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상담가 되기 프로젝트』서문Part 목차
나는 강박이 있다. 마음 가는대로 무질서하게 잘 지내다가, 그 강박은 갑자기 내게 찾아온다. '아, 정리를 할 때가 됐다.' 이런 생각으로. 그래서 내 방은 365일 중 약 350일 정도는 카오스 상태이고, 15일 정도는 아주 깔끔하게 정리된 상태이다.
한 번씩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퍼뜩 떠오르면, 그 때는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 한다. 사실 최근에 갑자기 글을 쓰기가 귀찮고 싫어지는 바람에, 길을 잃은 배낭여행자마냥 그냥 두리번거리며 글을 쓰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퍼뜩 강박적인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아, 정리를 한 번 해야겠다.' 아니나 다를까, '자기상담가 되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브런치 매거진에 쌓인 글들을 쭉 읽어보니, 350일 동안 카오스 상태를 유지하는 내 방과 비슷한 느낌이 없지 않다. 나름 유기적으로 체계를 갖추고 쓴다고 쓰는데도 저러니, 이건 그냥 내 태생적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
각설하고, 지금껏 쓴 글들의 흐름을 간단하게 정리하려고 한다. 이건 나를 위한 글이기도 하고, 나의 글을 읽어주는 당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 글은 나의 생각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오고 있는지에 대한 단서가 되기도 하겠다.
"인간은 왜 사는걸까. 난 왜 사는건가. ... 나 왜 사냐. "
저게 시발점이다.(욕 아니다. 오해 ㄴㄴ) 가끔 친구가 전화와서 술에 잔뜩 취한 채로 내게 묻는 말. 가끔 아무 소리도 안 나는 새벽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문득 떠오르는 말. 그러다가 또 바쁜 일상을 살아내야 하다 보니 금방 또 다락방 구석에 쳐박아놓고 먼지 쌓일 때까지 미해결된 채로 밀어두게 되는 말. 잊을만하면 한 번씩 또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는 말. 저거다. 저게 나의 긴 생각의 시작이다. 누구나 고민하지만, 누구나 명료한 답을 내리지 못하곤 하고, 결국엔 답을 못 내린 채 슬쩍 다시 옆으로 치워놓고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핑계로 외면하게 되는, 묻어두게 되는 말.
언젠가 친구 한 놈이 그랬다. 둘이서 밥먹으면서 저런 류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게 툭 내뱉은 말이다. "태어났으니까 그냥 사는거지 ㅅㅂ" 아, 나는 그 때 감탄했다. 그렇구나. 내가 그걸 몰랐네. 그 사실을 미처 몰랐어. 그러고 집에 왔다. 그런데 침대에 누워 가만히 생각해보니, 친구 말이 친구 앞에서 듣고 있을 때는 정말 정답 같았는데 그걸로는 뭔가 갈증이 해결되는 건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말장난에 속은 기분도 드는 거 같고. 아무튼 저걸로 해결될 갈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왜 이 세상에서 이런 모습으로 살게 된 것인가'가 아니라, '무얼 위해, 무슨 이유로 나의 삶을 살아나갈 것인가'가 궁금했다. 물론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는 그 둘의 차이를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였지만. (https://brunch.co.kr/@realrestkjh/9 , 『왜 태어났는가 vs 왜 사는가』)
도대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목적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정답도 없을 뿐더러, 명확한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긴 시간을 이 난감한 주제를 고민하는 데 쓰면서 하나 느낀 게 있다. 사람들은 삶의 목적이 우리 외부 어딘가에서 주어지길 내심 바란다는 것이다.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삶은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우리에게 '턱'하고 주어졌고, 삶의 마지막 형태인 '죽음'이 올 거라는 사실도 우리 의사와 무관하게 이미 결정되어 있으니까. 죽음을 우리가 일정기간 대여한 '삶'이라는 것을 반납하게 되는 사건이라고 볼 때, 우리 삶의 대여반납 기한은 대강 100년 안팎으로 정해져있고 반납 안 하는 방법 따위는 없다. 결국 삶의 시작도 끝도 이미 누군가가 외부에서 정해놓은 채로 우리 의사와 무관하게 주어졌으니, 그 '삶'이라는 놈의 목적도 왠지 우리 내면이 아닌 외부 어딘가로부터 주어져있을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삶의 목적은 결국 우리가 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는 가지고 있다. (https://brunch.co.kr/@realrestkjh/6 , 『삶의 목적은, 중국집에서 메뉴 고르듯이』)
우리가 삶을 다시 반납하는 순간, 즉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우리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삶의 매순간을 행복하게 누리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 가장 행복할까. 각자의 행복은 제각기 다른 모습을 가지겠지만, 이것과 관련해서 나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행복에 닿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현존'과 '몰입'이다. 이 두가지 개념은 각각 3대 영적 스승 중 한 명인 에크하르트 톨레와 긍정심리학의 대가 중 한 명인 칙센트미하이가 만든 개념이다. 온갖 철학자들의 책들을 주말마다 들춰보고, 요가와 명상을 가르치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내 스스로를 계속 바라보면서 경험해본 결과 내가 찾은 정답은 '현존'과 '몰입'이다. 역시 세상에는 지혜로운 이들이 이미 많은 것을 찾아놓았더라. 여담이지만, '현존'은 내가 배낭여행 할 때의 내 상태와 비슷하고, '몰입'은 내가 미드 보다가 밥도 안 먹고 꼴딱 밤샐 때의 내 꼬라지와 비슷한 것 같다 ㅋㅋ(https://brunch.co.kr/@realrestkjh/12 , 『행복에 다다르는 두 가지 방법』)
우리를 행복으로 데려다 줄 두 가지 방법인 '현존'과 '몰입'은 생각보다 꽤 많은 노력과 훈련을 필요로 한다. 개인적으로 '현존'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익힌 후에 '몰입'상태를 유지하는 법을 훈련하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하는데, 이 두 상태는 모두 우리의 의식이 고요한 상태로 유지될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동국대에서 명상지도자과정을 수료하며 배웠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현존'은 불교에서 말하는 명상수행과 매우 흡사하다. 그래서, 오랜 시간 많은 연습과 수련을 통한 체화가 필요하다는 측면 또한 매우 비슷하다.(https://brunch.co.kr/@realrestkjh/13 , 『현존하기 연습』)
'현존'과 '몰입'을 연습해서 체득하게 되면, 이를 통해 우리는 분명히 삶의 매순간들을 지금보다도 훨씬 더 행복하게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많은 소중한 것들이 그렇듯이, 이 두 가지 방법을 우리가 익히고 얻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고 어렵다. 왜냐하면 방해하는 녀석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골대에 골키퍼가 없으면 참 좋을텐데, 완전무장한 골키퍼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축구랑 달리, 골키퍼가 2명이다. 젠장. 우리가 '현존'과 '몰입'을 못하게 만드는 두가지 방해물은 바로 '마음'과 '무지'다. 우리는 하루에도 쉼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에 휘둘려서 휩쓸리다가 하루를 다 보낸다. 그 하루가 모여서 10년이 되고 우리 인생 전체가 된다는 걸 알고 있다면, 이게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휘둘리기 바쁜데 어느 세월에 '현존'하고 '몰입'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몰입상태로 삶을 채워나가려면, 몰입의 '대상'이 있어야 된다. 그런데 삶 전체를 놓고 볼 때, 우리는 도대체 무엇에 몰입할지를 모른다. 즉, 우리가 삶이라는 기간 동안 몰입할 대상을 무엇으로 정하면 좋을지에 대해 우리는 놀랍도록 '무지'하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우리는 '현존'하거나 '몰입'하기가 참으로 힘들다. (https://brunch.co.kr/@realrestkjh/14 , 『현존과 몰입이 쉽지 않은 두 가지 이유』)
이렇게 우리가 '현존'하지 못하고 '몰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물들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마음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이로 인해 '현존'과 '몰입'을 방해받지 않으려면, 우리는 우리가 왜 그렇게나 마음과 감정에 휘둘리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에 몰입하며 삶을 살아나갈지 결정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 삶의 방향키를 어디로 잡고 그 목적에 삶을 쏟아부으며 몰입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결국 우리 스스로를 잘 알아야 한다. 우리가 왜 마음에 휘둘리는지를 이해하고, 무엇에 몰입하여 삶을 채워나갈지를 정하는 일은 곧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잘 이해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 스스로라고 믿는 '나'와 실제 '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의식 중에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우리의 사고과정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이유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https://brunch.co.kr/@realrestkjh/15 , 『우리가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두 가지 이유』)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스스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짐작하겠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두 가지 원인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우선,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https://brunch.co.kr/@realrestkjh/16 , 『스스로를 잘 이해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 중 첫번째』)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자동적 사고를 자각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https://brunch.co.kr/@realrestkjh/17 , 『스스로를 잘 이해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 중 두번째』) 이 두 가지를 통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현존'과 '몰입'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삶을 매순간 행복하게 채워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평가나 판단없이 우리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일, 그리고 무의식 중에 일어나는 자동적 사고를 명료하게 자각하는 일, 이 두 가지 일을 하기 위해서 사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뢰할 수 있고 진솔한 '관계'이다. '관계'라는 것이 애초에 나 이외의 상대방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보니,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신뢰할 수 있고 진솔한 관계'는 이러한 관계를 나와 만들어나갈 수 있는 타인을 필요로 한다. 사실 이러한 관계를 제공하는 일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훈련받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심리상담가이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무슨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이를 평가나 판단없이 수용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고, 부지불식 간에 일어나는 나의 사고과정에 대해 솔직하게 피드백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런 관계를 통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조금씩 진정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고, 이런 관계를 전문적으로 제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우리와 가까운 부모님이나 연인보다도 심리상담가일 가능성이 크다.(https://brunch.co.kr/@realrestkjh/19 ,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가 필요할지도』)
문제는, 우리에게는 심리상담을 받기 힘든 이유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애당초에 나는 나 스스로를 이해하고 내 삶을 행복하게 누리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하길 원했다. 그리고 그러한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입증된 방법들을 내 소중한 사람들, 종국에는 이러한 주제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길 원했다. 그래서 나는 심리상담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고, 지금까지 나름의 확신과 열정을 가지고 배워나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명료하게 깨달은 아픈 진실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담을 받는 일은 너무 어렵고 불편한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심리상담을 받으러 갈 수 없다. (https://brunch.co.kr/@realrestkjh/21 , 『우리가 심리상담을 받지 않는 네 가지 이유』)
그래서 생각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신뢰할 수 있고 진솔한 관계'를 상담을 통해 얻기가 힘들다면, 자급자족 체제로 가는 방법을 고민하고 공부해서 이걸 공유해야겠다라고. 그러면 되지 않나. 우리에게 그 관계를 제공해주는 상대방이 자기자신이 된다면, 우리는 그 관계를 통해서도 스스로를 진정으로 이해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한참을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론적으로 정립된 것은 아니다. 개인이 자기자신에게 제대로 된 관계를 제공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회의적인 언급들도 이따금씩 보이는 게 사실이고, 이에 대해 많은 연구가 행해진 것도 아니다. 혼자서는 도저히 이 심리적 고통이 잘 해결되지 않으니까 상담이 필요하다는 게 어쩌면 당연하게 다들 받아들이는 전제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삶이 고통스럽고 괴로워 미칠 것 같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상담을 받으러 어딘가를 찾아가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 삶이 그리 행복하지 않은 수많은 이들에게, 상담을 받는 일은 선택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을 위해 자기상담가가 되는 일을 고집스럽게 고민하고 연구할 생각이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상담가가 되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행복할 수 있게 도울 수 있고, 우리 주위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https://brunch.co.kr/@realrestkjh/22 , 『자기상담가가 되면 좋은 두 가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심리상담을 받으러 가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들은 자기상담을 경험하는 일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관계를 혼자 힘으로 스스로에게 제공해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여기까지가, 내가 얼기설기 매거진에 흩뿌려놓았던 글들의 흐름을 하나로 엮어놓은 요약본이다. 혹시라도 '자기상담가 되기 프로젝트' 매거진의 글들이 맥락이 없어서 정신없다고 느끼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본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P.S) 이제 앞으로는 구체적으로 우리가 자기상담가가 되어 우리 자신을 돕기 위해 어떤 것들을 하면 좋은지에 대해 써나갈 계획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