하게 되지는 않는다.. ㅋㅋ 다 들통났다는 의미다.


당신은 어떠한가. 힘들다고 누군가에게 달려가 징징대거나 울부짖으며 내 치부와 수치스러웠던 상처를 같이 좀 짊어지자고 소위 삐대는(?!) 스타일인가. 아니면 조용히 불꺼진 방에서 잠도 오지 않는 깊은 밤이 흘러갈때까지 하염없이 누운 채 눈물을 훔치는 편인가.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에게조차 눈물을 흘리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그냥 유튜브나 예능을 보며 깔깔 대고 웃으며 유쾌한 시간을 보내다가, 텅 비어버린 마음을 문득문득 느끼고서는 놀라곤 하는 편인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정도의 힘을 기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우리 스스로를 평가나 판단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내면에서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자동적 사고를 알아차리는 것이다.(첫번째 : https://brunch.co.kr/@realrestkjh/16 참고, 두번째 : https://brunch.co.kr/@realrestkjh/18 참고) 그런데 사실 이 두가지 힘을 기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누군가가 나와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 진솔한 관계를 형성해줌으로써 보다 잘 해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관계를 제공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사람을 상담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담관계가 분명히 우리 삶에 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https://brunch.co.kr/@realrestkjh/19 참고)


문제는, 상담을 받으러 가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이다. 내 생각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다. 우리가 어떠한 이유로든 상담을 받으러 가기로 결정을 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이다. 힘든 일을 꺼내지 못한 채 삶을 오랫동안 살아온 내 특성 상 그렇게 느끼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상담심리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상담을 받는 일에 대해 내게 조언을 구하는 내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듣고 봐왔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느끼게 되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상담을 받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직전 순간에서조차 상담을 받으러 갈 생각을 차마 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존재는, 분명히 상담을 받으러 가는 일이 너무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단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의 일천하나마 직간접적으로 축적되고 있는 경험과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면, 상담을 받는 것이 그렇게나 힘든 이유는 크게 네 가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우선 첫번째 이유로, 상담은 내 수치스럽고 나 스스로에게조차 솔직하기 힘든 일을 남에게 꺼내야 하는 일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우리는 언제나 끊임없이 평가당하고 판단받는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나의 못나고 초라하고 경멸당할만하고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꺼낸다는 것은, 어쩌면 살면서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너무나 위험한 일을 태어나서 최초로 감행하는 것과도 같다. 살면서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위험한 일을 시도한다는 것, 그리고 분명히 사람들이 손가락질할만한 치졸하고 못나고 공격적이고 어두운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을 시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두번째 이유로, 그렇게 용기내어 눈 딱 감고 그 위험천만한 일, 즉 나의 어둡고 그 누구도 수용해주지 못할것만 같은 나의 치부와 상처를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 위험천만한 시도가 과연 내게 그걸 감수할만한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인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며 처음 상담을 받으러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실제로 많은 내담자들은 그런 마음을 가슴 한 켠에 단단히 품어두고 상담을 받으러 온다고 생각한다. 남이 내 마음과 고통에 대해 듣는다고 이 죽을 것만 같은 어려움이 뭐 어떻게 해결된다는 것인지에 대해 크게 기대가 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말해봤자 도움이 되기는커녕 손가락질과 비난만 받고 거부당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평생을 한 번도 남에게 나의 진짜 속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험해본 적도 없거니와, 그렇게 경험해본 적도 없는 이유가 '그래봤자 소용없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경멸만 당할 뿐이다.' 와 같은 생각이 마음 속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니, 상담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지기가 당연히 쉽지 않다.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오히려 다분히 자연스럽다.


세번째 이유로,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일이다. 남들이 내가 상담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면, 내가 어딘가 고장나 버린 사람이거나 아픈 사람이라고 낙인 찍힐 것 같고, 뒤에서 날 비웃을 것만 같다. 혼자서 자기 마음 하나 추스리지 못한다고 말이다. 사실, 남은 둘째치고 나부터도 내가 누군가에게 돈까지 내가면서 내 어려운 마음을 토로하겠다고 찾아가는 일이 수치스럽고 하찮게 여겨진다. 비굴하고 초라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이 스스로부터가 나를 그렇게 느끼고 바라보게 된다. 실제로 많은 내담자들은 상담을 받으면서 자신이 애정이나 보살핌을 돈까지 내고 갈구한다는 식의 생각을 하며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즉, 남의 시선으로나, 나 스스로가 날 보는 시선으로나, 상담을 받으러 가는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서 꽁꽁 숨기고 싶고 절대 드러낼 수가 없는 모습이이다. 부끄러운 일인 것이다. 상담을 받는 일 자체가.


네번째 이유로, 시간적 부담과 경제적 부담이 된다. 물론 상담가마다 다르고 내담자의 심리적 어려움마다 다르지만, 주1회 정도는 통상적으로 상담을 꾸준히 받는 경우가 많다. 그 정도는 최소한으로 확보되어야 보다 효과적으로 심리적 어려움을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주1회만 상담을 일정기간 진행하더라도 시간적 부담과 금전적 부담이 상당히 크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상담을 받는 사실 자체를, 상당히 여유가 있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아니, 이걸 그러면 누가 한단 말인가. 누가 상담을 받는다는 말인가. 평생 해보지도 않은 위험천만한 일, 즉 내 속마음과 치부를 다 남에게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그런다고 해서 내게 도움이 될 지도 의문이고 그 의문을 감수하더라도 남들이 비웃을까 숨기기까지 해야 하는데 시간과 돈까지 엄청 든다. 도대체 이걸 누가 한다는 이야기인가. 상담을 받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물론 나는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감수할 용기를 내어 상담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니까 상담심리를 공부하는거겠ㅈ...) 하지만 지금껏 내가 이야기한 것들은 결코 상담받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저 모든 어려움들을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해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상담'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더 써나가는 걸로. 끝.


P.S) 나는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감기 걸리면 병원 가듯이, 마음이 불안하거나 우울하거나 힘들면 쉽게 상담을 받으러 가는 상담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 아니, 요즘 헬창들이 양산되는 트렌드처럼 헬스하듯이 사람들이 상담을 받는 문화가 대중화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즉, 꼭 어디 아프지 않더라도 보다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더 풍성하게 가꾸기 위해서 상담을 받는 시대가 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그렇게 문화가 변해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고, 상담이 대중화된 시대가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결코 그것이 쉽게 금방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또한 한다. 그래서, 그런 모두가 좀 더 편안하게 마음의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는 시대로 가는 징검다리로서의 '자기상담'의 문화가, 먼저 사람들에게 정착되길 원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자기상담'은 우리가 상담을 받기 어려운 이유의 상당부분을 해소해줄 수 있다. 우리가 먼저 우리 스스로와 친해져가는 시대, 그 시대가 와서 내 소중한 사람들과 궁극적으로는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좀 더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