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결국 타고난 욕구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우리가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하고,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자동적 사고과정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구체적인 자기상담 방법을 살펴보기 전에, 과연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기상담을 익혀나가면서 우리 스스로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각자는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 자신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 또한 이러한 보편적인 특성의 바탕 위에서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보편적인 부분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좀 더 깊이 수용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을 보다 잘 이해해나가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편견이나 두려움 없이 모든 순간순간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과 타인과의 관계를 개방적으로 한껏 즐기면서 경험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욕구를 느끼는 존재
우리는, 아니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한다. 한 번 돌이켜보면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무언가에 의해 이끌리는 상태다. 미약할지언정 어떤 욕구를 언제나 느낀다. 가령, 배고픔이나 수면부족 등의 생리적인 욕구가 갈구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와 만나서 친밀감을 느끼고 싶어하든 어딘가 놀러가고 싶어하든 게임을 하고 싶어하든 조용히 산책을 하고 싶어하든 거의 항상 어떤 욕구를 느낀다. 이러한 부분은 나이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아기들은 수면욕이나 식욕, 배설욕 등을 우선시하지만, 그러한 생리적 기본 욕구들이 충족되고 나면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헤맨다. 쉬지 않고 움직이며 무언가에 몰두하고 배운다. 그들은 절대로 가만히 명상하고 앉아있지 않는다. 아마 우리도 그랬을 것이다. 적어도 어린아이일때는 말이다.
적군인지 아군인지만 알면 된다
우리가 갈구하는 욕구가 결핍된 상태에서, 우리는 세상을 제대로 지각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명료하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제대로' 지각하는 대신에 어떻게 지각하게 될까. 어떤 상황 속에 존재하는 타인이나 어떤 존재가 나의 욕구결핍을 해소해줄지 말지, 이걸로만 세상을 판단한다. 전쟁에 참전했다고 생각해보자. 1시간 사이에도 나와 같이 가족사진을 공유하고 서로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이야기하며 같이 먹고 자던 동료가 몇이나 총탄을 맞고 죽거나 총탄에 살점이 터져나간다. 지휘에 따라 우리는 어떤 마을로 진입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과연 맞닥뜨리게 된 낯선 타인을 어떻게 판단할까. 나의 적군인지 아군인지에만 매달릴 것이다. 이는 우리의 목숨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상황이다. 우리의 안전(욕구)는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고, 이를 위해 우리는 그가 우리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적인지 아군인지만 판단하게 될 것이다. 즉, 우리의 안전욕구의 결핍 측면에서 모든 상황을 이분법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가 어떤 성격의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인지, 상대방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다각적으로 이해하고 지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특정 욕구가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을수록 그에 비례해서 상황을 이분법적으로만 겨우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욕구결핍을 더 악화시킬지, 아니면 해소해줄지 이 단 하나의 잣대로 여부를 판단하는 것 이상으로 상황을 선명하게 지각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된다.
욕구가 결핍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만으로도
위에서 든 예시와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가 이렇게 욕구의 결핍에 따라 이분법적으로만 상황을 판단하는 일은 사실 전쟁통이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수없이 일어난다. 가령 우리가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상대방이 너무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워서, 상대방이 우리를 떠나버릴까봐 늘 불안하고 두렵다. 상대가 우리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게 될까봐 초조하다. 이렇듯 지금 당장에 결핍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결핍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만으로, 우리는 우리의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줄지 말지에만 매달리게 되고 이 단 하나의 잣대로 상황을 이분법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상대와 365일 중 300일을 데이트한다고 하더라도, 데이트를 할 때마다 우리가 생각하는 건 오로지 이 데이트가 상대방을 즐겁게 했을지, 그래서 내게 애정이 조금이라도 더 식게 만들지는 않았을지이다. 식사메뉴를 고를 때도 상대방이 이걸 맛있어할지만 생각하고,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상대방이 대화를 지루해하지는 않을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상대로부터 우리의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결핍될지 아닐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와 상대방이 나누는 대화의 양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고, 어떤 것이 조금 아쉽고 어떤 것이 좋은지, 그 대화의 질적인 상태나 흐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내가 상대방과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즐겁고 기쁜지와 같은 하찮은 것들은 전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직 우리의 관심사는 상대방이 우리와의 대화를 지루해하거나 기분이 상해서 조금이라도 날 떠날 위험이 커지지는 않는지다. 모든 경험을 매 순간 이렇게 우리의 욕구결핍을 초래할지 말지, 혹은 욕구의 결핍을 해소해줄지 말지로만 판단하게 된다. 마치 바둑돌이 까만색인지 흰색인지를 가르듯이 지극히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말이다. 우리는 아마도 절대 우리의 연애양상이 어떠했는지 명료하게 자각하고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사람과 헤어지기 전까지는. 아, 사실 헤어지고도 모를수도 있다. 얼른 나의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의 결핍상태를 해소하려면, 다른 상대방을 찾아서 연애를 시작해야 할테니 말이다. 그런 사람에게 끝났던 연애를 찬찬히 반추해볼 시간은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자각하는 일
이런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삶을 매순간 행복하게 누리면서 모든 경험을 마치 배낭여행 중인 여행자처럼 개방적으로 만끽하며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이래서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우리가 언제나 느끼는 다양한 욕구들 중 우리가 반드시 수용해야만 하는 욕구는 무엇인지와 우리가 가진 여러 가지 욕구들 그 자체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가령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고 싶은 욕구와 식욕은 수용해야 하는 정도가 아마 다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각 욕구를 어느 수준까지 충족시키며 살 것인지 결정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검토하기 전에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무수히 많은 상황들 속에서, 그 경험들에 어떻게 반응하고 느끼는지를 제대로 자각하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특정 행동이나 생각을 할 때 이 행동이나 생각이 수많은 욕구 중 어떤 욕구의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반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수용하는 것, 이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어떠한 욕구에 따른 것인지, 만약 우리가 특정욕구의 결핍 해소를 위해 움직이고 있지 않다면 이 때는 도대체 어떠한 동기로 우리가 움직이고 반응하는 것인지에 대해 선명하게 지각하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 우리는 우리가 수많은 말과 행동을 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근원적인 차원의 어떤 특정한 욕구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 자체를 자각하지 못하거나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그 내용이 어떠한 것이든, 어떠한 욕구를 바탕으로 말과 행동을 하고 생각을 한다. 이를 먼저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마 수용하기 힘들수도 있다. 마치 이는 우리의 자유의지가 우리의 말과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구가 우리를 조종하는 것처럼 느껴질수도 있을테니까. 나는 우리의 자유와 자발성을 누구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자부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욕구로부터 지대한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을 전혀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의외로 미리 내재된 욕구에 의해 움직이고 살아가는 시간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P.S) 불편하더라도 우리 스스로가 어떠한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결국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우리 삶을 행복하게 누려나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나의 결론에 꼭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이러한 관점에서도 한 번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